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읽힌다. 40년 이상을 회화에 오롯이 투신한 민정기가 보여주는 풍경은 이 땅을 거쳐온 선조들의 시각을 현재의 질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를테면 수묵담채화에서 튀어 나온 기암괴석들이 연립주택과 빨간벽돌 빌라, 편의점과 주유소처럼 우리 주변에 산재한 일상적 구조물들을 집어 삼킬 듯이 달려온다. 부감법으로 도식화된 풍경 속에 장방형의 철근-콘트리트 건축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친 사선형의 붓질로 구성된 연두색과 분홍색의 밑칠은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들을 꿈 속에서 본 것 같은 찰나의 인상으로 손쉽게 바꾸어 놓는다. 이처럼 민정기의 최근 화폭에서 도시 풍경들은 자연과 인공물, 전통과 현재, 꿈과 실재의 대비 속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민정기의 최근 작품들은 약 10년 전에 비슷한 제재를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과 대략 일대일의 대응을 이루도록 걸려 있다. 1949년생인 민정기에게는 10년 전이라고 해도 이미 화단에서 ‘화백’ 호칭을 들은지 수 해가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들이 화백이라고 부르건 말건,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새로운 조형성을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만 놓고 본다면, 최근 10년의 시간은 그의 화폭에서 견고한 윤곽선을 일그러뜨리고 만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넘실거리는 역동성을 창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10년 전에 풍경 속 만물의 움직임은 그의 내면을 거치는 동안 견고한 구조물로 재해석되었다. 산은 산의 자리에, 나무는 나무의 자리에, 건물은 건물의 자리에 각기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듯 견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막 그의 작업실을 빠져나온 윤기 나는 작품들에서는 만물이 좀처럼 갈피를 못 잡은 채 하나의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제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거나 반대로 멈추게 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사선으로 넘실거리는 분홍색과 연두색의 대기가, 서로에게 침범하는 강과 산이, 그리고 쇠라의 점묘법을 천연덕스럽게 부활시키려는 듯한 굵직한 색점들이 우리의 안구를 어지럽힌다. 한 곳을 뚜렷이 응시하면 그 주변에 있던 견고한 물질들이 빛을 산란하며 갈지자로 비틀거린다. 이 빛의 흐름이 민정기의 작품을 살아있게 한다.


여러 예술가들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해 나가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힘을 뺀다.’ 적어도 예술에 있어서 ‘힘을 뺀다’는 말은 비단 색을 엉성하게 칠한다거나, 서사의 짜임새가 느슨하다는 식의 몇 가지 단서로 압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힘을 뺀다는 것은 한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태도에서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말이 백퍼센트 정답은 아닐 수 있으며, 그렇기에 설령 듣더라도 곧이 곧대로 믿고 따르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듯한 태도가 그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진정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되려 깨닫는 겸양과도 같은 것이다. 민정기의 최근 작품에서는 이처럼 힘을 뺀 노장의 여유가 느껴진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버리고 허리에 찼던 장검마저 들판에 꽂아버린채 민들레 한 송이 꺾어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는 장수의 발걸음 같은 여유이다.




작품이 다 캔버스 위에 유화인가요? 이분은 명당도에서의 건물의 구도도 그렇고 여러작품에서 보이는 소재도 그렇고 동양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고자 한 것같네요.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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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캔버스에 유채입니다. 동양의 시각성을 서양의 재료와 동시대적 일상에 융합시키는 작업을 하시더군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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