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THE REVEALING IMAGE 展 (용인 뮤지엄그라운드)

초현실주의자, 사진가,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초콜릿, 와플, 밀맥주를 뛰어넘는 벨기에의 대표상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친숙한 매개체들로 고도의 지적 유희를 유발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뜨내기들에서부터 저명한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다.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생각할만한 심오한 요소들을 고루 갖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마그리트는 그 어려운 과제에 성공한 대표적인 예술가다.

강남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뮤지엄그라운드에 도착할 수 있다. 미술관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고기리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고기리유원지 일원을 지나쳐야 한다. 여기는 실물크기의 공룡 모형이 삐걱거리는 삼류 놀이동산과 겉만 번지르르한 카페, 그리고 바가지 쓰기 딱 좋은 백숙전문점 등이 작은 휴양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미술관 인근의 이러한 이웃들과 대비되면서, 르네 마그리트의 사진들로 기획된 <THE REVEALING IMAGE> 展은 지적으로 다소 과잉된 느낌을 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곡을 찾은 가족들이 ‘어, 여기 미술관도 있네, 한번 볼까’ 하면서 쓱 들렸을 때, 웃으며 다시 나올 수 있을 만한 전시는 분명 아니다. 앙증맞은 스누피 팬케이크를 파는 카페가 3층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캐릭터 저작권 문제는 일단 묻지 말자).

전시의 도입부인 1, 2부는 르네 마그리트의 가족과 친구들의 일상적인 사진들로 시작했다. 알다시피, 예술가의 친인척들을 찍은 사진이라고 해서 특별히 예술적인 가치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여기 있는 사진들도 우리가 관혼상제에 남기는 사진들과 다를 바 없다. 약간의 컨셉 사진도 발견되긴 하나 딱히 대범하지는 않다. 다만 사진의 역사에서 아직도 여명기에 해당하는 20세기 초에 이토록 다양한 구도의 사진들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가 경제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상당히 여유 있는 환경을 누리며 자랐다는 사실만을 유추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시에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데 들어갔던 비용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마그리트와 주변인들이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은 크고 번거로운 카메라를 들고 다닐 누군가를 운용할 수 있으며, 카메라 앞에 서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며, 값비싼 인화지와 각종 안료의 비용도 감당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들을 상쇄할 수 있을 만한 자원은 예술적 성취에 있어서 거의 반칙에 가까운 이점이다.

미술관에서 언더그라운드라고 명명한 뻥 뚫린 중정을 지나 3부로 넘어가면 그나마 마그리트의 독특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제시된다. 마그리트와 그의 초현실주의자 친구들이 찍은 컨셉 사진들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마저 들릴 듯 생동감 넘치기는 하나,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저 기이한 행동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하나도 재미없다. 물론 이 소외감은 우리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100년 후에나 보게 될 후손들에게도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이어서 마그리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등장하는데 이 사진들이 사실상 이번 전시의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한다. 이 전시는 마그리트에 대하여 가장 저명한 수식어인 초현실주의 화가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마그리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회화의 사전 작업으로서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오늘날 재현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대부분의 작가들도 차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사진은 머릿속에서 유영하는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데 있어서 효과적인 매체이고, 그 재현적 성질 탓에 초현실적 이미지가 완전히 환상으로 탈주하지 않고 어느 정도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무엇을 재현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오브제들이 전혀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뒤섞여 있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부조리함은 오브제들의 사실성에 기대고 있는 바가 크다. 이 견고한 사실성을 강화하는데 있어서 마그리트의 사진 실험은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점차 뚜렷해진다.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이 같은 사진의 의미는, 그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일파가 주도했던 자동기술법에서 거리를 두고 형이상학적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전시는 마그리트의 실험적인 사진과 그 이미지를 토대로 제작된 회화의 모작을 나란히 걸어 놓아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었다.

마그리트는 수많은 사진을 남기며 이미지의 실험을 거듭했지만 정작 스스로 사진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공식화하는 것은 거부했다. 유복했던 그의 예술 경력을 통틀어서도 결국은 초현실주의 화가로만 남았고, 수많은 사진들은 그 재료이자 훈련의 기록으로서 제한적인 의미만을 지닌 채 최근까지도 서랍장 안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마그리트에게 어쩌면 화가라는 정체성마저도 하나의 제약처럼 느껴졌을 수 있는데, 그에게 회화는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사상을 담은 하나의 시각적 매개체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상을 만들어내는 철학자들에게 ‘철학책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듯, ‘철학적 시각예술가’에게도 그들을 효과적으로 명명할 수 있는 새로운 호칭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 대안적 언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1960년대 이후 등장한 ‘개념미술가’로는 아우를 수 없다는 것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마그리트와 달리, 그들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화면을 선물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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