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갔다 오세요.
‘기계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앞장서서 개척하고 있는 이영준의 본격적인 기계비평서로서, 「기계비평」에 이은 두 번째 시도다. 이번에는 기계 전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육중한 컨테이너선에만 집중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평론을 전개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5년에 걸쳐 끈질기게 컨테이너선 승선을 요청했고, 어렵사리 승낙을 얻어 상하이에서부터 사우샘프턴까지 10,000마일의 여정을 완주했다.
그가 탑승한 ‘CMA CGM 페가서스’호는 1만 1,388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9만 8,246마력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어지간한 파도는 그냥 뚫고 지나가 버린다. 그가 전작 「기계비평」에서 탑승했던 ‘그랜드 머큐리’호는 1만 8,900마력이었으므로 규모가 5배 이상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정은 더 길어졌으되, 더 무난해졌다. 전작에서 겪은 것과 같은 생존의 위기는 없었다. 해적이 곧잘 출몰하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도 경보만 실컷 듣고 별일 없었다. 집채만 한 파도에도 약간의 요동이 있었을 뿐이다.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거나 선원 간의 내분도 없었다. 그에게 찾아온 위기는 수에즈 운하에 다다르기 전, 한점의 땅뙈기나 배 한 척조차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도양의 망망대해를 일주일 넘게 마냥 떠다니는 와중에 겪게 된 극도의 무기력감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서 유동하는 실존적 고뇌는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앉아 책장을 넘기는 독자에게 반의반의반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원래 정적인 고뇌란 제3자에게 오롯이 전달되지 않는 법이다. 솔직히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기왕 치킨 한 마리 값을 치르고 읽는 책인데, 더 스펙터클한 위기가 휘몰아치기를 기대했다. 저자는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먼 우주에서 보면 지구가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에게 대양은 무한대의 공간이다.”
144p
저자는 5년의 시간 동안 승선을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꽤 좋은 조건을 얻은 듯하다. 안락한 자기 방도 있고, 언제든 갑판에 오를 수 있고, 선장과 언제든 맞담배도 피울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비유적인 표현이다. 흡연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간부식당과 일반식당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는다. 기계비평가의 몸이 편해질수록 읽는 재미는 줄어든다. 물론 일체의 속박 없이 배의 여러 기계와 시스템을 자유롭게 체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겠지만, 차라리 항해에 있어 아주 작은 임무라도 지닌 채 승선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다못해 우편물 수발이나 행정보조 같은 것이라도. 그랬다면 비록 경험의 폭은 줄어들지언정 하루하루의 임무 수행과 결부된, 보다 날 선 비평작업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 번만 더 갔다 오시죠?
비평작업에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의 항해라는 맥락에 돛을 내리고 전작과 유사한 주제의식이 반복된다. 보통사람들은 기계문명의 최정점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아주 특수한 공간에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그 안에 실존적 인물과 삶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거나 의식적으로 외면한다. 하지만 기계는 현대사회의 기저이자 조건이다. 그러므로 기계를 안다는 것, 그리고 숙고한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영준의 기계비평론이다. 하지만 이영준은 이 같은 기계비평론의 정언명령을 따라 사명감으로 그 작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그저 기계가 좋아서 그것을 보고, 찍고, 읽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기계비평가가 된 것뿐이다. 모름지기 업이란 그래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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