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잠시 잊고 있었던 빛 부제가 붙지 않은 전시를 실로 오랜만에 본다. 어지간한 거장의 전시라면 비장한 부제가 이름 뒤에 하나쯤 따라오면서 그 작가의 미술사적 공로를 압축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정도 되면, 그러니까 생존 화가 최고 낙찰가 기록(9천 만 달러)을 보유한 81세의 대가쯤 되면 그런 부제조차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나 보다. 그래서 그냥 <데이비드 호크니 展>이다.... Continue Reading →

미셸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이번 강의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후 3년이 지나 이루어졌다. 나는 푸코의 관심사 중에서도 특히 통치술이 인간의 신체에 작용하고 그것을 규율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낀다. 이번 강의의 제목은 여지없이 그 관심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 단계(안전, 영토, 인구; 1977~78)를 건너뛰고 곧장 이리로 달려 왔다. 하지만 내 기대는 무너졌다. 역시 천재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이번... Continue Reading →

The Wall and Other Stories 展 (평창동 토탈미술관)

동시대 인류가 마주한 여러 문제들을 상기하는 영상 작업들이 폭넓게 전시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미술관에서 영상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나의 견해에 따라 열심히 보지 않았다. 언급할만한 가치를 느낀 작품은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Parallel IV(2014)>인데,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비디오 게임 GTA(Grand Theft Auto)의 몇몇 구동 모습을 그저 녹화하고 편집했을 뿐이다. 얼핏 보면 게임 타이틀 매장 앞에서 무의미하게... Continue Reading →

김병기 개인전: 「여기, 지금」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왠지 이 전시에 대해서 무엇인가 쓰려거든 제대로 ‘각’을 잡아야만 할 것 같다. 현역 최고령 화가의 개인전이라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으려고 해도 뿌리 깊은 장유유서의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란 내가 그 무게감을 수이 떨쳐 버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103세가 되면 어떤 인물이 될지 생각해 본다. 몸 구석구석이 고장 났다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감흥이 없을... Continue Reading →

불온한 데이터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날 세 개의 전시를 보았고, 이 전시가 세 번째 였기 때문에 대충 훑기만 했다. 물론 시간과 체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는 미술관에서 동영상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 전시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까닭에 역시 동영상이 주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들을 갈지자로 회피했다. 하지만 당일 서울관에서 가장 붐비는, 특히나 어린 친구들이... Continue Reading →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展(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 전시는 덴마크 출신의 아스거 욘(Asger Jorn)을 단순히 표현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사회참여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려는 기획인데, 나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으므로 그 재조명이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가 없다. 다만 코브라(CoBrA)라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던 것,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주도했던 것, 북유럽 전통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했던 것 등을 가지고 사회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결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느껴졌다. 쿠르베로부터 이어져온 사회참여적인, 소위... Continue Reading →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 천재의 의무」

Rey Monk, Ludwig Wittgenstein: Duty of Genius 철학자의 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흡입력을 가졌던 이유는 단순히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잘 써놓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 구석이 많다. 그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묘한 끌림을 느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들은 마치... Continue Reading →

변월룡: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展 (삼청동 학고재 전관)

좌대를 넘어서, 변월룡이라는 이름이 오늘날 우리 미술사에서 점유하는 무게감은 크게 두 관점을 포섭하는데, 하나는 한반도 디아스포라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이다. 물론 이 두 가지 관점은 우리 민족이 겪은 근현대사의 아픔이라는 레토릭 안에서 상호 교차한다. 변월룡은 19세기 조선 왕조의 붕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디아스포라의 후손이었다. 그는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Continue Reading →

오브제로서 인간

“너무 냉랭한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오브제가 눈앞에 보였다. 시간이 정지됐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열광시키는 오브제를 예술로 전화(轉化)한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경험한다.”에드워드 호퍼(1928) 2019년의 미국도 모르는 내가 1926년의 미국에 대해서 알 턱은 없다. 하지만 그때, 거기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는 사실은 안다. 아마도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외로운 그 남자의 눈빛은 경계로 가득하지만 우리를...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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