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께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정기 구독하고 있는데, 요즘엔 통 읽지를 않으신다. 어느 날 구독자 사은품으로 이 책이 배송되었다. 재미는 없어 보였지만, 나라도 이걸 읽어서 정기 구독료를 조금이나마 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책을 폈다.
이 책에는 두 줄의 부제가 달려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실존주의, 인류세까지 / 프로이트에서 푸코, 카스텔까지” 여기서 첫 줄은 사상을, 둘째 줄은 사람을 가리킨다. 사상과 그것을 논한 사람 모두를 놓치지 않으면서, 100여 년의 시간에 걸쳐 굵직한 사상적 흐름을 훑어보겠다는 야심을 담고 있다. 이런 야심은 대체로 무위로 돌아간다. 270페이지의 소책자에 가까운 이 책도 마찬가지의 숙명을 떠안았다.
그래도 구성은 나쁘지 않다. 10년 단위로 시대를 쪼개고, 각 시대의 앞단에는 정치, 국제, 경제, 문화 등 특정한 사상의 싹을 틔우게 복합적인 배경을 함축했다. 본론에서는 중요한 사상적 키워드를 중심으로 핵심적인 저자와 주장, 반론, 영향 등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중요한 이름은 빠지지 않은 듯하다. 더 깊은 독서로 나아가는 가이드 역할 정도로는 나쁘지 않다. 참고문헌 정리가 체계적이지 않다는 아쉬움을 차치하면. 학습의 키워드를 던져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원서와 역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분량의 상당 부분이 저자가 어느 정도 정통한 ‘프랑스-좌파’ 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명만 봐도 그러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부르디외, 사르트르, 푸코 등 프랑스 사상가에 편중된 지면을 보면 「비판 인문학 100년사」라는 거창한 제목의 무게감을 견디기 버거워 보인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2000년대 이후, 즉 동시대를 다룬 챕터가 너무 부실하다. 여기에는 현상과 문제점만 나열되어 있고, 그에 대한 사상적 대응은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거의 저자의 생각으로만 채워졌다. 논의의 시의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세와 코로나19라는 동시대적 쟁점으로까지 무리하게 범위를 확장한 결과다. 논의할 수 없는 것은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저자와 함께 숨 가쁘게 100년을 돌아보니 사상사는 상반된 양극 사이를 오가며 합의점을 찾고 건설적 대안에 이르는 과정이었음이 드러난다. 개인이냐 구조냐, 개방이냐 단속이냐, 좌냐 우냐, 그 양극이 무엇이 됐건 간에 논쟁의 한복판에 있던 지성인들은 강단에서, 혹은 지면에서 매순간 자신의 경력과 명예를 걸고 살얼음판 같은 전쟁을 치뤘겠지만, 그 첨예한 전장으로부터 한걸음 빗겨선 우리 필부필부들은 그 논쟁이 접점을 찾고 실천적 대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았다. 이처럼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정리는 진부하나, 그것에 토를 달자니 그 자체로 정반합을 인정하는 꼴이라 그저 침묵한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류의 종말을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인문학적 성찰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오늘 당장 분리수거라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역 없는 공론의 장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서 뛸 멋진 선수들을 길러내는 일에 교육계를 비롯해 국가와 사회 전체가 힘을 써야 한다. 앞으로 우리를 구원할 새로운 거인들은 아마도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논쟁도 두려워하지 않을, 무엇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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