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닐의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팅의 문화, 문화의 큐레이팅」

Paul O’Neil, The Culture of Curating and the Curating of Culture(s)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의 한도를 다시 주목하고 확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누가 보는지,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새로운 종류의 상대주의적/수사적 메타 서사 생산을 통해 무엇이 정당화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65p 미술관사, 전시사 분야는 일부 대학 교재를 제외하고는 번역 출판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편인데,... Continue Reading →

우베 레비츠키의 「모두를 위한 예술?」

: 공공미술, 참여와 개입, 그리고 새로운 도시성 사이에서 흔들리다 Uwe Lewizky, Kunst für Alle? "모두를 위한 문화란 모토는 오늘날 대체로 오직 자격 있는 부분공중만이 심미적이고 문화적인 부가가치를 지닌 삶을 누리기 위해 특출나고 배타적인 여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의미한다."221p 작년 여름, 옥수역 고가 인근에서 공공예술가 젤리장이 진행하는 <고가 아래 모든 목소리(19.6.15.)>라는 워크숍에 참여했던 적이... Continue Reading →

휘트니미술관의 「20세기 미국 미술: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Lisa Phillips et al.(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The American Century: Art and Culture, 1950-2000 휘트니미술관 테라스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인증샷을 찍고, 1층 레스토랑 "Untitled" 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호퍼(Edward Hopper) 기념품을 잔뜩 샀던 것이 불과 10개월 전인데, 마치 10년은 지난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모두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이... Continue Reading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터 되기」

Hans Ulrich Obrist, Ways of Curating "전시라는 개념은 이곳이 우리가 서로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며 배열, 연대, 접속, 말없는 제스처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러한 미장센을 통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41p 전설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자유분방한 형식으로 써내려 간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길(ways)'이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걸어온 길,... Continue Reading →

미치오 카쿠의 「인류의 미래: 화성 개척, 성간여행, 불멸, 지구를 넘어선 인간에 대하여」

Michio Kaku, The Future of Humanity: Terraforming Mars, Interstellar Travel, Immortality, and Our Destiny Beyond Earth 죽어야 할 때가 오면 (제발 좀) 죽자. 인구는 증가하고, 환경은 파괴되고, 에너지와 식량은 고갈되고 있다. 결국 인류는 멸망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설령 우리가 인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환경을 되살리고, 혁신적인 선순환 기술을 개발하여 에너지와 식량 문제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범우주적... Continue Reading →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

Didier Eribon, Michel Foucault, 1926-1984 미셸 푸코의 철학과 실천: 아버지의 이름을 버리고 푸코(Michel Foucault)의 신화는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온 아버지의 이름 ‘폴’을 스스로 거부한대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또 하나의 ‘폴 푸코’가 되어야 했던 그는 자신이 증오했던 아버지의 이름인 ‘폴’을 버리고 어머니가 붙여 준 두 번째 이름 ‘미셸’을 선택했다. 청소년기에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정한 이... Continue Reading →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Louisa May Alcott, Little Women (1868, 1869) 상상의 부재에 던지는 교훈 지난겨울에 많은 사람이 그랬듯, 나도 영화판 「작은 아씨들」을 보고 나서 뒤늦게 소설을 읽었다. 작가가 명시하고 있듯, 소녀들에 바치는 책이기는 하지만, 나는 소년일 때조차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해적판 짜깁기 판본을 쉽게 접할 수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젠더 기대에 편승한 탓인지 눈길이 가지는 않았다.... Continue Reading →

마르틴 스코프 & 오신 바타니안 편저, 「신경미학」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의 대혁명이 우리 눈앞에 곧 펼쳐지기라도 할 것처럼 온 세상이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4년이 흐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또한 거품이었음이 자명해 보인다. 시리, 빅스비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비서라는 녀석들은 여전히 문맥을 짚어내지 못한 채 검색 대행사무소 노릇만 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하여 잠식된 일자리도 딱히 꼽기 힘들다. 패스트푸드점의 알바 자리를 날려버린 키오스크가 인공지능이라고... Continue Reading →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지난 여름에 「그리스 보물전」을 보고 반년 만에 다시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초입부터 액자 세 개를 안아 들고, 그것으로 집을 예쁘게 꾸밀 기대에 부푼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얼핏 봐도 이번 인상주의 전시를 보고 나서며 구입한 기념품이다. 전시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액자 중 하나는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꽃병의 장미(Roses in a Vase, ca.1880)>였다. 그 광경을 보자니... Continue Reading →

박계리의 「북한미술과 분단미술: 작품으로 본 북한과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북한의 미술, 둘째는 북한 혹은 분단에 대한 미술이다. 현재로서는 외부자가 북한의 작품이나 문헌에 접근하기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이므로 북한미술에 대한 저술에서도 학술적 깊이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저자는 나름대로 북한에 가보기도 하고, 관련 문헌도 열심히 탐독한 듯하나, 체계적으로 그것을 정리하여 엄정한 학술적 결론을 도출하려는 시도는...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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