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경, 「매끄럽지 않은」 展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촉각적인 관점에서 그 여정은 매끄러움이 거침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살결은 향긋하고 촉촉하고 보드랍다. 반면 노인의 살결은 비릿하고 뻣뻣하고 거칠다. 이처럼 거친 속성은 시간의 흐름을 대변하고, 결국에는 죽음과 맞닿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영생은 필연적 갈망이다. 거칠고 주름진 것에서 벗어나 매끄럽고 촉촉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은 그야말로... Continue Reading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展: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존경을 표하는 두 개의 행렬 서울에 살 때야 제아무리 인기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라도 평일에 휴가 내고 보면 되니 딱히 부담이 없었다. 지방에 오고 나니 서울에 모든 문화 시설이 몰려 있다는 사실이 제대로 실감이 난다. 이 전시도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예매 사이트에 내가 서울로 올라가는 날 운 좋게도 딱 한 자리 공석이 있어서 냉큼 예약했다.... Continue Reading →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展 (국립중앙박물관)

보통사람을 위한 목 좋은 귀퉁이 하나 정도는 이미지를 남기는 기술이 발달하고 대중화될수록 개별 이미지의 가치는 계속 하락해 왔다. 종교개혁 이전에 템페라나 유화로 어떤 인물을 그렸다면, 그 대상은 대체로 고전 속 영웅이거나 신적 존재였다. 하나의 작품을 그리는데 엄청난 노동력과 재능, 그리고 재료비가 투입되던 시기였다. 그 비용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만든다면, ‘적절한’ 대상을 다뤄야 했다. 신의 시대가 끝난... Continue Reading →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조언: 시간이 별로 없으면 전시 속 전시만 보세요. 두 개의 팔과 다리와 눈과 콧구멍과 젖꼭지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이항(二項)에 너무도 익숙한 탓에 그 밖의 가능성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한다. 하지만 젖꼭지와 달리 인간이 구축한 문화적 구조에는 경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경계는 누군가에게 삶의 무대가 된다. 경계나 변두리에 내몰린 삶의 무대를 복원하기 위한 대대적인 투쟁이 20세기 전반에... Continue Reading →

이우환과 그 친구들 II – 빌 비올라, 조우 展 (부산시립미술관)

Bill Viola, ENCOUNTER 처음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에서 영상 보기를 워낙 싫어하는 탓에, 동반자에게는 찢어져서 서로 다른 전시를 보고 만나면 안 되냐고 몽니를 부렸으나, 이내 잠자코 따라갔다. 전시는 초기작과 근작으로 나뉘어 ‘이우환 공간’과 본관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우리는 최근작이 중심인 본관에서 출발하였다. <아니마_Anima(2000)>, <인사_The Greeting(1995)>, <관찰_Observance(2002)> 등 세 작품으로 구성된 공간이 출발점이었는데, 우리가 앞으로 이 전시에서 마주하게... Continue Reading →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지난 여름에 「그리스 보물전」을 보고 반년 만에 다시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초입부터 액자 세 개를 안아 들고, 그것으로 집을 예쁘게 꾸밀 기대에 부푼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얼핏 봐도 이번 인상주의 전시를 보고 나서며 구입한 기념품이다. 전시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액자 중 하나는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꽃병의 장미(Roses in a Vase, ca.1880)>였다. 그 광경을 보자니... Continue Reading →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 「절필시대: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억해야 할 이름들, 특히 정종여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붓을 놓아야만 했거나 잊혀야만 했던 여섯 명의 화가들을 조명한 전시다. 정찬영은 화가로서의 삶과 가정주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붓을 놓았다. 백윤문은 전성기에 건강을 잃고 화단을 떠나야 했다. 정종여는 북한을 선택했고, 거기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우리 미술사에서 지워졌었다. 임군홍에 대해서는 월북인지 납북인지 합의를 이루지... Continue Reading →

가짜 수장고를 거닐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아스팔트마저 녹아 버릴 것 같은 날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찾았다. 미술관 자체는 지난해 12월에 개관했지만 주변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번듯한 주차장이 없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 자그마한 자투리 공간에 마련한 임시주차장을 이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주차선 같은 것 없이 관람객들의 암묵적 룰로 운영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건설자재 무더기를 위태롭게 지나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지게차와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들이 육중한 재료들을 운반했고,... Continue Reading →

그리스 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오늘날 우리가 고대 그리스라고 일컫는 대상은 하나의 단일문화권이 아니라 에게해를 연하여 살아온 이질적인 지역과 민족을 아우른 것이다. 트로이, 미케네, 크레타로 대표되는 이들 지역에서는 기원전 3천년 경부터 각종 건축물과 조각들로 그 뚜렷한 흔적을 남겨왔다. 그 후손들은 로마 제국에게 패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수많은 전쟁과 이합집산을 거쳐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를 일궜다. 이번 전시는 야심차게도 그 최초의 흔적들에서부터 알렌산드로스... Continue Reading →

베르나르 뷔페 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선을 넘는, 선을 향한 충동 미술사를 통틀어도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처럼 독보적인 시그니처를 보유하고 있는 화가는 드물다. 시커멓고 곧은 선이 강박적일만큼 수직으로 뻗어 있는 화면을 보자면, 뷔페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 위하여 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을 긋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서 대상을 잠시 빌리는 것 같다. 뷔페는 자기만의 선을 일관되게 깎고 연마한 끝에 누가 보더라도 그...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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