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던컨의 「권력의 미학: 18세기 회화부터 퍼포먼스 아트까지 미술로 본 사회, 정치, 여성」

Carol Duncan (1993), The Aesthetics of Power

그 작품은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이론상으로 미술관은 모든 방문객의 정신적인 함양을 위해 헌정된 공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위 있고,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엔진이다.”

– 253p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캐롤 던컨(Carol Duncan)의 저서는 「미술관이라는 환상」 하나뿐이었는데, 작년 말에 「권력의 미학」이 뒤늦게 출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대전엑스포 개최하던 당시 발표되었던 책이 30여 년 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이렇듯 좋은 책은 시대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젠가는 우리 곁에 온다.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이, 「미술관이라는 환상」의 제목이 YES24에는 「미술이라는 환상」으로 오기재되어 있다. 두 제목은 의미상 천지차이다. 내가 리뷰에 고쳐달라고 써놨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이쯤되면 서점도 문제지만 역자나 출판사도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지… 자기 책이라면 대한민국 1등 인터넷 서점에서 한번쯤 검색해 보지 않나?)

저자는 1936년생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 후 태어난 세대가 격돌했던, 현대사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학위논문을 썼다. 초기에는 18세기 프랑스 문화와 역사를 연구했지만, 그녀가 써 내려간 행간에는 베트남전쟁, 히피, 68운동, LSD, 마틴 루터킹 등 현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이미 그때부터 내려앉아 있었다. 동시대 미술에 관하여 쓰고 가르치면서 캔버스 밖 현실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더욱 치밀하고 단단해졌다.

저자는 50년대에 교수가 된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 교수들과 비평가들은 세계 미술의 수도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천도하던 시기에 가장 총명하고 왕성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총명했던 때에 과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때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바넷 뉴먼(Barnett Newman) 등으로 대표되는 뉴욕화파가 부상했고, 그들의 천재성과 정력이 모더니즘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세잔(Paul Cézanne)과 피카소(Pablo Ruiz Picasso)를 적통으로 계승한 그들은 각종 예술 기금은 물론이거니와 CIA를 비롯한 그림자 조직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현대미술의 살아있는(일부는 강렬한 영광을 뒤로하고 곧 죽었지만)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는 자유와 낭만, 그리고 자본주의적 개인주의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대해 거둔 승리이기도 했다. 그들이 MoMA에서 차지한 전략적 요충지는 몇 번의 리뉴얼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던컨은 MoMA가 뉴욕화파를 현대미술의 신화로 옹립하면서 여성과 그밖에 사회적 관심사들을 주변화시키는 과정을 보며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음을 웅변했다.

(6.25전쟁 후 냉전기에 CIA가 우리나라에서도 전략적으로 추상표현주의를 적극 권장하고 육성했다는 사실이 샬롯 홀릭의 책 183p에 나온다.)

책은 크게 세 장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세 개의 글은 저자가 미술사에 뛰어들 당시 첫 번째 관심사였던 18세기 프랑스 미술을 다루었다. 이어지는 세 개의 글은 근대 미술에서 나타난 젠더 문제, 그리고 이후의 글은 동시대 미술제도에 대한 비평이다.

마지막 세 개의 글은 캐롤 던컨이 셰릴 번스타인(Sheryl Bernstein)이라는 가상의 비평가가 되어 기고했던 두 개의 글과 그에 대한 서문이다. 가짜 비평가 셰릴 번스타인은 가짜 예술가 행크 헤론(Hank Herron)의 가짜 전시에 대하여 리뷰했다. 행크 헤론의 작품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복제로 구성되었다(고 설정되었다). 가짜 작품을 다룬 가짜 전시에 대한 가짜 비평가의 글은 가짜가 진짜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설명하는 효과적인 논리를 제시했고, 미술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던컨은 가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비평가 자신이 직접 가짜가 될 수도 있다는 혁신적인 가능성을 실험했고, 그 실험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비평의 주제가 곧 형식이 된 그 실험은 한동안 다수의 인용과 재해석을 낳았다. 현재의 우리나라라면 이런 시도가 가능할까? 인터넷 검색 하나면 저자의 모든 이력을 소상히 검색할 수 있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 자체도 한정된 상황에서 대놓고 필명을 쓰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럴싸한 가상의 인물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변수를 뚫고 가상의 비평가를 만들 수 있을지언정, 텍스트 자체보다 저자의 이름, 학력, 배경을 먼저 보는 우리네 정서가 그 텍스트에 대한 열린 독해를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장소가 바뀌었고, 시대가 변했지만, 던컨의 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의례와 관습을 따르지 말고, 그것이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지를 보자. 물론 그러려면 그 의례와 관습을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숙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각 장의 요지를 정리하였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사족도 달았다.

1.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핵가족화를 찬사 하면서, 정서적 기능이 상실된 채 이해관계로만 얽힌 당대 상류층 가정을 비판했다. 그들은 잃어가는 양육의 기능을 소생시키고자 여성에게 어머니이나 아내로서 순종하는 역할을 강화했다.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인 작품은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를 돌보며 행복한 여성의 모습을 이상화했고, 비평가들은 그 작품에 찬사를 보내며 계몽주의의 열매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를 분명히 했다. 여성은 계몽의 희생양이었다.

Jean-Baptiste Greuze(France, b.1725, d.1805)의 The Beloved Mother(1765)를 Jean Massard(France, b.1740, d.1822)가 1775에 판화로 제작 (https://www.artgallery.nsw.gov.au/collection/works/8.2003/)

2.

18세기 후반에 괴롭고 힘없는 노인의 도상이 유행했으며, 이는 왕정 시대의 가부장제가 종식되고 대체되는 과정을 투영하였다. 혁명은 부르주아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새로운 시대는 더이상 힘없는 노인을 소환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들은 그림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Jean-Baptiste Greuze, The Father’s Curse: The Ungrateful Son (1777)

3.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루이 13세의 서약」은 혁명의 흔적을 지우고 부르봉가 중심의 왕권 통치로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리려는 반동주의의 전형적인 몸부림이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수록 반동의 책략은 더더욱 큰 무리수를 저지르게 되어있는데, 이 작품은 반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큰 무리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Jean-Auguste-Dominique Ingres, The Vow of Louis XIII (1824)

4.

20세기 초 전위미술은 여성을 타자화, 비인격화하고 자연에 등치하는 작품을 통해 그에 대비되는 주체적 남성 신화를 공고히 했다. 남성은 문화에, 여성은 자연에 등치시키는 구조가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남근 중심주의를 일깨운 때에 화가들도 거기 천착했던 것은 당시가 참정권 운동이라는 첫 번째 여권운동기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부르주아들이 부르짖었던 자유는 누군가의 부자유를 필요로 한다(139p). 아방가르드의 성충동은 반사회적으로 여겨지는 하류층에게서 전이된 것이며, 그것은 다시 그림을 구매하는 상류 부르주아 계층에게 전이된다. 오늘날 우리가 구입하는 상품은 대체로 누군가의 욕망이 투영된 기호인데, 미술은 사실 오래전부터 거의 그런 기능으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5.

예술은 다 좋고, 현실과 다른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환상 아래서 에로틱한 현대미술의 걸작들은 이데올로기적 보호를 누린다(155p). 미술제도가 드리우는 이 같은 성역은 소수에게 충성하는 특정한 관념들을 아무런 비판 없이 파급하고 재생산할 수 있다.

6.

「아트토크」 라는 책의 비평이다. 책의 저자는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자신이 이해하고 주장하는 방식대로 단순화하고 격하한다. 저자는 기존 주류 남성 미술사의 프레임에 여성 작가들을 억지로 욱여넣는다. 그 과정에서 여성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비평가라면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야지, 모순된 구조 안에 어떻게 해서든 실존하는 예술가를 욱여넣기 위해 용써서는 안 된다(173p). 작가들이 얼마나 격한 경쟁에 내몰려 있는지를 잘 안다면 말이다!

작가들은 자신들이 주목받기 위해 경쟁해야만 하고, 자신들의 작업이 다른 작가들 작업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들은 동료 전문가들로부터 동료애를 구할 때조차도 작업을 통해 그들과 경쟁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떤 작품이 팔리는지, 팔리지 않는지 알고 있다. 비록 그것이 그들이 왜 작가가 되었는지와 상관없더라도 말이다. 작가로서 자본주의에 살고, 자본주의에도 불구하고 산다.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작업을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 171p

7.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사 강의는 비극적 천재를 찬양하거나, 작품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도출하는 형태다(182p). 미술교육은 천재의 신화, 자율적 미학을 지지하며, 그것을 소유한 기득권을 영속화한다. 이러한 상황은 1950년대 인문학의 진흥기에 낭만주의적 혁명을 지지했던 연구자들이 이제는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버린 상황과 관련 있다. 오늘날 미술교육은 전시질서를 비롯한 미술 제도와 단단히 결속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미학의 민주화는 도래하기 어려워 보인다.

8.

혁명 전후 프랑스 미술을 다룬 전시에 대한 리뷰다. 그 전시는 여러모로 탈역사화를 시도했고, 정치적 혁명의 가능성을 무시했다.

11.

“미술계는 의도적으로 구성된 음모 집단이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활동하는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230p).” 하지만 현실은 늘 각자의 이상과 따로 논다. 현대 예술가는 자유주의적 천재로 보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견고한 권력 구조에 귀속되어 있다. 이러한 귀속은 비평의 은밀하고도 긴요한 중재에 힘입어 노골화되지 않는다. 현대미술은 예술의 제품화에 투쟁하면서 투쟁 자체로 제품화되었다(245p). 대다수 비평가는 고급미술에 대항하는 대신 그것의 통제권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택했다(247p). 만약 비평의 대안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고급미술이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의 문제들을 반영한 작품생산과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249p).

12.

“이론상으로 미술관은 모든 방문객의 정신적인 함양을 위해 헌정된 공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위 있고,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엔진이다(253p).” MoMA의 위대한 모더니즘 작품들 상당수가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을 그린다. 그것들은 포르노의 코드를 공공연히 사용하면서도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문화의 총아가 되어 공적 공간을 차지한 채 추앙받는다. 이 작품들을 남성 예술가의 고뇌, 승리, 혁신으로 추앙하는 비평들은 남성의 우위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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