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데이터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날 세 개의 전시를 보았고, 이 전시가 세 번째 였기 때문에 대충 훑기만 했다. 물론 시간과 체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는 미술관에서 동영상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 전시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까닭에 역시 동영상이 주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들을 갈지자로 회피했다. 하지만 당일 서울관에서 가장 붐비는, 특히나 어린 친구들이... Continue Reading →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展(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 전시는 덴마크 출신의 아스거 욘(Asger Jorn)을 단순히 표현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사회참여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려는 기획인데, 나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으므로 그 재조명이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가 없다. 다만 코브라(CoBrA)라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던 것,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주도했던 것, 북유럽 전통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했던 것 등을 가지고 사회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결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느껴졌다. 쿠르베로부터 이어져온 사회참여적인, 소위... Continue Reading →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비트겐슈타인이 이 전시를 봤다면 아마 아시아라는 말 자체에 진저리를 치며 10분만에 나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아시아라는 공동체는 없다. 우연히도 인접하게 모여 있는 개별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만일 국가라는 개념에 실체가 있다면 말이다. 상당수의 철학적 문제들이 서로 다른 개체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를 때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 전시에 모인 국가들을 아시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가능한 까닭은 이들이... Continue Reading →

마르셀 뒤샹 展 + MMCA 뮤지엄 나잇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현대미술의 본격적인 미국 상륙을 알렸던 그 유명한 1913년 아모리쇼(Armory Show)의 중심에 뒤샹(Marcel Duchamp)이 있었다. 서명한 변기로 소동을 일으킨 것도 뒤샹이다. 모나리자 엽서에 수염을 그리고 감히 성희롱한 것도 뒤샹이다. 페르소나로 여성적 자아를 끄집어내서 젠더를 비튼 것도 뒤샹이다. 그러고 보니 현대미술의 모든 문헌이 서두에서 그의 이름을 인용할 수 밖에 없다. 잭슨 폴락은 피카소를 두고, "제기랄, 저 인간이... Continue Reading →

소장품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여러 기획전 중에는 틀림없이 근대에 초점을 맞춘 것이 하나 이상 있다. 지금은 「대한제국의 미술: 빛의 실을 꿈꾸다」 展이 덕수궁관에서,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이 과천관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근대미술을 다룬 전시가 두 개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은 근대미술을 교과서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훑는 전시이기에 과천이 아닌 근대미술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고... Continue Reading →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제목에 매우 충실한 전시다. 약 300여점의 사진을 통해 동시대 인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다각도로 고찰했다. 지역, 인종, 젠더, 종교를 망라한 작품들은 넓은 공간 속에 자유롭게 펼쳐져 있고, 관람객들은 느슨한 동선을 따라 그 사이를 유영할 수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하나의 키워드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 키워드에 연관된 사유만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이 매우... Continue Reading →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MMCA 연구 프로젝트 국제 심포지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구프로젝트로, 작년의 “미술관은 무엇을 연구하는가?”에 이어 올해는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라는 직설적인 질문으로 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한 폭넓은 담론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 연구프로젝트는 국제 심포지엄과 학술서 발간의 형태로 전개되는 것 같은데, 나는 지난 주말에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11월 30일(금)과 12월 1일(토) 이틀 동안 진행되었는데, 생업 관계로 금요일은 참석할 수... Continue Reading →

올해의 작가상 2018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17 展>을 보고 통인시장에 들러 먹었던 고로케의 기름맛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덧 2018년의 작가를 뽑고 있다. 미술계의 연례행사로 '한 해'라는 작위적인 시간 단위를 새삼 상기한다. 어찌보면 1년의 시간을 전시로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동차세 납입이나 건보료 인상 따위로 지각하는 것 보다야 훨씬 낭만적이다.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의 터너 상(Turner Prize)에서 영감을 받은... Continue Reading →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미술관은 리미널리티(liminality)의 공간이다. 이는 우리가 호흡하고, 먹고, 마시는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둔, 미(美)와 지(知)의 세계로 들어가는 전이 지대를 의미한다. 무심한 눈빛들만 가득한 거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광장과 정원, 조각상과 열주를 전방에 내세우고, 그 심연에 일상보다 더 위대하고 가치있는 것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그 안에 들어서면 문화권 내의 보편적인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찬사를 받기 합당하며, 배우고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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