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의 「옛 그림으로 본 서울: 서울을 그린 거의 모든 그림」

나에게 서울은,

나에게 서울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한다.

강원도 태백에서 산 타고 놀다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의정부로 이사 왔다. 경기 북부에서도 낙후된 동네였는데, 지붕이 맞닿을 듯 오밀조밀한 다세대 주택 천지였고, 동네에 단 한 동뿐이던 아파트는 이제 막 삽을 뜬 참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집과 사람이 그렇게 빼곡하게 밀집된 동네에는 발 디딘 적조차 없이 살았다. 전신주마다 위태롭게 치렁치렁 가득 꼬인 전선이 참으로 생경했다. 그때는 거기가 서울인 줄로만 알았다. 당시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심결에 “우리 마을”이라는 단어를 종종 썼는데, 그때마다 그런 단어는 시골에서나 쓰는 말 아니냐며 놀림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는 “마을”이라는 말 대신 “동네”라는 말을 쓴다나? 의정부가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은 조만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아동기의 끝자락에 서울권의 변두리에 입성한 셈이다.

진짜 서울 생활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시작되었다. 처음 2년은 통학했고, 이후 2년은 화양동에서 최저의 주거요건을 찾아 가까스로 몸을 욱여넣고 살았다. 졸업 후 군복무와 직장생활은 타지에서 보냈지만,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다시 화양동으로 돌아왔다.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왕성한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약 10년 이상을 화양동에서 보낸 셈이므로, 현시점에서 화양동을 내 근거지로 반추한대도 크게 무리는 없다(혹여 훗날 광진구 지역구 의원이나 지방의원으로 출마하게 된다면 이 말을 다시 발굴해서 써먹어야겠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생각에 잠겼던 것일까.

화양동에서 살았던 시기가 나의 성장에 미친 가장 큰 심리학적 의미를 하나 꼽으라면, 거기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온갖 경험들을 통해 내가 그저 보통 사람이라는 것, 즉 나 자신이 특출나게 똑똑하거나, 창의적이거나, 드라마틱한 성장과정을 거쳤거나, 이른바 ‘위인급’의 자질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대목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거의 중학교 때까지도 나 스스로 장차 위인전기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처참한 환경을 뚫고 기적처럼 피어난 저 고결한 연꽃과 같은 성공스토리의 주인공 말이다! 내 위인전기를 쓸 사람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일기, 상장, 편지, 사진 등과 같은 나 자신의 조잡한 사료들을 아카이빙하기까지 했으니! 이토록 거의 반사회적일 수준에 육박하는 과도한 자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준 곳이 화양동이니 어찌 고맙지 않을쏘냐.

그러면서도 그간 화양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아볼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최근 최열 선생의 신간을 읽으며 화양동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어 즐거웠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자마자 살곶이벌 일대를 말 치는 목장으로 정하고 행당동 중랑천변에 마조단을 설치해 조상에게 예를 올렸다. 말이 군사와 교통 면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 세종은 마장을 둘러보고 교통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행당동에서 성수동 뚝섬으로 이어지는 살곶이다리를 개설하고 말의 양육 상태를 관리감독할 정자인 화양정(華陽亭)을 건립하게 했다(280p). 화양동의 유래가 되는 이름이다. 오늘날 화양동에는 말 대신 그보다 활달하고 정력적인 청년들이 우글거린다. 화양동을 떠나서야 화양동을 알게 되었다.

마장이었던 살곶이벌은 오늘날의 면목동, 중곡동, 송정동, 화양동, 성수동 일대를 아우르며, 그 인근에도 장안평이라는 벌판에서 마장이 융성하였다. 장안평은 오늘날 사근동, 마장동, 용답동, 장안동, 답십리동 등을 일컫는다. 이 중에서도 면목동과 마장동은 마장에서 직접적으로 유래된 지명이다.

살곶이벌 일대 마장을 그린 지도인 <마장 진헌마정색도(1678)>가 책에서 소개되었다. 숭무정책과 북벌정책을 추진한 효종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군사적 가치가 큰 마장의 구조를 단순 명료하게 보여준다. 지도로서 지리정보를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말의 생동감 넘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내어 미적 가치도 충족하고 있다. 명료함과 아름다움은 대치되기 쉬운데, 그 적절한 균형에 디자인의 정수가 있다. 그림 속 말은 용맹하게 달리거나 서로 부대끼거나 천진난만하게 뒹굴거리거나 멍하니 앉아서 쉰다. 어느 하나도 같은 모양인 녀석이 없는 것을 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화가의 말에 대한 애정과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말에 미쳤던 화가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나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도 이 작품을 봤다면 소장하고 싶어 안달 났을 터다. 그들은 사진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이고 섬세한 화법으로 말을 그렸으나, 거침없는 최소한의 선만으로 대상을 추상화시켜 본질을 담아내는 화법에서는 <마장 진헌마정색도>의 화가에 미치지 못한다. 이 그림 속 풍경은 제주도의 마방목장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비행기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다는 점이 애석하기도 하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이 나라에서 말을 위해 옥토를 기꺼이 내어줄 여유는 없다.

작가 미상, 마장-진헌마정색도(1678), 국립중앙도서관

화양동이 속한 광진구의 유래도 재밌다. 예로부터 광나루는 강원도와 충청도의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로서, 군사와 물류의 요충지였다. 고려까지는 버들나루라는 뜻의 양진楊津이라 하였으나, 조선에 이르러 광진廣津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넓은 나루라는 뜻이므로 얼마나 번성한 나루였는지를 보여준다(321p). 문물과 사람이 오가는 번성한 나루에는 시장과 유흥이 발달하게 되어있고, 유흥에는 온갖 악행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루터 인근에는 망나니가 칼춤 추는 형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하루는 형을 집행하려던 차에 아차산고개 너머로 말을 타고 넘어오는 전령이 급하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집행관은 형을 재촉하는 것이라 여겨 처형을 서둘렀는데, 전령이 전하고자 했던 말은 그 죄수가 무죄라는 것이었다. ‘아차’하는 사이에 벌어진 사형이라는 의미에서 아차산이 유래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또 다른 유래설은 아침에 제사 드리던 곳이라는 의미의 아단(阿旦) 혹은 아차(阿且) 등이 있는데, 지금은 우뚝 솟았다는 의미의 아차(峨嵯)로 굳어졌다. 아마 처형 이야기는 그저 전설일 게다.

정선, 광진(18세기), 간송미술관

제목 그대로 16세기 이후 서울을 그린 거의 모든 진경산수화를 모았다는 이 책은 북으로 도봉에서부터 출발하여 서울의 중심인 백악산과 도심 일대를 꼼꼼하게 짚어보고, 이후 동으로 광나루, 서로 노량진까지 마치 저자와 함께 도보 여행을 다니는 듯한 경로로 구성되었다. 특정 지명과 공간에 얽힌 역사적 사연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피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돌이키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그 공간에 각자의 사연이 담겨 있다면 더욱 그러할 터. 최열 선생은 작품과 역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설명하는데, 사설시조를 번역한 듯 조사를 최대한 배제한 채 약간은 고어체를 가미하여 문체가 맛깔스럽다. 요즘 국어에는 쓸데없는 조사가 너무 많다는 것을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글에서 이미 느낀다.

옛 서울의 진경과 오늘날을 비교하면 우리네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난맥상, 즉 아무런 준비도 철학도 없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타자에 의한, 가장 힘없는 자들의 희생을 강요한, 왜곡된 욕망이 켜켜이 투영된 채 마구 뒤섞인 바로 그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체증이 느껴진다. 이 체증은 무조건 과거가 좋고, 지금은 후졌다는 이분법적 신비화가 아니다. 분명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한 곳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혹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당혹감이란, 오늘날의 내가 왜 이 모습으로 성장했고, 왜 특정한 결정을 내렸는지를 스스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하다. 우리는 국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외세와 소수 권력자의 손에 이끌려 아무런 성찰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철골콘크리트 도시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한 평짜리 땅을 소유하기 위하여 우리 인생과 영혼을 너무도 쉽게 저당 잡힌다. 이 욕망의 악순환을 누가 만들었는가? 농토를 빼앗은 탐관오리와 세도가와 친일파들, 토지대장을 멋대로 조작한 공직자들, 국토개발 명분으로 국토를 결딴낸 지도자, 그리고 그들을 단죄하기보다 공모를 선택한 정치권력과 사법부 등 잘못 꿴 단추를 꼽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오류는 구조가 되기 전에만 바로잡을 수 있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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