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유미주의자의 승리 살면서 한때나마 예술가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약 사회적 조건이나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무엇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면, 대다수는 락앤롤 스타가 될 것이고, 그들을 위해 음반을 사주기만 하는 사람은 소수에 그칠 것이다. 정말 고리타분해 보이는 아무개라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한 조각쯤은 마음속에 품고 산다. 재능이 남들에 못미처서, 먹고 살아야... Continue Reading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Emily Brontë, Wuthering Heights 집요함과 복수에 관하여, 여러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꼭 읽어야 할 고전’의 위상을 부여받고 있는 이 작품에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되는 것일까? 사실 이 작품에서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왕 거두었다면, 그 후에 어떻게 보살펴야... Continue Reading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

Stephen Edwin King, On Writing (‘글쓰기에 관하여’라는 쌈빡한 원어 제목은 저자의 명성과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국어판 제목은 엉뚱하게도 글쓰기로 잔재주 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구하고 있다. 저자가 “글쓰기는 유혹”이라고 선언하기는 한다(163p). 하지만 이는 좋은 글이 지니는 속성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글쓰기로 유혹하고 싶은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성공한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무언가로 성공하고 나서 성공한... Continue Reading →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The Testaments)」

Margaret Atwood, The Testaments: The Sequel to the Handmaid’s Tale 좋은 문학 작품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백 개의 질문을 남긴다. 이 기준에 입각하면 「시녀 이야기」는 더없이 탁월한 작품이었다. 「시녀 이야기」는 인류가 궁지에 몰린 순간에 어떻게 악마적 본능이 분출될 수 있는지, 극단주의적인 종교적 맹신이 교활한 권력과 결탁할 때 어떠한 비극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원래... Continue Reading →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Louisa May Alcott, Little Women (1868, 1869) 상상의 부재에 던지는 교훈 지난겨울에 많은 사람이 그랬듯, 나도 영화판 「작은 아씨들」을 보고 나서 뒤늦게 소설을 읽었다. 작가가 명시하고 있듯, 소녀들에 바치는 책이기는 하지만, 나는 소년일 때조차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해적판 짜깁기 판본을 쉽게 접할 수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젠더 기대에 편승한 탓인지 눈길이 가지는 않았다.... Continue Reading →

에단 호크의 「이토록 뜨거운 순간」

Ethan Hawke, THE HOTTEST STATE (1996) 치기어린 20대의 사랑이야기다. 대학을 중퇴한 배우 윌리엄이 어느 라이브 주점에서 사라를 만나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사라는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매우 섬세한 여인인데, 윌리엄에 본능적으로 끌리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번번이 그의 사랑을 밀어낸다. 여기서 그녀가 밀어내는 방식은 섹스를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의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사랑하면서도 섹스를 거부하는 상황은... Continue Reading →

존 버거의 「G」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서 자괴감마저 드는 소설이다. ‘콜라주 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앞뒤 문단이 서로 분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른 이야기로 급속히 선회한다. 두 개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짧은 문단 단위로 계속 병치되기도 한다. 인물들이 망상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문맥상 필요도 없는 그러한 망상을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묘사하는지 의문이다. 혹여 나중에... Continue Reading →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Conclave): 신의 선택을 받은 자」

거룩한 성의를 걸친 종교계의 흑막을 열어 젖히는 이야기는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로마 가톨릭은 지난 2000년 간 박해의 상징으로, 시대의 율법으로, 구습의 망령으로, 혹은 평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적절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찬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에, 그 내막에 대한 궁금증도 더불어 커져간다. 종교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신비를 동반하며 그 생명을 유지하기... Continue Reading →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출2014, 역2017)」

사람은 참으로 잔인한 면이 있다.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봉착한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도 내심 즐긴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극한상황에 대한 대리체험 욕구라고 하기에는 좀 더 고약하다. 아마 이 고통을 겪는 것이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주는 희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재인식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을 다룬 영화나... Continue Reading →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출1985, 역2002)」

대학교때 까지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주로 집어 들던 소설들은 전쟁, 민주화 운동 등 급박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인물들의 고뇌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식으로 성찰을 하다가 이내 '그래도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여서 참 다행이야'라는 막연하고 비겁한 결론으로 귀착하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적인 읽기에 비하여 감성적 읽기를...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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