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

Stephen Edwin King, On Writing

(‘글쓰기에 관하여’라는 쌈빡한 원어 제목은 저자의 명성과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국어판 제목은 엉뚱하게도 글쓰기로 잔재주 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구하고 있다. 저자가 “글쓰기는 유혹”이라고 선언하기는 한다(163p). 하지만 이는 좋은 글이 지니는 속성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글쓰기로 유혹하고 싶은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성공한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무언가로 성공하고 나서 성공한 방법을 가르쳐 다시 성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공하려면 일단 성공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이 성공한 비법을 일부 담고 있다. 전부는 아니다. 인간의 능력과 재능에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흔히 ‘타고났다’고 일컫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본인도 그 능력을 어떻게 타고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축구로 따지면, 천재적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게 왜 안돼?”

나는 천부적인 능력을 신봉하고, 심지어 번뜩이는 섬광 같은 신비한 영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혹자는 그런 인식을 반동적인 신화화라고 경계하며 비평적 냉철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압도적인 창작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불가해한 경이로움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인과관계는 범인들의 영역에 속한다. 천재들에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천재의 산물에 원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하면서부터 비평은 꼬이기 시작한다.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스티븐 킹도 글쓰기가 어느 정도는 천부적인 능력의 소산임을 여러 차례 암시한다.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182p) 문제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느냐는 점, 그리고 깨달은 재능을 효과적으로 갈고닦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저자가 내놓은 글쓰기 솔루션들은 사실상 재능을 타고나기 마련이라는 전제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따라서 재능이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거의 무가치할 것이다.

이 책에 스티븐 킹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담겨 있고, 그가 노력한 흔적들도 역력하나, 그럼에도 인류사에 그 정도 궤적을 거친 창작자는 발에 채인다는 점, 그리고 그가 남긴 성과들이 기념비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스티븐 킹은 천재가 맞다. 그러므로 범인들은 그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걸러서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스스로의 창조성과 영감을 믿기 때문에 탄탄한 플롯을 짜놓기보다는 일단 핵심적인 골자만 정해놓고, 그 중심 서사를 따라 단박에 기술하는 식으로 창작한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나에게 통하는 방법이라면 아마 여러분에게도 효과적일 것이다(204p).”고 설득하나, 이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 창작의 방식이나 성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창작론의 두 가지 명제는 기본(연장통)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노력하면 나아진다는 것
  • 아이디어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이미 내 안에 있는 아이디어를 알아차려라(43p).
  • 창작을 위한 연장통을 늘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연장통은 낱말, 문법,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연장은 풍부하고 정확해야 한다. 지금은 허접하더라도 노력하면 나아진다. 먼저 떠오른 단어를 사용하라. 문법을 파괴해도 되지만 그러려면 우선 정석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수동태 보다는 능동태를 써라. 독자 편의적으로 써라. 대화문 사이사이에 부사를 넣지 말라. 무엇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151p).”
  • 비난을 두려워 말라. 비난을 수반하지 않는 글은 무가치할 글뿐이다(59p).
  • 진지함은 최고의 덕목이다. 글쓰기는 진지한 정신 감응이다(130p).
  • 많이 읽고 많이 쓰라(176p).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없는 사람이다(179p).”
  • 내가 좋아서 써야 한다(193p). 일단 매일 습관을 정해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나아갈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186p).” 그러니 플롯을 정해놓고 거기 얽매이기보다는 일단 지껄여보라.
  • 묘사는 핵심만 추려서 간단하게 남겨라. 독자들은 생각보다 당신의 의도를 잘 알고 있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그들을 얕잡아 보지 마라. 묘사를 늘리는 것은 부사를 늘리는 것과 같다(215p).
  •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221p). 대화문을 잘 쓰려면 대화를 많이 경청하라.
  • 듣기 좋은 말보다는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검열을 두려워 말라.
  • 상징성이 없어도 되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면 가다듬는 편이 낫다.
  •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256p).” 그 반대인 경우는 거의 없다.
  • “수정본=초고-10%”, 이 공식을 상기하라(275p). 다 썼다고 생각하더라도 도려낼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보다 남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쉬운 법이다.”(262p)
  • 가상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면, 심지어 그가 존재하지 않을 때라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함이 최선의 덕목이라는 것일진대, 사실상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시 상기하고 실천하면 그뿐이다.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은 예술과 창작에 대한 태도이다. 스티븐 킹은 한때 의존했던 마약과 알코올의 수렁에서 벗어나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124p).”라고 결론을 내렸다. 창작을 위해서 자신의 건강과 오래 누려 마땅할 인생의 즐거움들을 좀먹을 필요는 없다. 자신을 죽여가며 탄생한 작품이 설령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줄 수 있을지언정 내가 빛을 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예술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사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들 무덤 속 백골은 레드 카펫을 밟지 못한다. 예술은 세상을 바꿔야 하고 그전에 그것을 만든 사람을 바꿔야 한다. 내가 사라진 채 세상만 바꿨다면, 그 작품의 성취가 아무리 큰 것이더라도 반쪽짜리에 그칠 뿐이다.

모든 창작의 과정이 그러하듯, 글쓰기도 매일매일 분투하는 생의 업에 불과하다. 섬광 같은 영감이 중요하다지만 그것을 한 달에 한 번 기다리기보다는 매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창작은 현실과 괴리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스티븐 킹이 책상을 서재의 정중앙이 아닌 한쪽 귀퉁이에 놓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일상의 순간들과 창작이 나란히 놓인다.

작가가 되려면 일단 제목과 이름을 쓰고 첫 문단을 쓰자.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피카소).” 루스 아사와(Ruth Asawa)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앉아서 일을 한다. 조각은 농사와 같다. 그냥 계속 꾸준히 하면 상당한 양을 해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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