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루카스 그레이엄의 7 Years(2020)」,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루카스 그레이엄과의 대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본다. 서울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지역 뉴스를 눈여겨보게 된다. 사실 서울에는 지역 뉴스라는 것 자체가 없다. 서울의 뉴스는 그냥 대한민국의 뉴스다. 서울의 기쁨은 대한민국의 기쁨이고, 서울의 재난은 대한민국의 재난이다. 이렇게 모두의 삶에서 비슷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사건은 정작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를 멀어지게 만든다. 동작구에서 벌어진 일을 화양동에서 보나, 전남 여수에서 보나, 그 무게감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인구 밀도가 낮고, 삶의 속도도 느린 여기서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 자신과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작은 동네에서는 유명 프랜차이즈 하나만 개업해도 제법 큰 소식이 된다.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행사에도 관심이 간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라는 행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굳이 가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가깝다는 핑계로 부담 없이 가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레네 사샤 요한센(René Sascha Johannsen) 감독의 「루카스 그레이엄의 7 Years(7 Years of Lukas Graham, 2020)」를 만났다.

루카스 그레이엄의 음악을 찾아 들어봐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때는 2017년 그래미 어워드를 보고 나서였다. 특정 연도의 그래미 어워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면, 한 해를 빛낸 대세 아티스트 다섯 팀 정도는 손쉽게 꼽을 수 있게 되는데, 루카스야말로 그 대세 중 하나였다. 그해에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7 Years는 사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보다 더 묵직한 노래를 좋아한다. 그다음 트랙, Take the World by Storm은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속도감이 일품이다. 그래서 이후로도 그 밴드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루카스는 그 해 그래미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하나도 받지 못했다. ‘그 위대한’ Adele, 그리고 Hello에 밀렸다. 어쩌겠는가? 상대가 아델인데. 영화에서는 루카스 그레이엄과 그의 밴드가 애석하게도 그래미에서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 날을 생생하게 담았다. 최대한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아쉬움은 막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는 루카스 그레이엄이 덴마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후 미국에 와서 막 워너 뮤직과 앨범 계약을 체결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촬영되었다. 그로부터 7년간, 카메라는 무대 뒤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한 밴드가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기록한다. LA의 한 저택에 차려놓은 스튜디오에서 데뷔 앨범에 들어갈 타이틀곡을 짜내느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풋내기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웸블리 스타디움에 서기까지 치열하게 성장한 과정을 담백하게 압축했다. 락앤롤 스타를 다룬 영상물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진부한 소재들, 예를 들어 대성공, 음모, 갈등, 배신, 추락, 그리고 극적인 화해와 재도약 따위는 영리하게 빗겨간다. 감독이 아닌, 밴드가 걸어온 여정이 그것을 빗겨 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루카스는 팝스타로서 누릴 수 있는 단맛에 취해서 스스로를 파멸시킨다거나, 주변의 유혹에 흔들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단단하게 자신의 가치관이 여물고 나서 성공을 맛봤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음악에 담아야 하는지 확고한 철학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중압감과 유혹으로부터 견고히 설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와의 연대가 있었다. 아버지는 루카스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며 전폭적으로 응원했다. 덴마크 시절에는 매니저로 공연을 따라다니며 일손을 보탰다. 루카스에게 아버지는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본명은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루카스가 뮤지션으로서는 그레이엄이라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아들의 대성공을 목전에 둔 시점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루카스에게 더없는 슬픔이었고, 그 슬픔은 극심한 피로와 위기의 순간마다 루카스를 다시금 덮쳤다. 하지만 그 슬픔은 또한, 모든 위대한 예술가에게도 그렇듯, 위대한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Stick Around라는 곡이다. 여기에는 이제 아버지가 된 루카스가 딸에게 보내는 절절한 약속이 담겼다. 사랑스러운 딸을 안고, 그 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에도 루카스는 언젠가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너는 지금 이렇게 나와 밝게 웃었던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생각하며 눈물짓겠지, 그렇게 언젠가는 눈물이 될 순간을 지금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 미안하구나”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 자신이 아버지를 잃었을 때 겪었던 슬픔을 자기 자식에게 대입할 수밖에 없는 루카스의 마음을 생각하면 애잔하다.

그의 가사에는 유독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이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모티브로 하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수많은 팬이 그의 음악을 듣고 자신도 비슷한 상처가 있었다고, 그의 음악을 통해 위로를 얻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을 건냈다. 루카스는 그 찬사를 모두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특권이라면, 루카스는 온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특권에 다가간 사람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트레일러에 홀로 남는 순간에는 극심한 공허함과 피로를 느낀다. 팬들의 환호와 감사의 목소리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다. “내가 저들을 어디까지 대변해야 하는 걸까? 저들의 아픔에 어디까지 공감하고, 어디까지 위로해야 하는 걸까?” 인간은 타고난 공감능력이 있어서, 남의 아픔을 그저 계속 듣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게 된다. 전세계를 돌며 그런 경험을 하는, 앞으로도 해내야만 하는 삶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상영이 끝나고 무대가 분주하길래 ‘아, 나름 영화제라고 무슨 행사가 있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스크린에 화상연결이 켜져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감독이 나와서 관객과 대화라도 진행하려나?’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두 개의 화상연결 화면에 감독은 물론 루카스 그레이엄 본인이 등판하는 것이 아닌가? 행사 스케쥴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영화만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횡재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열리고 관객의 질문을 실시간으로 접수하면서 상영 후 행사가 이어졌다. 나는 감독과 루카스에게 각각 하나씩 두 개의 질문을 올렸는데, 내 질문 두 개가 모두 사회자에 의해 채택되었고, 창작자들에게 전해졌다! 감독에게 보내는 내 질문은 “루카스가 전화통화 장면 찍지 말라고 그랬는데 왜 찍으셨나요?”였다. 영상 중간에 루카스가 투어로 힘들어하던 시기, 약혼자와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루카스는 통화하는 장면은 신경 쓰이니 앞으로 찍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후반부에 보면 루카스가 통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거기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었다. 감독은 편집기준과 관련하여, 그때그때 루카스의 고뇌와 창작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담았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정말 감독이 아티스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리얼하게 현장을 담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웸블리에서 공연할 때, 스폰서 계약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버의 곡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루카스는 관련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필요하면 커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죠. 훌륭한 아티스트 많잖아요. 그런데 비버? 하필이면 비버라니 XXX…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해주세요.” 이런 식이었다. 두 아티스트가 가는 길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하려면 비버나 비버의 관계자들과 계속 마주치게 될텐데, 그럼에도 이런 장면을 여과없이 실었다는 것이 이 영상의 진실성을 보여준다. (문제의 공연)

루카스에게는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팬들과 소통하고 있나요? 쉬는 동안 음악은 많이 만들었나요?”라고 질문했다. 그는 그동안 쉼 없이 창작과 공연을 위해 달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에너지가 소진되었는데, 마침 팬데믹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도 돌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공연은 빨리 재개하고 싶고, 팬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전했다. 음악도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관한 인상을 물어본 어떤 관객의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의 열정적인 팬들이 기억에 많이 남고, 특히 맛있고 건강한 한국 음식이 생각난다고 했다. 지금 자기 냉장고에는 직접 담근 김치도 있다나… 하여튼 고도로 학습된 수준급의 국뽕을 선사하며 도래할 만남을 기약했다.

뜨끈한 밥 한 숟갈에 루카스가 만든 김치 한 조각 얹어 먹고 싶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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