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는 덴마크 출신의 아스거 욘(Asger Jorn)을 단순히 표현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사회참여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려는 기획인데, 나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으므로 그 재조명이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가 없다. 다만 코브라(CoBrA)라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던 것,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주도했던 것, 북유럽 전통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했던 것 등을 가지고 사회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결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느껴졌다. 쿠르베로부터 이어져온 사회참여적인, 소위 정치적인 예술가들의 계보에서 그의 활동이 얼마나 의미 있는 발자취로 도드라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누군가를 사회참여적인 예술가로 칭하려면 적어도 그가 이 사회의 진실한 문제들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 보이거나,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반영해야 한다. 그 작품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해야 한다. 예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이번 전시에서 아스거 욘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들을 보지 못했다.


그의 지배적인 화풍은 아무래도 앵포르멜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초록, 파랑, 노랑, 빨강의 원색적인 색채 감각이 두드러진다. 이미지 속 모티브는 호안 미로나 파울 클레의 영향이 느껴진다. 전하려는 메시지에 따라 당대 주류였던 초현실주의를 차용하기도 하고, 기존 회화를 덧칠하고 수정하는 작업도 선보였다. 이는 전통적인 서구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아카데미즘의 권위를 전복하는 활동이고,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가 아닌 예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다.

그가 매우 지적이며, 비평적이며, 창조력 넘치는 매력적인 인물인 것은 확실하나 전시 제목이 암시하는 바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의문 속에서 관람을 이어가야 했다. 근자에 몇몇 전시들은 작품들 보다 오히려 한 편에서 틀어주는 동영상이 더 흥미로울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전시를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틀어주는 다큐멘터리는 욘의 생전 창작 모습과 지인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었는데, 독특한 개성의 인격체를 만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였다. 어쩌면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는 이유는 그것을 창작한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배경에 대하여 더욱 긴밀히 알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전시장을 빠져 나오면 덴마크에서 작품들을 운송할 때 사용했던 나무 상자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레이트라고 불리는 이 운반함들은 미술작품을 보관하고 운송하는데 적합하도록 설계되는데, 작품을 꺼내고 난 후에는 별도의 창고에서 보관하기 때문에 일반 관람객들이 마주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런데 이번 아스거 욘 전에서는 오로지 전시를 위한 오브제가 전시의 대상이 되었다. 전시에 관한 전시가 되었으니 일종의 ‘메타-전시’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크레이트를 전시의 오브제로 삼은 것은 덴마크의 욘 미술관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 작품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는 전략일 것이다. 나아가 이 전시를 위하여 헌신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노고를 암시하기도 한다. 사실 그 의미를 떠나서 빨간 글씨가 새겨진 이 하얗고 견고한 나무 상자는 그 자체로 미학적인데, 어딘지 모르게 ‘북유럽스러운’ 견고한 가구를 연상케 한다. ‘전시를 만든 물건이 전시의 대상이 된다’, 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실험을 얼마든지 환영할 것이다.




며칠 전에 같은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이케아 부분은 저도 완전 공감해요! ㅋㅋ 그런데 저는 이 전시를 굉장히 인상깊고 재미있게 봤는데, 아마 “대안적 언어” 라는 대주제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작품들을 감상해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같은 전시를 본 분의 다른 견해가 신선해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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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감사합니다~ 크레이트에서 발견한 북유럽 갬성! ㅋ 뭐 작품들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다지 개성적이거나 의미가 깊다는 느낌은 안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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