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뮤지컬에 매료되었던 때는 「오페라의 유령」이 개봉했던 2004년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온갖 문화예술 콘텐츠를 습자지처럼 빨아들이던 가난한 청년에게 에미 로섬(Emmy Rossum)의 청아한 목소리와 빵빵한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수준의 감동이었다. 2000년대 초에는 썩 괜찮은 뮤지컬 영화가 제법 많이 개봉했다. 「물랑루즈(2001)」, 「시카고(2002)」, 「프로듀서스(2005)」, 「드림걸스(2006)」, 「렌트(2007)」, 「헤어스프레이(2007)」 등등 거의 매년 주옥같은 작품들이 한편씩은 나왔다. 나는 그중에서 「렌트」를 특히 좋아했다. (「하이 스쿨 뮤지컬」 시리즈에도 한동안 무척 빠져 살았었으나 어쩐지 비밀로 하고 싶다.)
사실 내가 정말로 좋아한 장르는 ‘뮤지컬 영화’라기보다 ‘뮤지컬’ 그 자체였으나, 가난한 학생에게는 뮤지컬보다 뮤지컬 영화에 더 다가가기가 쉬웠다. 티켓 가격은 10분의 1이고, 천지가 영화관이니 접근성도 좋고, 배우들의 기량은 검증된 데다가 기복도 없고, 언제든 다시금 되돌려 볼 수도 있으니 그만한 대용품이 없었다. 뮤지컬 영화가 개봉하면 무조건 첫 주에 극장으로 달려갔고, 한동안은 OST를 끼고 살았다. 뮤지컬 영화의 신작이 뜸할 때면 대학 도서관의 멀티미디어 자료실에서 고전 명작 뮤지컬 영화의 DVD를 대여해 보곤 했다. 당시 도서관 멀티미디어 자료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헤드폰 끼고 봤던 작품 중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3)」와 「헤어(1979)」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뮤지컬의 역사를 다룬 책 속에서만 접한 작품들, 특히 국내 공연장에서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영화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한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뮤지컬 영화는 그 자체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는 영화 장르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분명 뮤지컬이라는 더 큰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대용품이자 관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뮤지컬 영화에 대한 첫 기억은 아마 이불을 끌어안고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를 보던 유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당시 TV 영화 프로그램에서는 헐리우드 고전 영화를 자주 틀어줬고, 뮤지컬 영화의 황금기였던 5, 60년대 영화도 종종 방영했다. 당시의 헐리우드 영화들은 굳이 뮤지컬 영화라고 분류하지 않더라도 극 중간중간에 한두 곡 정도 노래를 부른다거나 가벼운 춤을 섞는 경우가 많았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그런 영화로만 서구의 문물을 접할 수 있었던 나는 미국 사람들이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도 노래를 섞어가며 대화하는 줄 알았다. 누군가 한 소절을 시작하면 옆 사람이 자연스럽게 화음을 넣는다거나, 누군가 춤을 시작하면 하나둘 모여들며 군무가 되는 클리셰들이 만리타국 어딘가에선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펼쳤던 것이다. 문화 콘텐츠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미치는 영향은 그 정도로 크다. 그리고 아마 그러한 상상의 기저에는 나도 음악과 춤이 넘치는 저 머나먼 멋진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갈망도 있었을 게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환상의 세계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 졌지만, 뮤지컬, 그리고 뮤지컬 영화는 여전히 삶과 음악이 멋지게 뒤섞인 환상의 이데아에 대한 훌륭한 대체재가 되어 주었다.
돌이켜보면 단순히 작품을 보고 음악을 듣는 차원을 넘어 뮤지컬에 얽힌 부수적인 활동들도 정말 많았다. 뮤지컬 넘버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하고, 프랑스 대작 뮤지컬의 내한공연을 위한 서포터즈 멤버로도 참여했고, 뮤지컬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단체 레슨도 받고 녹음도 해봤다. 한창 뮤지컬에 미쳐 있던 시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대본이나 가사를 하나의 문서로 모아 책자로 인쇄해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정말 무거웠지만, 지하철에서 넘버를 들으면서 가사를 넘겨 보는 맛은 참 쏠쏠했다. 이처럼 20년 가까이 뮤지컬 세계의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뿌듯하게 지켜봤는데, 그 와중에도 제대로 된 뮤지컬 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점은 늘 아쉬웠다. 뮤지컬 시장은 늘 성장하는데 왜 뮤지컬 영화는 안 나올까? 물론 작곡과 녹음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고, 노래와 영화 연기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으나, 내 생각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우리는 뮤지컬을 보러 갈 때 노래를 기반으로 극이 전개된다는 것을 충분히 염두하면서 간다. 그래서 내러티브에 어느 정도 빈틈이 보이더라도 음악을 충분히 즐겼다는 이유로 그 빈틈을 상쇄해 나가며 극을 즐긴다. 뮤지컬의 배우들은 객석과 분리된 별도의 공간인 무대에 올라가므로, 아무리 사실주의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공연 예술이라는 점을 숨길 수가 없다. 우리는 뮤지컬 무대에서 서사와 음악이 훌륭한 조화를 이룰 때, 다소 거친 함축과 비현실성이 표면화되더라도 그것을 장르적 한계로 받아들이며 긍정한다. 그런데 뮤지컬 영화에서는 공연과 달리 등장인물들이 높은 무대라는 명시적인 가상의 공간에 올라가지 않고, 우리가 속한 현실적 공간에 뿌리를 내린 채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다가 돌연 노래로 어떤 메시지와 감정을 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득이 현실과 충돌하는 어떤 이질성과 낯섦을 마주하게 되는데, 우리의 학습된 데이터 안에는 한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그런 상황에 놓인 장면을 본 바가 없다. 헐리우드에서야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함과 동시에 뮤지컬의 문법이 그대로 영화계로 들어왔고,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춤과 노래의 포섭을 즐길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영화와 뮤지컬은 태초부터 별개의 장르로서 독자적인 발전의 궤적을 따랐으므로 영화의 형식 안에서 양자를 결합하는 것이 어색했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뮤지컬 영화들은 주로 헐리우드와 브로드웨이의 접점에서 나온 결과물들이었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국한하면 우리에게 그 밖의 선택지가 주어진 적이 없다. 그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22년에 개봉한 「영웅」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뮤지컬 영화를 하나 갖게 되었다. 「삼거리 극장(2006)」과 「인생은 아름다워(2022)」 제작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작품 이전의 몇몇 시도들이 보여주었던 조악한 완성도를 감안하면 서사와 넘버를 제대로 갖춘 첫 번째 뮤지컬 영화로서 「영웅」을 꼽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 영화에도 몇몇 아쉬움은 있다. 김고은의 성량과 발성은 주역을 맡기에는 위태롭다. 울리기 전에는 반드시 웃겨야 한다는 감독 특유의 강박관념도 여전히 거슬린다. ‘흔들림 없는 태산처럼’, ‘사랑이라 믿어도 될까요’ 등 몇몇 노래는 서사에 부드럽게 융화되지 않으며, ‘각 잡고’ 노래 부른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그럼에도 공연장에서 검증된 작품을 영화로 옮겼다는 점, 그리고 오리지널 캐스팅의 정성화를 그대로 주연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 힘입어 우리나라 첫 번째 본격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을 갖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나아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는 이제 우리도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한국인 배우들을 보게 되었다는 학습효과이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앞으로 한국적 맥락에서 한국인 배우들이 노래하는 장면들을 보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어색하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유익한 장르적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인다면, 우리나라의 뮤지컬 영화들도 점차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 완성도를 높여 나가게 될 것이고, 그 완성도에 상응하는 상업적 성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비로소 우리도 연말마다 뮤지컬 영화 한 편쯤은 개봉하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된다. 뮤지컬, 그리고 뮤지컬 영화의 팬으로서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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