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병학의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 한국현대미술 자성록」

바로잡아야 할 것은 연대가 아니라 자세다.

우선 이 글의 제목에는 오류가 있다. 공식적으로 이 책은 류병학과 정민영, 두 저자의 공저고, 엮은이로 박준헌이 끼어 있다. 정민영은 「미술세계」 편집장으로서 류병학의 섭외와 의제 설정에 관여하였고, 이 책에서는 서문과 마지막 장(고양이와 방울과 쥐)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서문은 류병학을 소개하는 내용이고, 마지막 장도 류병학의 논의에 대한 보충이므로 분량상 차지하는 지분은 미미하다(내용이 충실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엮은이 박준헌은 「미술세계」 편집차장으로, 말 그대로 책을 엮기만 한 모양이다. 이 책은 사실상 류병학의 원맨쇼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에는 류병학만을 기재한다.

류병학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출발점으로 일컬어지는 세 거목을 차례대로 소환하여 신랄하게 후려 팬다. 비판의 요지는, 그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시조라는 성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추상회화의 제작 시점을 교묘하게 앞당겼다는 것이다. 박서보가 「묘법」을 처음으로 발표한 시점은 1973년이지만, 그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1967년으로 앞당겨졌다. 이우환은 선배 곽인식의 영향력을 완전히 평가절하하며 독보적인 「모노파」의 시조로 자리매김했고, 생계를 위해 그렸던 ‘평범한 작품(≒구상)’들을 포트폴리오에서 깨끗이 지웠다. 서세옥은 1960년인 ‘묵림회’ 창립 시점을, 박서보의 앵포르멜 회화 제작 시점에 맞추어 1957년으로 끌어당겼다. 이렇게 스멀스멀 역류하는 타임라인은 작가 스스로가 공식적으로 천명하며 정설로 자리를 잡았거나, 친밀한 비평가나 제자에게 간접적 지침을 준 것이거나, 누군가의 착각으로 언급된 내용을 적극적으로 교정하지 않은 미필적 고의였다. 어쨌든 부정확한 시점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면 작가로 귀결되었다. 인터넷이 없고, 미술 자료 아카이브가 미천하고, 미술 관련 저술문화도 저열했던 그 시절에 권위 있는 작가의 말 한마디는 그 자체로 가장 설득력 있는 사료였다. 팔딱거리던 아방가르드가 현대미술사의 살아있는 거장이 되는 동안, 그리고 그 거장의 제자가 미술사학과에서 강의하는 비평가가 되는 동안 소소한 오류들은 켜켜이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몇 가지 모순이 충돌하고, 그 충돌에 서울대-홍익대로 양분되는 계파가 개입되자 입을 다무는 편이 차라리 낫게 되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한국현대미술사 연표를 제도권 기관에서 가르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 거짓의 순환고리는 그것을 처음 주장한 누군가의 진실한 고해성사가 뒷받침되어야만 차근차근 끊어낼 수 있다. 류병학은 총대를 메고 케케묵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메아리를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류병학의 논의를 따라가며 배워야 할 점은 단순히 부당하게 끌어 올려진 타임라인 자체가 아니다. 스스로 암시하듯, 타임라인 문제는 그가 헛다리를 짚은 것일 수도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추적하는 비평가의 자세와 책무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실명 비판이다. 익명성에 숨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악이든 선이든, 그것을 야기한 누군가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구체적 개인이다. 그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는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지 못한다. 학연, 지연으로 켜켜이 얽힌 우리 지성계는 누군가를 콕 집어 논의의 단상에 올리는 것을 꺼리는 문화가 여전히 팽배하다. 2000년대 들어 정보통신 혁명과 탈권위주의의 도래가 맞물려 실명 비판이 주류로 등장했지만, 농경사회 씨족문화의 전통은 여전히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 ‘피차 구린 것은 건들지 말자’는 사고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부조리보다는 그것을 지적하는 손가락이 먼저 꺾인다. 그럴수록 비판할 대상을 정확히 지목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실명 비판에는 많은 두려움이 따른다. 그 화살이 도리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위태로움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져야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비판의 논리성을 더욱 가다듬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나 자신이 비판의 잣대에 역으로 눌리지 않으려면 더욱 떳떳하게 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실명 비판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정확히 지목하되, 그 지목의 잣대대로 정확히 실천하면 된다. 모두가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 더 좋아진다.

“‘마당발’의 사전에 비판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비판을 해야 할 경우 그들이 하는 비판은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비판이다. 물론 그런 비판도 소중하긴 하다. 그러나 이미 과잉이다. 추상적 비판의 과잉은 집단적 자학으로 빠지기 쉽고 ‘다원적 무지’를 낳기 마련이다. ‘나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는 착각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킨다는 말이다.”

강준만 (p.164)

둘째, 증거에 기반한 비평이다. 애초에 예술은 단일한 진리나 물리적 실체가 없는데 증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증거에 기반한 비평은 분명 가능하다. 세상에 드러난 작품은 그 자체로 증거다. 반면 작가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의도나 메시지는 심증일 뿐이다. 심증은 구체적 작품이나 삶 속의 가시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어떤 작가가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내어놓고서는 ‘나는 20년 전부터 이러한 경향을 마음속으로 구상해왔으므로, 이 경향은 20년 전에 시작된 것이오’라고 이야기한들 우리가 그 경향의 타임라인을 20년 전으로 기꺼이 끌어올려 줄 수 있을까? 그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최소한 20년 전에 쓴 작가 노트나 습작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물론 어떤 노트가 정말로 20년 전에 쓰여진 것이 맞는가를 검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류병학은 작가의 말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문건으로 공식화한 이일이나 서성록과는 달리, 그간 세상에 드러난 모든 언론 보도, 팜플렛, 도록, 서적 등을 샅샅이 뒤져 작품 제작 시기를 규명해 나간다. 사실 작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반 관객들이 해도 된다. 그들은 과거에도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만약 비평가가 시대의 미술 담론을 주도하는 책임 있는 권력 기구 중 하나라면, 그리고 비평가가 미술제도상 유력한 심사위원으로 단골 섭외되는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대중과는 다른 노력 한 가지쯤을 더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노력이란 단순히 미술이론이나 미술사 영역에서 번듯한 학위 하나를 더 갖는 차원을 넘어, 미술계의 첨예한 갈등이나 사실관계의 오류에 맞서 명백한 증거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생각과 전혀 상반된 문헌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제대로 인용하지도 않고 풍문 취급하거나, 인용문의 원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계속 재인용만을 반복하다가 상호텍스트성의 수렁에 빠지는 일은 지성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원전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증거에 기반한 비평의 출발점이다.

셋째, 새로운 형식의 비평이다. 류병학은 이 책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비평을 시도한다. 모든 글에서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창조하여 필명으로 내세운다. 단순히 구어체를 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졸라’, ‘노땅’, ‘씨바’, ‘똥침’ 등과 같은 세기말적 비속어까지 난무한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듯한 긴 호흡으로 서너쪽 분량의 한 문단을 내달리고, 샛길로 빠져 한참이나 뱅글뱅글 돌다가 되돌아오기도 한다. ‘나’라는 주체가 거세된 채 객관적인 척 안간힘 쓰며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논문식 비평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비평을 보여준다.

형식은 사고를 지배한다. 획일적이고 견고한 짜임의 글쓰기는 사고의 자유로운 이탈 속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창조적 영감을 억누른다. 틀에서 벗어난 형식적 실험이 새로운 영감을 자극하여 풍성한 내용으로 화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보여주는 격식이 중요하니, 형식적 실험을 통해 획득한 영감만을 취하되, 형식은 다시 주류의 그것으로 회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은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 특정한 사고의 흐름이 야기한 결과물이 존재할 때, 독자는 그 흐름을 알 권리가 있다. 흐름을 알 때, 저자와 독자의 동행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동행이 결과물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넷째, 독자의 참여를 이끄는 비평이다. 어떤 연구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아무런 논쟁도 야기하지 않는 비평은 아무런 효용 가치도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인전에서 접하게 되는 비평을 ‘주례사 비평’이라고 평가절하할 때, ‘주례’의 은유는 일차적으로 칭찬일색이라는 속성을 지칭하나, 다른 한편으로 아무런 반론도 야기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당신은 주례사 선생님에게 ‘아니오,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지는 ‘아니오, 맹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드는 신랑신부를 본적이 있는가? 발화자에 따라 다소간의 편차는 있을 수 있으나, 애초에 주례사란 인류의 보편적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주례사 비평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새로운 담론적 가능성으로 단 한 발짝도 이끌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비평만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날카롭기 위해서는 논리를 예리하게 가다듬어야 하고, 실증적 증거 위에 서 있어야 하며, 스스로 행실이 그 논의의 준거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인가? 그러니 다들 논쟁의 주인공이 될까 염려한다. 자신의 섣부른 논의가 활자로 영구히 박혀 문명의 전당인 도서관에 안치될 때, 당당하게 홀로 서서 모든 화살을 감내할 수 있을지 두려워한다(물론 개떡 같은 결과물로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강심장들이 존재하나, 여기서 거론할 대상은 아니다). 그 두려움을 피해 익명성에 숨거나, 비평의 대상을 뭉뚱그리거나, 허황된 유토피아 제시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러한 글을 읽으면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시간만 아깝고, 가슴에 아무런 울림도 없다.

“역사 속으로 이월된 자료는 곧 생긴 그대로 사료가 된다는 사실과 자료를 쓰고 만드는 사람일수록 사서를 집필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정민영 (p.110)

“비판문이란 것은 어떻게 쓰던 그 자체가 하나의 폭력인 것이고 또 그래야만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우환 (p.264)

류병학은 이 글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고, 그보다 앞서 진실을 찾는 여정에 많은 독자가 개입해서 시끄러워지기를 바랐다. 공감이든 반론이든 논의가 넘쳐나서 한국현대미술사를 당당하게 정립하고 제도권 기관에서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글이 잡지에 연재되는 동안 놀랍게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명으로 비판한 작가나 평론가들은 물론, 미술계에 몸담고 있던 그 많던 논객들이 일언반구도 공식적으로 내뱉지 않았다는 것이다(이우환만이 저자에게 반론의 편지를 보냈고, 전문이 책에 실렸다. 그 내용은 실로 설득력이 있었다). 이러한 침묵의 배경에는 불손한 형식을 띤 위험한 내용의 글을 전략적으로 침묵함으로써, 그것을 마치 한때의 지나가는 해프닝처럼 평가절하하고, 괜스레 개입되어 운신의 폭만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카르텔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카르텔 아래서 진실의 규명과 발전적 대안의 모색은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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