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미술관의 「20세기 미국 미술: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Lisa Phillips et al.(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The American Century: Art and Culture, 1950-2000

휘트니미술관 테라스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인증샷을 찍고, 1층 레스토랑 “Untitled” 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호퍼(Edward Hopper) 기념품을 잔뜩 샀던 것이 불과 10개월 전인데, 마치 10년은 지난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모두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책은 미국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1950년부터 영원히 쇠락하지 않을 대제국의 면모를 과시했던 2000년까지를 교과서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 야심차게 도전했던 추상표현주의자들의 땀냄새, 미국의 물신주의적 본질을 정확히 꿰뚤어 보고 그것을 주류 예술계의 언어로 승화시킨 팝아티스트의 허세, 그리고 미술을 매개로 온갖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던 아방가르드들의 유토피아가 모두 담겨있다.

흠잡을 구석 없이 잘 정리된 책이다. 격동의 50년을 10년 단위로 잘라서 주제를 부여하고, 그 틀 안에서 주요한 경향을 중심으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였는데, 그 연결이 대단히 매끄럽다. 10년 단위로 주제를 정한다는 설정은 시간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작위성을 피할 수 없으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주류 미술관 답게 별다른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정치, 사회, 경제사의 토대 위에 미술을 중심으로 무용, 연극, 음악, 문학, 영화, 건축 등을 입체적으로 엮어 문화 전반의 다층적 구조와 상호작용을 포섭하려는 시도가 특히 주효했다.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시계열의 끝 지점에서 불과 20년을 더한 지금에 와서는 자국의 제국주의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던 아방가르드들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표지에 인쇄된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성조기도 유난히 퇴색되어 보인다. 그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미국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파멸의 시간은 눈 앞에 닥쳤다. 성조기는 인류 번영의 역사관, 그 가장 높은 첨탑에서 하강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반성과 성찰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급격한 쇠락은 필경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격한 반동을 끌어낼 것이 자명하므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중심의 이동은 누군가에게 재앙의 전조로 읽힐지 모른다.

설령 미국의 시대가 끝나더라도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과 이야기는 성물로 길이 남아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세계사적 질서의 대격변이, 예술의 지형도를 어떻게 다시 그리게 될지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겠지만, 내 생전에 그 “끝”을 온전히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빠를 리는 없다.

여기서 끝이란,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경영난으로 도산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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