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 「절필시대: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억해야 할 이름들, 특히 정종여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붓을 놓아야만 했거나 잊혀야만 했던 여섯 명의 화가들을 조명한 전시다. 정찬영은 화가로서의 삶과 가정주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붓을 놓았다. 백윤문은 전성기에 건강을 잃고 화단을 떠나야 했다. 정종여는 북한을 선택했고, 거기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우리 미술사에서 지워졌었다. 임군홍에 대해서는 월북인지 납북인지 합의를 이루지... Continue Reading →

가짜 수장고를 거닐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아스팔트마저 녹아 버릴 것 같은 날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찾았다. 미술관 자체는 지난해 12월에 개관했지만 주변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번듯한 주차장이 없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 자그마한 자투리 공간에 마련한 임시주차장을 이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주차선 같은 것 없이 관람객들의 암묵적 룰로 운영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건설자재 무더기를 위태롭게 지나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지게차와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들이 육중한 재료들을 운반했고,... Continue Reading →

그리스 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오늘날 우리가 고대 그리스라고 일컫는 대상은 하나의 단일문화권이 아니라 에게해를 연하여 살아온 이질적인 지역과 민족을 아우른 것이다. 트로이, 미케네, 크레타로 대표되는 이들 지역에서는 기원전 3천년 경부터 각종 건축물과 조각들로 그 뚜렷한 흔적을 남겨왔다. 그 후손들은 로마 제국에게 패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수많은 전쟁과 이합집산을 거쳐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를 일궜다. 이번 전시는 야심차게도 그 최초의 흔적들에서부터 알렌산드로스... Continue Reading →

베르나르 뷔페 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선을 넘는, 선을 향한 충동 미술사를 통틀어도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처럼 독보적인 시그니처를 보유하고 있는 화가는 드물다. 시커멓고 곧은 선이 강박적일만큼 수직으로 뻗어 있는 화면을 보자면, 뷔페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 위하여 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을 긋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서 대상을 잠시 빌리는 것 같다. 뷔페는 자기만의 선을 일관되게 깎고 연마한 끝에 누가 보더라도 그... Continue Reading →

르네 마그리트: THE REVEALING IMAGE 展 (용인 뮤지엄그라운드)

초현실주의자, 사진가,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초콜릿, 와플, 밀맥주를 뛰어넘는 벨기에의 대표상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친숙한 매개체들로 고도의 지적 유희를 유발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뜨내기들에서부터 저명한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다.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생각할만한 심오한 요소들을 고루 갖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마그리트는 그 어려운 과제에 성공한... Continue Reading →

제주작가 조명전 「99+1」 展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반쪽짜리 제주정신 제주도를 찾으면 일정이 촉박하더라도 제주도립미술관을 꼭 들른다. 안도 다다오 풍의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을 즐기는 맛도 있지만 제주도 미술담론의 현 주소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가장 크고, 예산이 많고, 권위적인 하나의 제도권 기관이 그 지역의 미술담론을 대표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관 10주년을 맞는 제주도립미술관은 도내 미술담론에서 그 상징성이 크다. 뜨내기... Continue Reading →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展 (a.k.a. 야수파 걸작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색채와 사족의 향연 전시 제목이 이렇게 터무니 없이 긴 것이 이미 사족의 향연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미술관에서 작품 보다 텍스트에 압도 당하는 경험이 한두번은 아닌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작품이 하나 이상 걸린 화가가 줄잡아 20명은 넘을 터인데,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깨알 같은 신상정보가 붙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신상정보의... Continue Reading →

데이비드 호크니 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잠시 잊고 있었던 빛 부제가 붙지 않은 전시를 실로 오랜만에 본다. 어지간한 거장의 전시라면 비장한 부제가 이름 뒤에 하나쯤 따라오면서 그 작가의 미술사적 공로를 압축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정도 되면, 그러니까 생존 화가 최고 낙찰가 기록(9천 만 달러)을 보유한 81세의 대가쯤 되면 그런 부제조차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나 보다. 그래서 그냥 <데이비드 호크니 展>이다.... Continue Reading →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展(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 전시는 덴마크 출신의 아스거 욘(Asger Jorn)을 단순히 표현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사회참여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려는 기획인데, 나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으므로 그 재조명이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가 없다. 다만 코브라(CoBrA)라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던 것,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주도했던 것, 북유럽 전통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했던 것 등을 가지고 사회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결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느껴졌다. 쿠르베로부터 이어져온 사회참여적인, 소위...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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