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호와 호흡: 이채은의 2022년 회화

다양성이 시대적 화두가 된 세상에서, 그것을 거스르려는 조그마한 움직임일지라도 조리돌림을 각오해야 한다. ‘민주주의=절대선’이라는 제국주의적으로 강요된 등식에 다양성이 무비판적으로 침습되면서 단순한 의견이나 취향의 표명마저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스럽게 비평의 영토까지 침범한다.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비평은 편파적이고 열의에 차고 정치적이어야 한다.”[1]는 것이 기존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에 좋은 이유가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다. 고로 무슨... Continue Reading →

[에세이] 혼돈에서 사후생으로: 양은영의 2022년 회화

예술가는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작품의 형태로 투사한다. 그 작품은 미술계, 혹은 그 울타리 밖 더 넓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 놓여 소통의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 소통이 성공할지, 혹은 실패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많은 예술가가 그 성공의 여부에 관심이 없다는 듯 짐짓 초연한 표정으로 작업실을 지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의 가능성이 완전히... Continue Reading →

손택, 키이우, 이태원 : 타인의 고통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Susan Sontag(2003),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무더위 속에서 이 책을 읽고 이제야 글로 정리한다. 진작 썼어야 하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낙엽이 쌓인다. 먹고 살기 위한 글에 쫓기다 보면 사적으로 쓰는 글도 일처럼 느껴진다. 미뤄뒀던 글감이 어떤... Continue Reading →

노동집약적 환대, 정승규 개인전: Fragmentation 展 (CR Collective, 22.8.4. ~ 8.27.)

지난 8월에 CR Collective(CR콜렉티브)에서 열렸던 정승규 개인전, <Fragmentation> 展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여 '비평웹진 퐁'에 게재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정말 오랜만에 본 누군가의 개인전이었는데, 훑어 보자마자 여러 시상이 떠올랐고, 무언가를 쓰고 싶어졌다. 졸고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비평웹진 퐁'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 https://view.pong.pub/57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Linda Nochlin(1971),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가리키는 곳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을 분질러라 「아트뉴스」 紙 1971년 1월호에 실렸던 에세이다. 미술사와 미술비평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글이다. 그만큼 많이 인용된다. 만약 본인이 미술사를 공부했는데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면 자신의 식견이 68혁명 이전 어딘가, 심지어 반 고흐의 노란집 어느... Continue Reading →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

Roland Barthes, Mythologies (1957) "언어의 이름으로 한 사람에게서 그의 언어를 훔치는 것, 바로 이런 행위를 통해 모든 합법적인 살인이 시작된다." 70p "신화의 기능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키는 것이다." 282p 신화에 거하거나, 벗어나시오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장은 바르트(Roland Barthes)가 현대의 신화들을 구체적 실례로 살펴보고 그 내막을 샅샅이 분석한 내용이다. 1950년대 현재,... Continue Reading →

팸 미첨 & 줄리 셸던, 「현대미술의 이해: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읽는 8가지 새로운 눈」

Pam Meecham & Julie Sheldon, Modern Art: A Acritical Introduction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다원주의가 충분히 보장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다원주의의 본질은 여러 생각과 파편화된 개인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내가 옳은 만큼 남도 옳다. 18세기에 살롱전을 드나들던 디드로(Denis Diderot)는 계몽주의적 가치를 바탕으로 이 작품 저 작품의 우열을 가릴... Continue Reading →

[미디어 비평] 스펙터클 인 블랙박스

스펙터클 인 블랙박스: 충격을 넘어 블랙박스는 불신을 먹고 자란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블랙박스 사랑은 유별나다. 유럽,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의 블랙박스 보급률이 10~20% 수준에 그치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블랙박스 보급률은 9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 자동차를 구매하면 가장 먼저 블랙박스부터 장착하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영업사원에게 말만 잘하면 애초에 블랙박스를 장착한 상태로 신차를 출고해 주기도 한다. 여느... Continue Reading →

성일권의 「비판 인문학 100년사」

동거인께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정기 구독하고 있는데, 요즘엔 통 읽지를 않으신다. 어느 날 구독자 사은품으로 이 책이 배송되었다. 재미는 없어 보였지만, 나라도 이걸 읽어서 정기 구독료를 조금이나마 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책을 폈다. 이 책에는 두 줄의 부제가 달려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실존주의, 인류세까지 / 프로이트에서 푸코, 카스텔까지” 여기서 첫 줄은 사상을, 둘째 줄은 사람을... Continue Reading →

이영준의 「페가서스 10000마일」

한 번 더 갔다 오세요. ‘기계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앞장서서 개척하고 있는 이영준의 본격적인 기계비평서로서, 「기계비평」에 이은 두 번째 시도다. 이번에는 기계 전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육중한 컨테이너선에만 집중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평론을 전개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5년에 걸쳐 끈질기게 컨테이너선 승선을 요청했고, 어렵사리 승낙을 얻어 상하이에서부터 사우샘프턴까지 10,000마일의 여정을 완주했다. 그가 탑승한 ‘CMA CGM...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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