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John Berger(1996), Photocopies

“그리기의 충동은 눈에서보다 손에서 온다.”

38p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에 대하여 묘사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아마도 두 종류로 나뉠 것이다: 휴머니스트이거나 외로운 사람이거나. 휴머니스트는 모두를 사랑한다. 외로운 사람은 모두를 갈망한다. 둘은 맞닿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우리 마음속에는 휴머니스트와 외로운 사람이 조금씩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둘이 싸워서 누군가는 이기게 되어 있는데, 누가 이겼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존 버거(John Berger)가 휴머니스트에 가깝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예리한 감각과 탁월한 지성으로 예술과 사회 전반에 걸친 아름다운 글들을 남겼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든 혁명가에게 그렇듯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가 택한 방법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인간이 싸질러 놓은 똥 덩어리들을 피해 차라리 소똥을 치워주며 사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산속에서 외롭지 않았을까를 염려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드러나듯, 그의 삶은 매우 풍요로웠다. 그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느낀 바를 썼다. 제목은 「포토카피」지만 외형적 서술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외형과 행동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썼다. 늘 그렇듯, 그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소외되고, 아프고, 고고한 정신을 잃지 않고, 욕심 없고, 어딘가 모자라고, 좌절하고, 개성적인 사람이다.

이 책은 단순히 주변 사람들을 소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존 버거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대감을 표명하고, 그것을 영구적인 증거로 남기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독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한 상실감을 더 느끼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은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절박감으로 써 내려갔다. 이러한 주제의식이 인용된 아인슈타인의 편지글에 녹아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연대감은 너무도 커서, 한 개인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죽는가는 내게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아인슈타인, 65p

존 버거는 소외된 자들에게 정서적 위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특히 그에게 작품을 들고 온 순수한 예술가들의 열망에 어떻게든 답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유력 미술평론가 중 하나로 불리는 그였음에도, 줄 수 있는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는 물감 하나도 사줄 수가 없었다.

“내가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영향력있는 미술비평가 중의 하나라는 신문 기사를 가끔 본다. 하지만 파리 또는 다른 어느 곳에서나, 내가 아는 미술품 거래상은 한 사람도 없다. 전무하다. (중략) 그런 쪽에서 내 능력은 전무했다. (중략) 나는 저 맹렬하게 그려진 캔버스가, 그림 자체가 지닌 위엄만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것을 보고 싶었다.”

104p

존 버거는 그런 순간을 보지 못했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자식과 그 자식들의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술은 제도에 실려 우리 시야에 들어오고, 그 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돈이며, 미술사를 통틀어 그렇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먹고사는 문제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을 작품을 그리기 위해 골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은 지금도 넘쳐난다.

“아모르 이 돌로르(Amor y dolor, 사랑과 고통), 이 두 낱말은 운만 맞는 것이 아닙니다. 둘은 함께 동맹하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148p

역시나 해법은 없다. 존 버거는 해법을 내리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을 움켜쥐기 위해 한 번이라도 손을 뻗어보기를 바랄 뿐이다. 남겨진 많은 말들이 미처 붙이지 못한 추신으로 남았다. 마르코스를 인용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손가락 사이에 무언가 남아 있다고 느끼는, 문장을 이루기를 원하는 낱말들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끼는, 영혼의 주머니를 완전히 다 비우지 않았다고 느끼는 그런 때가 있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랴. 대체 어떤 추신이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 끝없는 악몽을, 그 다함 없는 꿈을…”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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