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은 개인전, 「The Moment Your Smile Fades Away」 (송은아트큐브)

시각예술에서 회화의 왕좌가 찬탈당한 역사는 어느덧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진부한 수사(rhetoric)가 됐다. 테리 스미스(Terry Smith)는 1970년경 이후로 어떤 경향도 시각예술에서 지배적 양식이 될 정도의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경향’을 ‘매체’로 바꿔 써도 이질감이 없다. 수많은 갤러리들과 경매장에서는 여전히 거래의 중심에 서 있지만, 보도지면을 장식하는 각종 비엔날레, 미술상,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미디어와 개념미술을 걷어 내면... Continue Reading →

돈선필 개인전: 끽태점 展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우리가 ‘먹을 끽(喫)’자를 입에 올릴만한 용례라고는 ‘만끽’과 ‘끽연’, 사실상 이 두 단어뿐이다. 그나마도 ‘끽연’은 ‘흡연’에 밀려 이미 사장되고 있다. 아마도 끽 자에 교묘하게 묻어 있는 긍정적인 어감이 금연 캠페인과 충돌하며 반감을 산 듯하다. 이제는 일상적인 언어생활 속에서 된소리가 초성에 붙는 한자어를 접하는 상황 자체가 상당히 드물어졌는데, 돈선필 작가는 자신이 모아온 피규어들을 미술관에 진열해 놓고 끽... Continue Reading →

김병기 개인전: 「여기, 지금」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왠지 이 전시에 대해서 무엇인가 쓰려거든 제대로 ‘각’을 잡아야만 할 것 같다. 현역 최고령 화가의 개인전이라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으려고 해도 뿌리 깊은 장유유서의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란 내가 그 무게감을 수이 떨쳐 버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103세가 되면 어떤 인물이 될지 생각해 본다. 몸 구석구석이 고장 났다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감흥이 없을... Continue Reading →

변월룡: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展 (삼청동 학고재 전관)

좌대를 넘어서, 변월룡이라는 이름이 오늘날 우리 미술사에서 점유하는 무게감은 크게 두 관점을 포섭하는데, 하나는 한반도 디아스포라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이다. 물론 이 두 가지 관점은 우리 민족이 겪은 근현대사의 아픔이라는 레토릭 안에서 상호 교차한다. 변월룡은 19세기 조선 왕조의 붕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디아스포라의 후손이었다. 그는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Continue Reading →

백현진 展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PKM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7' 후원작가 선정 이력이 말해 주듯이 백현진은 최근 가장 핫한 작가임에 틀림 없다. 내가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그 올해의 작가상 展 , 그리고 최근의 커피사회 展 에서 한 꼭지 정도뿐이지만,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온갖 병리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쉽고도 신선한 은유로 접근했던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쉽지 않았다. PMK 갤러리에서... Continue Reading →

민정기 개인전: Min Joung-Ki 展 (국제갤러리)

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읽힌다. 40년 이상을 회화에 오롯이 투신한 민정기가 보여주는 풍경은 이 땅을 거쳐온 선조들의 시각을 현재의 질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를테면 수묵담채화에서 튀어 나온 기암괴석들이 연립주택과 빨간벽돌 빌라, 편의점과 주유소처럼 우리 주변에 산재한 일상적 구조물들을 집어 삼킬 듯이 달려온다. 부감법으로 도식화된 풍경 속에 장방형의 철근-콘트리트 건축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친 사선형의... Continue Reading →

김유정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 展 (역삼 소피스 갤러리)

우리가 식물의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존 거대 밀림의 장관을 볼 때가 아니다. 오히려 콘크리트 벽이나 보도블럭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의 춤사위를 볼 때 그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갸냘프기 짝이 없는 민들레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릴 확률, 그리고 허공을 유영하다가 그 작은 틈새로 들어갈 확률, 적절한 압력이 작용해 뿌리를 박을 확률, 최적의 영양소와 일조량을 만나서 발아할...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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