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역)

Mary Anne Staniszewski, 「Believing is Seeing: Creating an Culture of an Art」

선정성을 추구하는 우리 출판계가 선정한 제목은 반드시 미술제도론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미술과 非미술을 판단하는 기준은 미술제도가 그것을 미술로 승인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미술학교, 화랑, 전시장, 미술관, 박물관, 미술사가, 비평가, 경매장, 아트페어, 수집가, 후원기업 등으로 구성된 미술제도는 작품의 교환가치를 결정한다. 미술사 교과서에서 도판으로나 볼 수 있는 근대 이전의 명작들은 그것이 제작되고 거래되는 맥락 자체가 오늘날의 메커니즘과 전혀 다르다. 18세기까지 예술 작품은 왕, 교황, 귀족의 독점적인 후원이나 아카데미의 교리에 입각한 공인에 의해서만 존재 가치를 부여 받았고, 그것을 소유한 계층의 권력과 부를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이 같은 미술제도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지금 우리의 관점에만 얽매여 이전 시대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것은 반쪽짜리 이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시대는 시각적 산물을 만들고 시각적 산물은 시대를 만들어 간다.

“이미지들과 우리의 삶은 때때로 서로를 반영한다.” 63

이 책의 주제는 저 인용문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인용문을 한 번 더 푼 문장이 마지막에 페이지에 나온다.

“모든 것이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298

두 언명을 통해 저자가 철저히 예술의 사회사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사회사는 사회를 통해서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조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를 예술 작품 속에서 실현하고, 예술에 녹아든 고귀한 철학을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같은 주제 의식은 매우 합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숙제를 남긴다.

한 작품 속에 깃든 철학이 이 시대에 해악이 아닌 도움이 될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사회에 실천적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예술은 모두 수장고에 가둔 채 빛을 보지 말아야 하나? 한 시대에 이상적으로 간주되는 가치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님이 이미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면, 우리는 다른 시대, 그리고 다른 맥락에서 변화될 양상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되나?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올바름의 시대에 유미주의자가 설 곳이 있는가?

하루면 너끈히 읽을 이 작은 책을 덮더라도 당연히 의문들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이 시공간을 외부에서 관조할 수 없고,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 흘러 가다가 부지불식간에 백골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동시대 예술가들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작품 속에 녹여냈는지, 그 예술이 얼마나 많은 관람객들과 효과적으로 조응하면서 이상적인 실천의 열매를 맺어왔는지는 명철한 후손들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20세기 초반까지 빈번하게 예술 제도를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했던 아방가르드들의 헌신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분명 수긍할 구석이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예술가들이 그 현실의 테두리 안에 갇혀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치고 있는지를 누군가는 주목해야 하고, 더 실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해야 한다. 사실 이것이 진정한 비평의 역할일진데, 비평이 오히려 제도의 열혈 앞잡이로 전락한다면 그야말로 곤란하다. 아무리 견고한 제도라도 바꿀 수 있다. 숟가락으로 땅을 파서 교도소를 탈출한다는 클리셰가 삼류 공개방송 코미디로 끝나지 않도록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한 가지 덧붙여, 올바름의 시대에도 유미주의자에게는 자기 영토가 있다. 비록 그 영토가 무르고 질척질척한데다가 낮은 울타리로 성기게 둘러져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있기는 하다.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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