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Vladimir Nabokov(1955), Lolita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 450p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500p) 1. 들어가며 어떤 텍스트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명사가 생성되었다면, 그 텍스트는... Continue Reading →
제임스 엘로이의 「아메리칸 타블로이드」
James Ellroy, AMERICAN TABLOID 영화 「LA컨피덴셜(1997)」은 킴 베이싱어(Kim Basinger)가 육감적으로 전면에 등장한 포스터 이미지로 소년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지난해 여름에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IPTV의 하이퍼링크를 유랑하다가 그 포스터를 우연히 만나 반가운 마음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감, 배신과 반목과 화해가 뒤엉킨 갈등 구조, 담담하고 묵직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원작자에 대해 찾아보다가 이 소설에... Continue Reading →
손원평 소설집, 「타인의 집」
미화된 이야기가 없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 망각과 미화 손원평의 첫 번째 소설집에는 온통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뿐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은 나의 아픔을 이해해 주지 못하거나(「4월의 눈」), 애초부터 평생 나를 무시만 해온 인간이거나(「zip」), 아예 상상을 뛰어넘는 괴물이다(「괴물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더라도 타인을 향한 순수한 선의는 천추의 한으로 돌아오고(「상자 속의 남자」), 세대와 민족 간 혐오는 극에 달해 일대... Continue Reading →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유미주의자의 승리 살면서 한때나마 예술가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약 사회적 조건이나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무엇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면, 대다수는 락앤롤 스타가 될 것이고, 그들을 위해 음반을 사주기만 하는 사람은 소수에 그칠 것이다. 정말 고리타분해 보이는 아무개라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한 조각쯤은 마음속에 품고 산다. 재능이 남들에 못미처서, 먹고 살아야... Continue Reading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Emily Brontë, Wuthering Heights 집요함과 복수에 관하여, 여러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꼭 읽어야 할 고전’의 위상을 부여받고 있는 이 작품에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되는 것일까? 사실 이 작품에서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왕 거두었다면, 그 후에 어떻게 보살펴야... Continue Reading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
Stephen Edwin King, On Writing (‘글쓰기에 관하여’라는 쌈빡한 원어 제목은 저자의 명성과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국어판 제목은 엉뚱하게도 글쓰기로 잔재주 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구하고 있다. 저자가 “글쓰기는 유혹”이라고 선언하기는 한다(163p). 하지만 이는 좋은 글이 지니는 속성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글쓰기로 유혹하고 싶은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성공한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무언가로 성공하고 나서 성공한... Continue Reading →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The Testaments)」
Margaret Atwood, The Testaments: The Sequel to the Handmaid’s Tale 좋은 문학 작품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백 개의 질문을 남긴다. 이 기준에 입각하면 「시녀 이야기」는 더없이 탁월한 작품이었다. 「시녀 이야기」는 인류가 궁지에 몰린 순간에 어떻게 악마적 본능이 분출될 수 있는지, 극단주의적인 종교적 맹신이 교활한 권력과 결탁할 때 어떠한 비극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원래... Continue Reading →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Louisa May Alcott, Little Women (1868, 1869) 상상의 부재에 던지는 교훈 지난겨울에 많은 사람이 그랬듯, 나도 영화판 「작은 아씨들」을 보고 나서 뒤늦게 소설을 읽었다. 작가가 명시하고 있듯, 소녀들에 바치는 책이기는 하지만, 나는 소년일 때조차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해적판 짜깁기 판본을 쉽게 접할 수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젠더 기대에 편승한 탓인지 눈길이 가지는 않았다.... Continue Reading →
에단 호크의 「이토록 뜨거운 순간」
Ethan Hawke, THE HOTTEST STATE (1996) 치기어린 20대의 사랑이야기다. 대학을 중퇴한 배우 윌리엄이 어느 라이브 주점에서 사라를 만나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사라는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매우 섬세한 여인인데, 윌리엄에 본능적으로 끌리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번번이 그의 사랑을 밀어낸다. 여기서 그녀가 밀어내는 방식은 섹스를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의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사랑하면서도 섹스를 거부하는 상황은... Continue Reading →
존 버거의 「G」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서 자괴감마저 드는 소설이다. ‘콜라주 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앞뒤 문단이 서로 분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른 이야기로 급속히 선회한다. 두 개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짧은 문단 단위로 계속 병치되기도 한다. 인물들이 망상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문맥상 필요도 없는 그러한 망상을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묘사하는지 의문이다. 혹여 나중에...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