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국제기구소위원회의 「프레이저 보고서: 악당들의 시대」

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 report of the 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of the Committee on International Relations, U.S. House of Representatives

美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가 1978년 10월 31일에 국제관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다. 소위원회 위원장인 도널드 M. 프레이저(Donald MacKay Fraser)의 이름을 따서 ‘프레이저 보고서’라고 일컫는다. 미국은 법안이나 보고서를 제출한 특정인의 이름을 따서 명칭 붙이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저자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진대, 상당히 모더니즘적인 태도다. 어떤 작품도 한 사람의 기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은 시대의 총체다. 물론 나도 ‘김주일 보고서’라는 것을 발간해 보고 싶기는 하다.

내가 읽은 번역서 기준 677쪽에 달하는 광범위한 보고서의 시발점은 1976년에 터진 코리아게이트(Koreagate)다. 한국 정부가 배후에서 주도한 부적절한 로비에 미국 의원과 공직자 다수가 연루되어 하원 차원의 대대적인 조사가 착수되었다. 이 부적절한 로비가 발생한 계기나 파급효과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조사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의 사슬이 줄줄이 엮어져 나왔다. 선한 가면 뒤에서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좇던 두 우방 국가의 동상이몽 아래, 그와 따로 또 같이 각자의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저열한 개인들의 욕망이 마구 뒤섞인 결과 썩은 내 진동하는 한미합작 잡탕 찌개가 밥상에 올랐다.

박정희의 욕망

박정희는 영원불멸의 권력을 꿈꿨다. 처음부터 그런 야심만만한 꿈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가 내내 주장했고, 그의 수하들이 손바닥 비비며 부추겼던 ‘구국의 충정’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직접 권력의 맛을 보고, 그 맛을 수하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주다 보니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계속 옥좌에 엉덩이를 깔고 버텨야만 하는, 거기서 내려가는 순간 지옥으로 내몰릴 운명으로 흘러갔다. 부패한 독재자의 말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 박정희였다.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연기할 방책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옥좌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합법적이면서도 영구적인 집권을 위하여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이뤄야 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미국의 승인 아래 장면 정부가 기초를 닦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안정적인 성장 속에서 국민통합(=우리편 중심의 통합)에 박차를 가하려면 공산화의 위협을 항구적으로 종식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군이 늘 우리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줘야 했다. 미국이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래서 원조를 줄이거나 거두는 것, 나아가 미군을 철수하는 것. 이는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했던 시나리오였다.

미국은 박정희의 쿠데타가 탐탁지 않았음에도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즉, 박정희가 체제의 정통성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경제, 무역,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절하게 건드렸다.

미국의 욕망

미국은 한국이 필요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그 시대의 유이한 걱정거리라 할 수 있는 안보와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자유진영의 연합과 승리를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선전국가’였다. 연합군의 승리로 일궈낸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동아시아의 척박한 자유민주주의 토양에서 피어난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었다. 나아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불굴의 투지로 길러온 군사력은 지리멸렬한 베트남 전쟁에서 기적 같은 승전보로 보답했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전투병력을 열대우림에 투입했고, 고엽제와 PTSD를 무릅쓰고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생때같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단순히 전술적 차원의 효과를 넘어, 미국으로 하여금 혈맹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수세에 몰린 미국을 지탱해준 마지막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엄청난 빚을 졌고,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즉 엄청난 원조로 보답했다. 그 원조에 미국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온갖 국제기구까지 총동원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박정희의 불안과 욕망을 적절히 활용했다. 체제를 인정해주고, 돈을 주고, 군사력을 증강해주고, 부패를 눈감아 줬다. 그 대가로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군사력, 그리고 그보다 값진 명분을 얻었다. 한편, 베트남 전쟁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어마어마한 직접 원조는 물론이고, 과학기술, 건설, 방위산업, 무역 등 경제사회 전 부문에 걸쳐 베트남 전쟁의 파급효과가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현대사 이전을 백지화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유산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런데 「프레이저 보고서」가 낱낱이 밝힌 대다수 문제의 첫 단추도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잘못 꿰어졌다.

미 행정부가 정말 야비했던 대목은, 그들이 자국의 전략을 위해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비교적 손쉽게 동원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박정희가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군사적 지원에 대해서는 미적미적한 태도로 의회에 책임을 돌렸다는 것이다. “당신네 젊은이들을 전장에 보내시오. 그리고 이후 추가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의회에 요청하시오. 나는 더 이상 권한이 없소이다.” 이러한 행정부의 태도로 인해 박정희는 미 의회의 권한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했고, 전대미문의 영향력 프로그램이 가동하는 빌미가 되었다.

박정희의 두려움

박정희의 영구집권은 오직 미국의 지속적인 원조와 미군의 주둔이라는 토대 아래에서 가능했다. 60년대 후반부터 영구집권 플랜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후 3선 개헌, 유신, 김대중 납치 등 비정상적이고 억압적인 조치들은 그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육영수의 죽음은 그 두려움에 기름을 부었고, 박정희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예증하는 사건이었다.

박정희에게 69년에 발표된 닉슨 독트린은 한 시대의 종언을 선포하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닉슨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자 아시아 국가에 대한 직접 개입 전략의 수정을 천명했다. 이미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박정희에게 미군 없는 한반도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 두려움은 중앙정보부의 대대적인 로비활동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군이 철수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문선명의 욕망

이렇게 양국의 이해가 맞물린 와중에 문선명이 등장했다. 문선명은 기복신앙, 개신교, 반공, 국가주의, 종말론 등 그 시대의 극단적인 사상들이 결합해서 낳을 수 있는 결과물 중에서도 최악의 사례였고, 한편으로는 개신교적 반공주의가 달성하고자 했던 궁극적 목표에 가장 가깝게 간 인물이기도 했다. 그 목표란 반공주의적 신정국가의 수립해서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문선명이 필요했다. 문선명은 자금과 조직이 있었고, 불법에 능수능란했다. 이미지가 좋았으며, 일사불란했다. 문선명도 박정희가 필요했다. 온갖 이권에 개입하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협력이나 방조가 필수적이었다. 둘을 이어준 공식적인 키워드는 “반공”이었고, 반공 교육과 문화사업에서 문선명만큼 뛰어난 혜안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성공한 사이비 교주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데 탁월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밖에도 언급할 수 없는 무수한 잔챙이들이 한미관계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엮여서 저마다 이권을 챙기기 바빴다. 한국의 개발사업에 참여시켜주는 대가로 삥땅, 농산물과 에너지를 수출하는 조건으로 삥땅, 한국의 입장을 미국에 전하겠다는 명분으로 삥땅, 공작행위를 한답시고 자금을 챙겨다가 일부는 자기 주머니로 삥땅 등 지독히 가난했던 나라의 곳간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줄줄 새나갔다. 원래대로라면 그 돈은 이 땅의 아들딸들이 따뜻한 밥 한 공기 먹는 데 썼어야 할 돈이다. 그렇게 불투명하게 융통된 자금은 미 의회의 대대적인 조사에서도 추적이 불가능했고, 지금도 그 후손들에게 상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 신물나는 토대 위에 살고 있다. 현 시점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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