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오리 가족

충북혁신도시의 작은 실개천에서 쇠오리 가족을 만났다. 며칠전부터 여기서 목격되는 것을 보면 아예 이곳에서 올 겨울을 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경계병 하나를 세워 두고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다. 겨우내 부지런히 살을 찌워야 봄이 오면 새로운 여정에 오를 수 있다. 물 속에 머리를 박고 먹을 것을 찾거나, 짚 더미를 헤집으며 작은 곤충 따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먹이가 나오는 명당을 서열 순서대로 점유하기로 합의가 된 듯, 한 녀석이 어지간히 먹고 나면, 곧 이어 새로운 녀석이 부리로 쪼면서 자리를 비키라고 채근한다. 쫒겨난 녀석은 멋쩍게 뒤뚱거리며 다시 개천으로 뛰어든다.

녀석들이 선택한 터전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주변은 최근 몇년 사이 들어선 아파트와 상가로 둘러싸였고, 실개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북적이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다행히도 쇠오리 가족이나 주민들이나 서로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쇠오리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잠복근무 중인 게으른 고양이 한 마리뿐이다. 쇠오리 가족이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한 마리도 낙오되지 않고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고, 아울러 고양이도 배를 곯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적이고 양가적인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이 비좁은 개천에 무슨 먹을 것이 있다고 일고여덟마리나 되는 가족이 정착했는지 의문인데, 그래도 간간이 쇠물닭이나 백로까지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면 나름 생태계가 형성된 모양이다. 이렇듯 인간이 관심만 끄면 어디에서건 생태계는 금새 복원된다.

쇠오리 가족이 이동 중에 우연히 이 곳을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조상 대대로 학습을 통해 이곳을 꾸준히 찾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도시의 성장세와 부동산 과열 조짐을 보면, 쇠오리 가족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겨울을 이곳에서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아직은 시골이지만, 그래도 신도시는 신도시라고, 사람의 흔적은 그나마 남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들을 밀어내기에 급급하다. 내년 겨울에도, 내후년 겨울에도 이 실개천에서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는 쇠오리를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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