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비트겐슈타인이 이 전시를 봤다면 아마 아시아라는 말 자체에 진저리를 치며 10분만에 나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아시아라는 공동체는 없다. 우연히도 인접하게 모여 있는 개별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만일 국가라는 개념에 실체가 있다면 말이다. 상당수의 철학적 문제들이 서로 다른 개체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를 때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 전시에 모인 국가들을 아시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가능한 까닭은 이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과정을 겪어서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런 장면들만을 골라서 전시장에 펼쳐 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치중립적인 큐레이팅은 없다. 우리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일본을 바라보는 감정은 동질감 보다는 이질감과 적대감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 전시에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제법 잘 융화된다. 아니, 몇몇 장면에서는 그들이 그 어떤 ‘아시아’ 보다 더 ‘아시아’ 같다. 최소한 아시안컵에 출전한 호주를 볼 때, 그리고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러시아를 볼 때 보다는 더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 무엇인가? 폭력적일 정도로 단순화하면 ‘비자발적 근대화’다. 물론 여기서 근대화는 서구화와 사실상 동의어다. 이 지점에서 일본은 또 다시 살짝 결이 다르다. 일본에게는 ‘비자발적 각성’ 정도로 순화하여 정정해주자. 어쨌든 이번 전시는 형식주의적 미학으로서 미술이 아닌 사회적 목소리로서 미술에 집중하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아시아 미술을 되돌아봤다. 이 시기는 각 국의 민족 내부에서 충분히 체화되지 못한 ‘비자발적 근대화’가 온갖 사회병리적 부작용으로 스멀스멀 발현되던 때였다.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찍혀 있다(앙리 마티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아시아 미술을 본다는 것은 인접한 공동체들의 상처, 성장통, 언쟁, 그리고 온갖 경계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서문을 시작했지만 이 전시에 대한 완결된 짜임세의 평을 남길 수는 없다. 양심에 저촉된다. 2시간 동안 열심히 돌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폐관시간 알림을 들었을 때 고작 2부까지만 마친 상황이었고, 마지막 3부는 문턱에서만 겨우 서성거렸다. 그러니 전시의 얼개를 논할 수는 없다. 몇몇 작품만 살펴보자.

민정기,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1981)

민정기의 회색빛 두 폭 제단화는 알 수 없는 실험 집단으로부터 계측을 당하는 비천한 존재와 초대형 극장을 가득 메운 영혼 없는 군중을 대비시켜 놓았다. 좌측 화폭의 삐쩍 마른 인물은 실험이나 고문으로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모양인데, 심지어 그는 벌거벗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벌거벗음으로 존엄성을 논할 수는 없지만, 벌거벗김을 당하고 그 사실을 망각했다면 이제는 존엄성의 바닥까지 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측과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녹봉을 먹고 사는 모양인 흰 가운을 입은 인물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들이 실존적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것 같다. 한편, 우측에 대비된 화면에는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머리 모양의 군중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노란색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다. 행동하는 예술가였던 민정기는 3S로 대변되는 군사정권의 우민화정책을 비꼬며 군중 속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실존을 자각하며 관객을 향해 뒤돌아보기를 염원하고 있다. 좌측의 가련한 남자를 다시 보니, 그 염원이 쉽사리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오윤, 마케팅1: 지옥도(1980)

민정기보다 한 발 더 앞장서서 행동했던 오윤은 마케팅 메시지에 잠식된 시대상을 지옥도로 바라보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하나를 보려고 해도 10분에 한번씩 머저리 같은 틱톡 광고를 보아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1980년의 광고가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이미 가득 찬 상태에서 하나를 더 ‘얹는’ 것과 아예 없던 상태에서 하나가 ‘생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컬러 TV가 보급되고, 인쇄 매체가 발전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 둘 국내 시장에 진출하던 그 시기에 받아들이는 상업주의의 충격은 현재의 눈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민족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진영의 중심에서 시각예술, 아니 시각’운동’의 선봉에 섰던 오윤에게 손에 잡힐 수 없는 유토피아를 제시하며 끝없는 소비에의 헛된 갈망만을 자극하는 마케팅은 그저 지옥도의 살벌한 풍경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코카콜라로 대변되는 거대 외세-자본과 결탁한 옥졸들은 자본주의의 희생양들을 신명나게 난도질하고 튀기면서 즐기고 있다. 오른쪽 하단에 키를 차고 대기하고 있는 죄수들이 재미있는데, 맨 앞에 있는 남성과 바로 뒤에 있는 여성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가락 끝으로 무언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 마침 펄펄 끓는 가마에 죄인 하나를 던지려던 참인 옥졸에게 이 장면이 딱 걸렸는데, 다음 순간에 어떤 참상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데데 에리 수프리아(인도네시아), 미궁(1987-1988)

인도네시아의 사회환경 문제에 주목했던 데데에리 수프리아의 「미궁」은 한 눈에 보아도 어마어마한 공력이 들어간 대작이다. 급격한 도시화의 한편에서 오히려 그 명암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슬럼가의 주거문제와 빈곤을 다루고 있다. 완벽한 원근법적 구도와 상자의 질감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살리는 표현의 기량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전경은 수직수평으로, 후경은 사선 구도로 소실점의 방향이 바뀌는데, 화면 끝까지 치밀하게 구조물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그 뒤로 초현실적인 벽들이 사선으로 가로막고 버티며 일말의 희망도 없는 폐쇄적 공간을 창출한다. 수많은 구획 속에서도 가벼운 몸 하나 편히 눕힐 공간을 찾지 못한 두 어린 영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존재들을 상기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도교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 등 아시아의 대표적인 근현대미술 기관 네 곳이 힘을 합쳐 오랜 기간 준비한 전시인 만큼, 이론의 여지가 없이 체계적으로 정돈된 구성을 보여준다. 미술의 다양한 기능 중에서도 사회적 맥락과 담론형성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어떤 면에서는 작은 비엔날레처럼 느껴지는 전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소할 방안 같은 것이 존재할리 만무하므로 역시나 다소 답답한 가슴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으나 어쩌겠는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이제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을. 그저 같은 시기에 같은 고민에 빠졌던 이가 나 말고도 더 있었음에 위안할밖에.

(+) 미술사는 미래로 계속 나아가고 있지만 ‘표현의 수위’만 놓고 보면 지금은 당시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이 선명할수록 저항도 선명해진다. 오늘날 선명한 저항의 몸짓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먹고 살기’ 좋아져서이거나 혹은 권력의 움직임이 더 교묘해졌기 때문이겠지. 먹고 살기 좋은 시대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어떻게든 영속성의 산물로서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영웅주의자들에게는 그만큼 비극적인 시대가 아닐까. 이 또한 뉴 노멀(New Normal) 시대의 자취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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