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이번 강의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후 3년이 지나 이루어졌다. 나는 푸코의 관심사 중에서도 특히 통치술이 인간의 신체에 작용하고 그것을 규율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낀다. 이번 강의의 제목은 여지없이 그 관심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 단계(안전, 영토, 인구; 1977~78)를 건너뛰고 곧장 이리로 달려 왔다. 하지만 내 기대는 무너졌다. 역시 천재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이번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것처럼 여겨졌던 생명관리정치의 구체적인 양상들은 운만 떼다가 결국 사라졌다. 오히려 그것에 이르기 위한 계보학적 과정, 즉 서론만 이야기하다가 끝났다. 푸코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확실하게 말씀드리면 애초 저는 생명관리정치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이토록 길게, 아마도 너무 길게, 신자유주의에 대해, 독일적 형태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논의하게 됐네요. 263

263p

그러나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명관리정치 쪽보다는 신자유주의 쪽이 훨씬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이성애자-남성-지식노동자’인 나에게는 몸이 규율에 얽매인 상황이 그리 많지 않고, 오히려 정치경제학적인 권력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빈번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율성에 기초한 혁신, 그리고 국가의 책무성 강화라는 딜레마 속에서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할 때가 부쩍 많아지기도 했다.

얼핏 보면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생명관리정치로 이어지는지 잘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찬찬히 훑어 나가는 푸코를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단순한 경제학적 논리나 철학이 아니라 거대하고도 포괄적인 통치테크놀로지이며, 개별 주체들을 세세하게 재규정하고 관여하는 고도의 책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푸코에게 신자유주의는 생명관리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식 틀이었다.

제가 연구하고자 했던 것은 미시권력의 분석 혹은 통치성의 절차의 분석이 정의상 일정한 단계의 특정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원과 무관하게 모든 차원과 관련해 유효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 하나의 해독방법으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264p

생명관리정치의 일반적 틀로서 자유주의를 연구할 것.

446p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전략, 즉 단순히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위하여 개별 주체의 자유를 방임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경쟁을 부추김으로서 확립되었다.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드는 작업은 그것을 촉진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제 개별 구성원은 신자유주의의 부속품으로서 완전하게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게임의 룰에 부합하는 전략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특히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 다소 결을 달리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생산성의 촉매제로서 인적자본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데, 이에 따르면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하는 모든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가족, 사랑, 친교 등 경제활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삶의 영역 속에서도 경제적인 경쟁과 타산의 가계부를 작성한다. 예를 들어 연애와 결혼에서도 내가 얻고자 하는 것(예: 性)과 줄 수 있는 것(예: 錢)을 계산하게 되고,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과정에서도 투자-회수 관점의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 모든 과정은 절대 본능적·생득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에 의하여 교묘하게 학습되어 당연시되는 궤적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다(338~343p).

오직 호모 에코노미쿠스인 한에서만 그 개인이 통치가능화되고, 그 개인에게 영향력이 행사될 수 있다.

353

푸코는 언제나 철학, 권력, 학문, 그리고 인간 자체를 아주 섬세한 계보학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푸코의 방식은 보편적인 발전의 방향을 상정하는 변증법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가려진 교묘한 의도, 그리고 권력을 상정하는 해체의 과정이다. 이번 강의에서 특히 통치술 및 통치 도구가 자유주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주의적인 경쟁의 촉진이 통치술을 만들어 나갔다는 역방향의 논리가 인상적이다. 이런 역방향의 침투는 푸코의 주특기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들을 변혁시켜 주는 유용한 지적 훈련이다. 예컨대 마약을 원천적으로 규제하면 가격이 극단적으로 인상되어 독점과 범죄가 발생하니, 차라리 범죄를 유발하지 않는 적정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다는 식이다(363p). 인류 역사에서 마약을 원천 소거해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가격 정책을 펼치는 것이 마약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낫다. 이것이 인간학적 의미를 소거해 버리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결론이다. 모든 인과관계는 절대로 선형적이지 않다.

여러 지적 즐거움을 주는 강의였음에도 역시나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 같은 필부필부들은 지식의 현란한 여정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현실적이고도 즉각적인 답에 갈증을 느낀다. 신자유주의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경제 체제임이 명백해진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이 제도의 온갖 부조리들을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푸코는 이번에도 역시나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푸코가 원했던 것은 세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변화해왔고, 그것을 주도했던 것은 누구였으며, 그들의 명시적인 통치전략에 숨은 의도는 무엇이었는지를 우리가 아는 것, 그것뿐이다. 일단은 알아야 한다. 깨우친 자 한 사람이 주체로서 당당히 서면, 일단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 사회는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내일로 그려질 것이다. 푸코가 알려준 지극히 주변적이면서도 풍성한 지식의 계보학을 온전히 흠향해야만, 우리는 통치 대상으로서 뭉뚱그려지는 비극으로부터 벗어나 실존적 주체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다.


메모장

1.

푸코의 연구: 모든 인간학적 보편 개념에 대한 체계적 회의주의. 모든 보편 개념이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의 역사는 어떻게 새로 쓸 수 있을까?
새로운 통치술의 요체: 중상주의, 내치국가, 유럽의 균형.
통치 외부에 있던 법률적 제한은 18세기 중반의 정치경제학으로 옮겨 갔다. 이것은 통치의 내적 규제다. 성공이 합법성을 대체한다.(공리주의적)
주제: 44p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진실의 체제가 있다. 45
올해의 주제: 생명관리정치의 일반적 틀로서 자유주의

2.

18세기 중반. 규제해야 하는 시장에서 자유시장으로의 전환. 내버려 둘 때의 가격이 진실한 것.
정치경제학은 통치실천이 어디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시장. = 사법진술로서의 시장이 아닌 진실진술의 원리로서의 시장의 난입.
그것의 원인은 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62
사법진술: 너는 무슨 행위를 했느냐?
진실진술: 너는 누구냐?
중요한 것은 진실진술 체제의 계보학. 진실의 법권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참 혹은 거짓이 어떻게 분화되는가?
통치 규제의 1 법권리=혁명주의자의 방법. 2 통치실천=유용성의 기준(공리주의)
유용성이 대두된 이후 통치는 사물(토지)이나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가하지 않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이제는 처벌도 신체를 통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잘못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타산을 따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3.

자유시장에서 적정가격은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를 만족시킨다. 제국주의적 유럽에서 탈피하여 모든 국가가 서로 자유롭게 거래하면서 제로섬이 아닌 집단적 부유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가 유럽의 시장에 동원되어야 한다.
즉 세계시장 개척은 무한대의 내치국가적 개입과 국제관계 속에서의 충돌을 조정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유주의의 본질. 97
자유주의는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는 자유를 생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101 또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생산하고 부추기기도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개입이 자유를 속박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케인즈식 자유주의의 위기
규제 측정이 어려운 이유: “체계들 간에 자유의 폭을 측량하는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증명방식, 어떤 종류의 측량 또는 측정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100

4.

독일에서 전후 재건을 위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매우 빠르게 받아들여졌으며, 맑스주의자들의 동의가 이어졌다. 맑스주의자들이 자유주의에 빠르게 동조했던 이유는 전후 독일에서 근본적이었던 것이 경제이며, 역사적/사법적 틀은 차후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경제가 모든 것을 규정짓고, 국가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존립을 위하여 신자유주의체제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치성의 게임에 참여하기 위한 사회주의의 배반.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통치합리성이 없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여러 통치성에 접속된 상태에서만 작동 가능했다. 자기 것이 아닌 통치성과 결합된 사회주의가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사회주의는 그만의 통치성을 발견해야 한다. 나아가 발명해야 한다.

5.

독일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나치가 추구한 국가의 확대 노선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이었다. 이들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의 미비점을 시장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 국가 고유의 합리성에 내재한 미비함의 탓으로 돌렸다. 국가의 감시 아래 있는 시장이 아닌, 시장의 감시 아래 있는 국가를 제안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18~19세기에 정식화된 자유주의의 병폐에 대한 보완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국가의 권력과 사회 조직을 형식화하는 힘이 어디까지 확장되는가에 있다. 이제 시장의 원리는 교환이 아닌 경쟁이 된다. 즉, 등가가 아닌 불평등이다. 여기에는 경쟁이 자연적으로 순수한 무엇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사실상 경쟁은 특수한 조건 아래에서만 산출되는 것으로 자연적(선험적)인 것이 아니다.

6.

정치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는 행정적 간섭의 은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이 아니라 경쟁을 보장(촉진)하기 위한 체제의 구축을 지향한다.
자유주의에서 독점은 언제나 문제가 되는데,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가 경쟁 메커니즘에 부당하게 개입했기 때문에 독점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즉, 경쟁을 온전히 상정하는 정책이 작동한다면, 독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정책에 있어서도 개인들의 위험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대면할 수 있는 경제적 공간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원에서 미국의 무정부적 자본주의가 발달하였으며, 온갖 종류의 민영화가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사회에 관여하는 방식은 생명정책, 즉 기업을 최소 단위로 하는 관리를 지향한다. 모든 주체를 기업화 하고 이를 분화/파급하는 것.
1930년대부터 질서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통치술은 소비사회, 대중사회, 스펙터클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다양성과 차별화에 기초한 사회를 지향한다.

7.

신자유주의 관점의 사회적 개입주의는 경쟁의 보장이라는 원칙을 전제로, 그것을 목표로만 의미를 갖는다. 제1목표는 반-경쟁적 메커니즘의 소거. 이러한 사회정책의 두 모델은 기업사회와 사법사회.

8.

생명관리정치는 권력과 통치성의 문제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은 국가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이 과잉되었던 1930~50년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즉, 신자유주의 분석이 강제수용소 분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개입을 파시즘, 나치즘과 연정선상에 놓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특정 정당의 강화, 그리고 이로 인한 국가의 약화로 이해해야 한다. “파쇼화의 절차가 국가에 속한다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된다” 이 환상을 깨기 위해 독일 신자유주의 모델을 연구하는 것.
독일 모델의 프랑스 이식은 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집권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독일 모델을 차용했다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은폐되는 경향이 있다.
개입은 누구도 원치 않게 참여한 경제 게임에서 누구도 이탈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또한 일할 의지를 꺾지 않는 최소한의 적정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부의 소득세는 문제의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오직 현재 상태를 개선하는 효과만을 건드려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부의 소득세는 또한 상대적인 빈곤이 아닌 절대적인 빈곤에만 관여한다.

9.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와 전쟁의 사회계약(국가를 위해 싸워주면 국가가 후일을 책임져 주겠다)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단순한 통치방식이 아니라 존재방식이자 사유방식이다.
미국 자유주의의 특이점: 인적자본론.
인간의 노동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본이며, 합리적인 교환을 하는 주체이다. 이들은 선천적, 후천적 능력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교환에 참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인데, 여기서 생명관리의 증요성이 대두된다. 인적자본의 구성, 증대, 축적, 개량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 그리고 후천적인 범주에서는 교육, 훈련, 이주 등의 문제가 대두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윤율의 저하에 맞서 혁신의 필요성을 제안하는데 혁신은 인적자본의 고도화에 기대고 있다.

10.

미국 신자유주의는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관계 역전이다. 즉, 경제가 사회를 정의한다. 독일 질서자유주의자가 도입한 것은 사회 전 구성원과 개인의 기업화인데,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이것을 극단까지 밀어부친다. 즉, 모든 사회적 관계와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시장경제 형식으로 일반화하려 한다. (예: 부모-자식 관계) 또한 경제를 기준으로 모든 법, 형벌, 처벌을 재규정하려 한다.
법은 유용성 측면에서 재구성된다. 형벌의 관점은 개별적 주체로 이동한다. 그 주체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형벌의 증감과 법적 규제의 증감은 수요공급 논리로 계산된다. 유용성이 기준이 된다. 형벌행위는 이득과 손실의 게임이다. 364

11.

법과 계약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해관계와 상거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법권리의 주체와 이해관계의 주체는 상당히 다른데, 이해관계의 주체는 법권리의 주체를 포괄하면서 넘어선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근거 없는 낙관에 기반한 일종의 신학과 같다. 이 이론은 17세기부터 부던히 전개된 내치국가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12.

중농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이제 통치술은 법권리 측면에서나 유용성 측면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통치술이 주목한 새로운 영역이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는 철학적 이념이 아닌 통치테크놀로지이다. 법규범과 경제 원칙 모두를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개념화가 이루어진 것.
경제적 유대관계는 시민사회 속에 자리를 잡고, 그것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 이기심을 바탕으로 그것을 해체한다.
시민사회라는 관념을 통해 통치이성은 탈중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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