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 「절필시대: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억해야 할 이름들, 특히 정종여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붓을 놓아야만 했거나 잊혀야만 했던 여섯 명의 화가들을 조명한 전시다. 정찬영은 화가로서의 삶과 가정주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붓을 놓았다. 백윤문은 전성기에 건강을 잃고 화단을 떠나야 했다. 정종여는 북한을 선택했고, 거기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우리 미술사에서 지워졌었다. 임군홍에 대해서는 월북인지 납북인지 합의를 이루지... Continue Reading →

바바라 크루거_BARBARA KRUGER: FOREVER 展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상업주의의 성전에서 만난 상업주의의 투사 화장이란 먹고 사는 문제와 전혀 상관없이 순수하게 차이화의 기호로만 존재하는 활동이다. 화장은 본질의 차이가 아닌 기호의 차이만을 만들어 낸다. 마스카라를 그리는 행위 자체는 출근해서 일하고 성과를 내고 월급을 받고 식료품을 구매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마스카라를 그린 자와 그리지 않은 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리지 않은 자는 문명화된 행동을 거부하는... Continue Reading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팅의 역사」

모든 역사의 시작, 사람 전설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또 다른 전설적인 큐레이터 11명을 인터뷰하고 그 전문을 실은 책이 어떻게 큐레이팅의 역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역사란 대단한 위인들의 기념비적 성취들을 쫒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저 사람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들이다. 한 명의 소시민이라도 자신의 삶을 흔적으로... Continue Reading →

가짜 수장고를 거닐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아스팔트마저 녹아 버릴 것 같은 날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찾았다. 미술관 자체는 지난해 12월에 개관했지만 주변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번듯한 주차장이 없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 자그마한 자투리 공간에 마련한 임시주차장을 이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주차선 같은 것 없이 관람객들의 암묵적 룰로 운영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건설자재 무더기를 위태롭게 지나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지게차와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들이 육중한 재료들을 운반했고,... Continue Reading →

베르나르 뷔페 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선을 넘는, 선을 향한 충동 미술사를 통틀어도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처럼 독보적인 시그니처를 보유하고 있는 화가는 드물다. 시커멓고 곧은 선이 강박적일만큼 수직으로 뻗어 있는 화면을 보자면, 뷔페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 위하여 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을 긋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서 대상을 잠시 빌리는 것 같다. 뷔페는 자기만의 선을 일관되게 깎고 연마한 끝에 누가 보더라도 그... Continue Reading →

제주작가 조명전 「99+1」 展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반쪽짜리 제주정신 제주도를 찾으면 일정이 촉박하더라도 제주도립미술관을 꼭 들른다. 안도 다다오 풍의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을 즐기는 맛도 있지만 제주도 미술담론의 현 주소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가장 크고, 예산이 많고, 권위적인 하나의 제도권 기관이 그 지역의 미술담론을 대표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관 10주년을 맞는 제주도립미술관은 도내 미술담론에서 그 상징성이 크다. 뜨내기... Continue Reading →

「위대한 전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최고의 큐레이터들이 답하다」(폴라 마린콜라 엮음)

What Makes A Great Exhibition? Edited by Paula Marincola 폴라 마린콜라(Paula Marincola)가 주도하는 필라델피아 전시지원계획(Philadelphia Exhibitions Initiative)의 일환으로 좋은 전시의 조건에 관한 질문이 던져졌고, 13명의 전문가가 이에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하여 본질, 장소, 구조, 배치 측면에서 위대한 전시에 관한 생각을 나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위대함과는 정반대에 놓인 전시를 보게 되었다. 그... Continue Reading →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展 (a.k.a. 야수파 걸작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색채와 사족의 향연 전시 제목이 이렇게 터무니 없이 긴 것이 이미 사족의 향연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미술관에서 작품 보다 텍스트에 압도 당하는 경험이 한두번은 아닌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작품이 하나 이상 걸린 화가가 줄잡아 20명은 넘을 터인데,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깨알 같은 신상정보가 붙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신상정보의... Continue Reading →

이채은 개인전, 「The Moment Your Smile Fades Away」 (송은아트큐브)

시각예술에서 회화의 왕좌가 찬탈당한 역사는 어느덧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진부한 수사(rhetoric)가 됐다. 테리 스미스(Terry Smith)는 1970년경 이후로 어떤 경향도 시각예술에서 지배적 양식이 될 정도의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경향’을 ‘매체’로 바꿔 써도 이질감이 없다. 수많은 갤러리들과 경매장에서는 여전히 거래의 중심에 서 있지만, 보도지면을 장식하는 각종 비엔날레, 미술상,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미디어와 개념미술을 걷어 내면...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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