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블록 엮음,「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로런스 블록(Lawrence Block)과 그의 소설가 친구들이 함께한 ‘미술 작품으로 소설 쓰기’ 프로젝트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첫 번째 결과물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 17점에서 영감을 받은 17편의 소설로 구성된 「빛 혹은 그림자」였다. 이 프로젝트는 한 위대한 화가의 작품들이 빚어낸 보석 같은 상상력과 개성이 넘쳐나는 무대였고, 프로젝트 전반의 참신함과 개별 작품들의 높은 완성도가 맞물려 독보적인 성취를 남겼다. 그 좋은 기억 탓에, 이번 신간에도 자연히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번 소설집에 참여한 다수의 작가가 전작과 겹친다. 여러 사정으로 물러난 작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자리는 역량 있는 새로운 작가들이 채웠으므로 걱정할 바가 못 된다. 전작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강력한 원칙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어떤 화가의 것이라도, 미술 작품이기만 하면 상관없었으므로 소설가들에게도 더욱 풍요로운 영감의 원천이 보장된 셈이었다. 이 부분은 분명 이번 소설집의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게 할만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본질적인 차이가 되려 품질의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면, 전작에서는 각각의 소설들이 한 화가의 작품들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 권으로 엮인 여러 이야기의 개성을 오히려 더욱 반짝거리도록 부추기는 요인이었었다. 호퍼의 그림들이 서로 다른 풍경과 주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더라도, 결국은 한 사람이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일정한 공통의 토대를 공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동일한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소설가가 그것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새로운 화학작용들이 행간에 넘실거릴 수 있었고, 그 풍요로운 조화 속에 독특한 생명력을 지닌 프로젝트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화가 및 작품 선정에 있어서 강력한 제약 조건이 없어졌다. 각 소설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꺼내게끔 만드는 어떠한 그림이라도 전면에 내걸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하나의 그림에서 출발했다’는 기본적인 전제 외에는 여러 이야기를 관통하는 긴밀한 토대가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여러 소설가가 한자리에 모인 이유 자체가 의문스러워졌고, 덩달아 프로젝트 전반의 매력도 떨어졌다. 개별 작품들이 대단히 훌륭해서 하나의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 때마다 감탄이 연발되었다면 그들이 다시 모인 이유 따위를 되묻지는 않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반문하고 싶어졌다. ‘이럴거면 왜 다시 모인 거야?’

엮은이 로런스 블록도 이런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다. 엮은이 서문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설가들로부터 어느 정도 공통적인 이야기의 결을 뽑아내기 위하여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모종의 신호를 보낸 것 같다. 그렇지않고서야 여기 실린 17개의 이야기가 이렇게 공통적으로 한 지점을 향해 내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지점이란 살인, 납치, 폭행, 자살, 절도, 복수, 강도, 강간, 강금이다. 모든 이야기가 이런 어둡고 격정적인 주제에 천착한다. 물론 지금의 미국 사회가 워낙에 자극에 길들어 있으므로 아무런 신호 없이도 모든 참여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이 방향으로 내달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쨌든 모든 소설이 강력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나처럼 법 없이도 사는 소시민으로서는 중반 이후부터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전작이 보여주었던 개성적인 이야기들의 향연은 끝났고, 이제는 살육의 향연만이 남았다.

그래도 몇몇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훑어보면, <세 번째 패널>은 살육의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를 배경으로 촘촘한 복선과 강한 임팩트의 반전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의미 있는 발견>도 흥미로운 반전이 인상적인 치정 살인극인데, 저렇게까지 공들이는 살인이 가능할까 싶다. <이발사 찰리>는 범죄의 한복판에서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대사와 액션은 헐리우드 범죄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는 이미 신화화된 반 고흐를 더 깊고 울창한 신화의 숲에 던져 넣는 작품이다. 작가는 누구나 반 고흐의 이야기인 것을 뻔히 앎에도 굳이 ‘반 도른’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 이름의 한국어 어감을 고려하기라도 한 것 같다. <아름다운 날들>은 천재 예술가에게 감금된 희생양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작품인데, 고어-판타지스러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처럼 섬뜩함을 선사한다. <가스등>은 치밀한 환각 살인극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몽롱한 심리묘사가 일품이다.

이상의 간략한 소개에서 알 수 있듯, 여기 실린 작품들은 모두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만약 엮은이가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는데 이러한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라면, 미국 사회는 정말 중병에 걸렸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생명을 유지하고 전파하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생의 유일한 목적이나 다름없기에, 그것을 심대한 위험에 빠뜨리는 작품은 당연히 몰입을 이끌어내기 쉽다. 솔직히 나부터도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다른 길로 가는 <조지아 오키프의 꽃 이후>가 가장 재미없었다(나는 전작에서도 게일 레빈(Gail Levin)이 소설가로서는 형편없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그럼에도 ‘그림을 정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이 프로젝트의 매력적인 전제조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의 가능성이 살인, 납치, 폭행, 자살, 절도, 복수, 강도, 강간, 강금에 국한된다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하나의 그림과 이야기가 만나서, 더 깊고 풍성한 감동으로 우리를 인도할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미개척지로 남아있고, 로런스 블록의 두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의 꽃봉오리를 살짝 건들고 지나간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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