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val Noah Harari, Sapiens & Homo Deus
하라리는 왜 이 책을 썼나?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사피엔스, 153p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손에 이르러 완전히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호모 데우스, 207p
베스트셀러는 한 시대의 욕망을 투영한다. 많은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들려준 책이 베스트셀러 서가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가령 「언어의 온도」는 따뜻한 말을 (잘)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팔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저성장이 완연한 뉴노멀 시대에 나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는 위로에 대한 갈망을 팔았다. 의외로 「ETS 토익 정기시험 기출문제집 1000 Vol.3」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카페의 마케팅 기법, 출장 가는 상사의 하소연, 지역사회 유력 봉사단체장의 성공신화 등 단순히 건수로 따지면 그 어떤 베스트셀러도 압도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토익 900점에 기반한 취업 성공이라는 매우 직관적인 욕망의 재료가 된다.
화려한 마케팅과 껍데기로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한 발을 걸칠 수는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결코 오래 못 가고, 스테디셀러 칭호까지는 아예 꿈도 못 꾼다. 만약 누더기 같은 내용의 책을 마케팅의 힘만으로 베스트셀러 3위 안에 올려 4주를 버텼다면, 사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려야 할 것은 책이 아니라 기획자다. 그런 사람은 알레스카에서 에어컨을 팔 수 있다(기후위기 때문에 이 비유를 쓸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가 꽤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로 군림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늘 그렇듯 나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와 스테디셀러로 전환 된 후에 읽게 되었다(2022년 7월 현재 YES24 스테디셀러 44위에 위치한다). 이 책이 투영한 동시대의 욕망은 무엇인가? 몇 가지 차원이 존재하는데, 가장 단편적인 층위에서는 인류 역사의 장대한 서사시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통해 인간의 본질 따위에 관해 언제 어디서나 몇 마디 말을 보태며 잘난 척하고 싶다는 얄팍한 욕망을 꼽을 수 있다. 좀 더 진지한 층위에는 나와 내 주변인, 나아가 사회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관한 몇 가지 전망을 얻으려는 욕망도 있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 모든 욕망의 층위에 적절히 부응하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일단 탄탄한 역사학적 기초 위에 생물학, 생태학, 심리학 등을 넘나드는 식견도 대단하지만, 자기가 주장하는 바에 관한 명확한 근거들을 주장의 적절한 맥락 속에 배치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풀어내는 능력, 거기에 적절한 위트와 손에 잡히는 예시까지 곁들이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의 논지는 검증할 수 없는 영역(수렵채집 단계에서 농경사회로 막 접어든 인류의 심리상태에 관해 우리가 무슨 수로 논박할 수 있겠나?)을 다루되, 현재 수준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학계의 정설이라는 범주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여러 학문 영역에 걸친 실체적 진실들을 수집하고, 적절한 맥락을 부여하여 연결하고, 풍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부풀리는 능력은 모든 인문사회 계통 글쟁이들에게 귀감이 될만하다.
하라리 이전에 비슷한 맥락의 시도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채사장이라는 작가가 생각난다. 그도 문명의 거대 서사와 사상적 흐름을 매우 단순화된 구도로 쉽게 풀어 설명했다. 그런 접근은 여러 현실적 제약에도 최소한의 지적 소양은 갖추고 싶은 현대인들의 얄팍한 지적 열망에 효과적으로 조응했다. 하지만 너무 넓은 범위로 전선을 구획하다 보니 일반화의 도가 지나쳐 거의 흑백논리 수준으로 귀결되는 위험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책에서는 마음을 울리는 하나의 메시지가 부재하였다. 그러다 보니 책을 덮어도 현재 내 삶을 돌아본다거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실질적 행동으로 옮길만한 구체적인 지점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채사장의 책은 YES24 스테디셀러 80선 목록에 없다.
하라리는 왜 이런 책을 쓴 것일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에서 수학한 역사학자이면서 무엇보다도 퀴어인 복잡한 정체성이 문제 인식의 중요한 발단 중 하나라고 감히 짐작한다. 그는 인류가 무지와 맹목에서 벗어나 과학적 사고에 기반하여 호모 데우스로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과거와의 결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동성애를 자주 거론한다. 동성애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그 자체로 인류 역사의 출발점부터 존재했으며, 아마 종말의 순간까지 존재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시공간에는 일정 비율의 이성애자와 퀴어가 반드시 공존한다. 그것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대가 무지와 맹목의 시대라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무지와 맹목의 사상적 우산 아래 살고 있다. 하라리는 삶의 여정 속에서 불합리한 배제와 무시를 빈번히 경험했을 것이고, 자신이 이토록 명철한데도 불구하고 퀴어라는 정체성 탓에 특정한 맥락에서 배척당하거나 의기소침해야 했던 대목들을 부당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학문적 관심사에 성적 정체성을 결합한 주제를 심화시킬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여전히 퀴어에 대한 강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다수 대중을 일정 수준 계몽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으리라 본다. 단순화하자면, ‘왜 퀴어가 배척받는가? 아, 오랜 시간 축적된 종교적 편견이 문제구나. 그렇다면 왜 종교가 발흥하게 된 것인가? 아, 불확실성 속에서 사상적 결집과 협력을 위해서구나’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기만의 ‘빅 히스토리’ 얼개가 갖춰졌을 것이다.
현재가 행복하고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사람은 참신한 문제의식을 떠올릴 수도, 그 문제를 파고들 수도 없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동인이 없다. 현재가 불만족스러운 사람이 똑똑하기까지 하다면, 그 사람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독려할 수 있다.
“21세기에 허구는 소행성과 자연선택을 훨씬 능가하는,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호모 데우스, 215p

과거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퀴어적 정체성이 중요한 발단이 되었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에서는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하라리는 인간의 심오한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의사결정의 메카니즘은 뇌 기능상의 알고리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물학적 견해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빅데이터와 AI가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의 알고리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개인의 감정을 믿는 인본주의의 신화는 종언을 고할 것이고, 초인간과 AI가 권력의 중심에 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때 축출되는 것은 초인간이 될 재력과 능력이 없으며, AI에 의해 생산기능도 대체될 보통 사람들이다. 하라리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초인간이 될 정도의 재력은 없어 보인다. 현재로서는 그가 하는 일이 AI에 의해 대체될만한 성격의 일은 아니라고 판단되나, 먼 훗날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세계의 거의 모든 책과 논문을 집어삼키고 있는 구글이 인문학적 맥락화 역량과 기가 막힌 서술 역량을 갖추게 된다면 ‘AI하라리’가 가까운 시일 안에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라리는 오직 객관적 연구결과들에 근거해 냉철하게 역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가 같지만, 그의 미래 전망을 따라가다 보면 미묘한 두려움이 읽힌다. 그것은 자신의 명석함이 언젠가 무의미해지리라는 두려움, 그로 인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일종의 대체공포다. 적당히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알량한 똑똑함이 영원할 줄 안다. 하지만 매우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자기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AI하라리’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언젠가 필시 등장하리라는 것을 하라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은 그 날에 대비한 생존신고다. 저자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식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노정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라리의 미래 예측이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성능이 향상된 침팬지로 살았다. 그리고 미래에는 특대형 개미가 될지도 모른다.”
호모 데우스, 497p
인간의 모든 의식이 알고리즘으로 대체된 미래의 어느 날, 알고리즘에 먹통이 생기면 우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때는 이미 우리가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상실한 후일 태니까. 하라리가 이런 예측에 도달한 순간, 그는 자신이 그런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깨어 있는 의식이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그런 의식이고 싶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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