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비로소, 우리나라 첫 번째 뮤지컬 영화: 「영웅(2022)」

내가 처음으로 뮤지컬에 매료되었던 때는 「오페라의 유령」이 개봉했던 2004년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온갖 문화예술 콘텐츠를 습자지처럼 빨아들이던 가난한 청년에게 에미 로섬(Emmy Rossum)의 청아한 목소리와 빵빵한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수준의 감동이었다. 2000년대 초에는 썩 괜찮은 뮤지컬 영화가 제법 많이 개봉했다. 「물랑루즈(2001)」, 「시카고(2002)」, 「프로듀서스(2005)」, 「드림걸스(2006)」, 「렌트(2007)」, 「헤어스프레이(2007)」 등등 거의 매년 주옥같은 작품들이 한편씩은 나왔다. 나는... Continue Reading →

다큐멘터리, 「루카스 그레이엄의 7 Years(2020)」,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루카스 그레이엄과의 대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본다. 서울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지역 뉴스를 눈여겨보게 된다. 사실 서울에는 지역 뉴스라는 것 자체가 없다. 서울의 뉴스는 그냥 대한민국의 뉴스다. 서울의 기쁨은 대한민국의 기쁨이고, 서울의 재난은 대한민국의 재난이다. 이렇게 모두의 삶에서 비슷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사건은 정작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를 멀어지게 만든다. 동작구에서 벌어진 일을 화양동에서... Continue Reading →

다큐멘터리-영화 호크니(Hockney, 2014) (KU시네마테크)

진실을 향한 분투 호크니(David Hockney)는 사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초현실주의 등 회화에서 두드러졌던 모든 형식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무려냈다. 그의 일생 자체가 사양미술사에서 시각성의 문제에 관한 모든 연구주제들의 집대성이었다. 호크니가 평생에 걸쳐 투신했던 문제는 인간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평면 회화 속에 가장 정확하게(=진실에 가깝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단일 시점의 원근법으로 세계를 지각하지 않는다. 유동적인 초점의 파편들이... Continue Reading →

콜드플레이: 헤드 풀 오브 드림스 (Coldplay: A Head Full Of Dreams, 2018, 메가박스)

벌써 그렇게 됐나 싶은데, 이제는 그럴 때가 된 듯도 하다. 콜드플레이(Coldplay)도 그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하나 쯤 가질 때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맷 화이트크로스(Mat Whitecross)가 20년 동안 콜드플레이를 따라다니면서 촬영한 매우 사적인 영상들과 기존의 라이브 공연 영상들을 한데 엮어서 만든 다큐멘터리다. 20년 전부터 이들이 슈퍼스타가 될 것을 어떻게 알고 촬영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극장을 나서면... Continue Reading →

더 스퀘어(The Square, 2017)

※ 이 글에 스포일러가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히 있겠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스포일러의 영향으로부터 꽤나 자유로운 영화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래도 영화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을거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읽으면 좋겠죠. 선을 넘어버린 영화 우리는 항상 최고를 꿈꾸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선을 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적정한 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얼핏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Continue Reading →

미켈란젤로 : 사랑과 죽음 (Michelangelo : Love and Death, 2017)

메가박스에서 수입하고 있는 '스크린 뮤지엄' 다큐멘터리의 다섯 번째 개봉작이다. 내가 본 회차는 '클래식 소사이어티 토크'라고 하는 고고한 수식어를 달고, 전문가에 의한 큐레이션이 덧붙여지는 기획이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완성하고, 메너리즘의 문을 열어 젖히기까지한 천재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였다. 내용 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었고, 조르죠 바사리(Giorgio Vasari)와 아스카니오 콘디비(Ascanio Condivi)의 미켈란젤로 전기에서 인용한 나레이션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Continue Reading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

※ 스포일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함 "Shape"와 "Save"와 "Shave"를 혼동하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위하여 친절한 부제를 달아 놓은 작품이지만, 정작 세세한 작품 속 장치들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한 번의 감상으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출생의 비밀, 아가미, 인어, 외로움, 수중 자위행위 등 두 존재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러 층위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나, 결국 그들의 사랑은 가슴 보다는... Continue Reading →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2017)

마치 처음부터 35년 터울의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 마냥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모든 데이터가 사라지게 된 계기,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리플리컨트의 중대한 가치, 더욱 암울해진 시대상에 나름의 방식대로 적응해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 등 세계관의 모든 자질구레한 설정들이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지라, 느슨한 전개임에도 아주 수월하게 몰입된다. 무엇보다도 모든 비밀들이 결국에는 진정한 주인공인 데커드에게로... Continue Reading →

블랙 팬서(Black Panther, 2018)

※ 관점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똥에 망토를 입혀놓아도 재미있는 히어로 영화가 나올 것 같았던 마블이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실패했다. 마블표 영화에 의례 기대하기 마련인 살아 숨쉬는 영웅들의 인간적인 매력과 견고한 캐릭터들의 협연에서 나오는 화학작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응원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과오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그에게... Continue Reading →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이한 세계(The Curious World of Hieronymus Bosch, 2016)

탈정형의 욕망이 발작 수준에 이르는 신인상주의 이후를 논외로 하면,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파격적, 진보적, 급진적, 내면적 양식을 선보였던 화가이다. 단순한 자연의 모사에서 벗어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욕망과 상상력의 창조물들은 거의 비견할 대상이 없을 정도이다. 엘 그레코의 뒤틀린 메너리즘적 판타지가 겨우 보쉬의 턱 밑에 다다를 수 있는 정도일까. 물론 보쉬가 보여준 세계가 까마득한...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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