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고독하다. 아니 '현대' 이전부터 인간은 원래 고독했다. 그 고독은 생존에 불비한 태생적 요건들을 극복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무리지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채득한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무리지을수록 고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허다한 무리 속에서 나 자신이 진정 독립된 현존재(Dasein)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타자와 관계 속에서 순간의 위로와 공감은 얻을 수 있지만, 결국 생의 궤적 전반에... Continue Reading →
길다 윌리엄스의 「현대미술 글쓰기: 아트라이팅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2016)」
이토록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긴 책은 처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위트 넘치는 진솔한 조언들로 가득찬 이 글쓰기 안내서는 미술에 대하여 말하거나 글로 남기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미덕으로 가득하다. 예술적 경험들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나로 하여금 이 보잘 것 없는 공간을 개설하게 하였고, 없는 살림에 매년 4만원 이상을 결제하게 하였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Continue Reading →
미술사/사상사의 칼날 같은 명언들
여러 책과 전시장에서 숱한 명언들을 보아 왔다. 명언은 단 한 문장으로 폐부에 파고드는 진리를 배달하는 것이다. 지식의 망망대해에서 안전하게 진리의 등대를 찾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한 줄기 빛이다. 그렇게 심금을 울렸던 명언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출처와 시기까지 완벽하게 정리한다면, 나아가 대가들의 1차 자료에서 직접 발췌한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내게 그 정도의 시간과 열정은 없는 것 같다. 어떤... Continue Reading →
제주의 초가을 정경
때늦은 휴가를 내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야생동물 #풍경 #자연 이었으나,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해야 할 것 같다. 야생동물을 보기에는 탐험심과 사전준비가 미흡했고, 풍경을 담기에는 안목이 부족했고, 자연에 오래 거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인상들을 담기 위해 노력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껏 거닐었기에 후회 없는 여행이었다. 제주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는 직박구리였다. 산 속에서... Continue Reading →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NUDE(소마미술관)
올 상반기 최고 기대 전시가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이었다면, 하반기 최고 기대 전시는 '테이트 명작전'이었다. 비록 테이트 미술관의 무수히 많은 근현대 명작 중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겠지만,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거장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주제가 "누드"라니. "누드"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치이다. 누드, 아니 누군가의 알몸을 보고 싶은... Continue Reading →
로런스 블록의 「빛 혹은 그림자: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2017)」
S유통사의 CF와 <빈방의 빛>으로 촉발된 에드워드 호퍼 열풍이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소설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마치 연극처럼 어떤 이야기들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전에도 언급한 바 있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영상으로 풀어낸 것이라면,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는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로런스 블록(Lawrence... Continue Reading →
뮤지컬 서편제(광림 BBCH홀)
공공연한 문화사대주의자에 가까운 내가 제 값을 지불하고 창작뮤지컬을 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이 작품은 꼭 봐야 했다. 주요 넘버인 <살다보면>을 처연하게 부르던 한 여인과의 추억 때문이다. 그녀가 부르던 그 노래는 그야말로 한을 담뿍 담고 있어서 마냥 해맑게만 보였던 그녀의 이면을 보여주었다. 작품을 보기 전에 이미 이 노래는 내게 매우 의미있는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공연장은 얼핏 치킨... Continue Reading →
제주비엔날레 2017: 투어리즘(中 제주도립미술관)
애초에 산과 들을 누비며 제주의 자연을 폐부 깊숙히 이식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운송수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나의 육신에 이상 신호가 들려온 것은 여행 중반부가 지나던 시점에서부터였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제주도립미술관을 찾았다. 원래 제주도립미술관의 모던하면서 도도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 섬에 올 때마다 잠깐씩 들르긴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첫 번째 제주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는... Continue Reading →
연극 오펀스(Orphans,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고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이에게 부모가 없다는 것은 철저한 고독, 굶주림, 역경을 의미하며, 심지어는 죽음의 그림자와도 늘 손을 잡고 다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어난지 3시간만에 뛰어다니는 노루와는 달리, 영장류로서의 인간은 가련할 정도로 나약한 신체를 지닌채 세상과 조우하며,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의 발달에 있어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고아의 삶이란 제3자들이 올리버 트위스트 속의... Continue Reading →
자연의 색감
어떤 최고급 안료를 사용하더라도 자연의 풍요로운 색감을 그대로 모사할 수는 없다. 1709 베어트리파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