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을 위한 목 좋은 귀퉁이 하나 정도는
이미지를 남기는 기술이 발달하고 대중화될수록 개별 이미지의 가치는 계속 하락해 왔다. 종교개혁 이전에 템페라나 유화로 어떤 인물을 그렸다면, 그 대상은 대체로 고전 속 영웅이거나 신적 존재였다. 하나의 작품을 그리는데 엄청난 노동력과 재능, 그리고 재료비가 투입되던 시기였다. 그 비용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만든다면, ‘적절한’ 대상을 다뤄야 했다. 신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는 왕족과 귀족과 부르주아들, 그리고 그들의 애첩들이 주로 화면을 채웠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의 동료, 가족, 지인, 애인을 주로 그렸는데, 그들도 대체로 부르주아들이었다. 사진이 처음 등장하고 나서도 이름 모를 보통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찍은 사진가가 나오려면 반세기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와 비교적 가까운, 필름카메라 시대만 생각해보더라도 사진사는 자신이 찍고자 하는 대상 앞에서 그가 필름의 값어치에 상응하는 대상인지를 실시간으로 계산해가며 셔터를 눌렀다. 일회용 카메라의 카운터에 표시된 숫자가 점점 1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얼마나 더 치열한 선별의 노력을 했던가?
지금 우리가 무분별하게 찍어대고 있는 사진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의 촬영 행위가 촬영기기(대체로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의 감가상각과 전력 및 저장공간 소모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을 아주 미미하게 인식할지언정, 그 인식이 촬영 의사결정의 지배적 변수가 되지는 못한다. 쉽게 말해, 마구잡이로 셔터를 눌러댄다. 지금 태어난 아기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담은 모든 이미지를 모아본다면, 평균 3시간 간격의 타임라인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추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이미지 홍수의 시대에 접어들수록 선별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제 권력의 관심은 생산에서 선별로 옮겨간다. 그 유명한 티치아노는 왕의 주문도 가려서 받았고, 루벤스는 예술적 재능을 외교의 도구로까지 사용했지만, 앞으로는 100개의 그림과 100명의 작가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거기에 개념을 부여하는 사람이 새로운 루벤스가 될 것이다. 그 시대가 와도 그려진 대상이 그린 주체를 압도하는 초상화의 본질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남을만한 발자취를 남긴 영국의 인물 76명을 다루는데, 이 전시에서도 그러한 초상화의 본질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려진 대상(SITTER)이 전시 디스플레이 전반에 걸쳐 생산자보다 더 크게, 더 위에 명기된다. 그리고 그려진 대상이 살았던 시기가 작품이 그려진 시기보다 앞선다. 5개로 분류된 주제도 그려진 대상을 기준으로 한다. 누구를, 언제, 왜 그렸는지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76명이 정치, 국방, 과학,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영국을 넘어 세계사적으로 어떠한 족적을 남겼는지 따라가다 보면, 혈흔이 낭자한 제국주의의 역사는 아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희석된다. 국립박물관답게 대단히 교육적인 이 전시는 eBook과 인쇄본 형태로 동시 제공하는 작품별 설명자료를 두툼하게 갖춘 데다가 전체 작품 목록을 담은 브로셔도 꼼꼼하게 비치해 두었는데, 그 친절함은 ‘다른 생각’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야, 그들이 이 기념비에 봉인됨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어, 모두에게 공과 과가 있겠지만 너희에게는 그것을 성찰할 시간이 없으니 작품은 작품으로만 받아들여, 라고 말한다.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국립초상화박물관이 없다. 하기야 근대미술관도 없고, 심지어 어진(御眞)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우리에게 그 정도로 전문화된 국공립 예술 인프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언젠가 그것이 우리 곁으로 온다면, 선량한 보통사람들을 위하여 가장 목 좋은 귀퉁이 하나 정도는 남겨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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