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을 표하는 두 개의 행렬 서울에 살 때야 제아무리 인기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라도 평일에 휴가 내고 보면 되니 딱히 부담이 없었다. 지방에 오고 나니 서울에 모든 문화 시설이 몰려 있다는 사실이 제대로 실감이 난다. 이 전시도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예매 사이트에 내가 서울로 올라가는 날 운 좋게도 딱 한 자리 공석이 있어서 냉큼 예약했다.... Continue Reading →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미술 1900-2020」
정론 미술사 생성 기관의 책무 국립현대미술관이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의 정론을 만드는 공식적 기관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기관은 가장 방대한 컬렉션, 가장 많은 인재,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앞세워 미술사 담론을 주도해 나간다. 국립 기관으로서 자국 미술사를 긴 호흡으로 직접 정리하겠다는 야심이 그동안 왜 없었겠느냐 만은, 2021년에야 이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1969년 경복궁 미술관 개관... Continue Reading →
권미원의 「장소 특정적 미술: ONE PLACE AFTER ANOTHER」
Miwon Kwon(2002), One Place after Another “장소에 묶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교환, 이동, 소통의 공간적 장애가 줄어들고 있는 세계에서 덜 중요하기보다는 더 중요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하비(254p) 작품이 의미를 갖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작품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는 방식이다. 작품은 하나의 독립된 완성체로서 모든 의미를 그 안에 내포한다. 한마디로 자족적이다. 스스로 살아 숨... Continue Reading →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Linda Nochlin(1971),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가리키는 곳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을 분질러라 「아트뉴스」 紙 1971년 1월호에 실렸던 에세이다. 미술사와 미술비평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글이다. 그만큼 많이 인용된다. 만약 본인이 미술사를 공부했는데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면 자신의 식견이 68혁명 이전 어딘가, 심지어 반 고흐의 노란집 어느... Continue Reading →
팸 미첨 & 줄리 셸던, 「현대미술의 이해: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읽는 8가지 새로운 눈」
Pam Meecham & Julie Sheldon, Modern Art: A Critical Introduction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다원주의가 충분히 보장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다원주의의 본질은 여러 생각과 파편화된 개인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내가 옳은 만큼 남도 옳다. 18세기에 살롱전을 드나들던 디드로(Denis Diderot)는 계몽주의적 가치를 바탕으로 이 작품 저 작품의 우열을 가릴... Continue Reading →
노아 차니의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언젠가 발견될 잃어버린 작품들」
Noah Charney, The Museum of Lost Art 모든 작품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가장 영구적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작품의 의미는 고정불변의 조건이 아니다. 작가를 떠난 작품은 유동하는 의미의 세계에 내던져진다. 작품의 의미는 물리적 실재 여부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듯, 작품이 세상에 내던져진 순간부터 소멸의 운명이 작품의 어깨에 달라붙는다. 그 운명을 따라... Continue Reading →
캐롤 던컨의 「권력의 미학: 18세기 회화부터 퍼포먼스 아트까지 미술로 본 사회, 정치, 여성」
Carol Duncan (1993), The Aesthetics of Power 그 작품은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이론상으로 미술관은 모든 방문객의 정신적인 함양을 위해 헌정된 공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위 있고,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엔진이다."- 253p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캐롤 던컨(Carol Duncan)의 저서는 「미술관이라는 환상」 하나뿐이었는데, 작년 말에 「권력의 미학」이 뒤늦게 출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대전엑스포 개최하던 당시 발표되었던 책이 30여 년... Continue Reading →
샬롯 홀릭의 「한국미술: 19세기부터 현재까지」
Charlotte Horlyck, Korean Art from the 19th Century to the Present 타자의 시선, 우리의 정체성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질문은 언제나 화두가 된다. 일반적으로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독자적인 기준으로 확고하게 정의 내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한 민족이 타자의 시선에 눈을 돌리는 경향은 정신없는 고도성장이 어느 정도... Continue Reading →
홍세연의 「명화로 읽는 미술 재료 이야기: 템페라에서 아크릴까지」
미술재료사와 즉물성 재료로 읽는 미술사다. 미술사 전반을 아우르지는 않는다. 부제가 암시하듯 회화사에 집중한다. 미술이 물질의 한계를 벗어난 시점부터는 간단히 암시만 하고 마무리한다. 최근에 이소영의 책이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 홍세연은 미술재료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그보다는 더 깊게 들어간다. 구체적인 안료와 색깔 하나하나까지 세분하여 설명해 준다. 미술 전공자는 학교에서 이미 배웠을 내용이고, 비전공자라면... Continue Reading →
데즈먼드 모리스의 「포즈의 예술사: 작품 속에 담긴 몸짓 언어」
Desmond John Morris, Postures: Body Language in Art 거짓말은 쉬운 편이다. 하지만 몸짓을 가장하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단순히 본심을 숨기고자 할 때 몸짓이나 표정을 통제하기 위해 애쓴다. 그럴수록 몸은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뻣뻣해지거나 아예 간과했던 부위에서 본심을 드러내곤 한다. 동물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인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선사 시대부터...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