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Hemming, Tree of Rivers: The Story of the Amazon 이제부터라도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책을 꺼내 든 순간부터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힌 채 읽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예상은 옳았다. 한갓 돈과 명예를 좇아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기어들어 와 평온하게 살던 사람들을 짓밟고,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는 엄청난 생물자원을 고갈시킨 그 천인공노할 범죄 앞에 분노치 않기란 불가능하다.... Continue Reading →
프랑수아 줄리앙의 「불가능한 누드」
François Jullien, Le Nu Impossible '가능-불가능'의 이분법을 넘어, 누드는 서양미술사의 가장 독창적 발명품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누드는 회화 및 조각 표현의 본령에 있었고, 취미 판단의 가장 본원적인 준거를 형성했다. 누드를 잘 표현하는 것이 인간을 잘 아는 것이었고, 인간을 잘 안다는 것은 다시 그 인간의 창조자이자 이데아인 신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누드는 인간을... Continue Reading →
루이스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展 (호암미술관)
에버랜드를 지나 굽이굽이 고갯길을 통과하면 호젓한 삼만육천지를 내려다보는 기와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 미술관 앞마당에 서서 빙 둘러보면 할미산 능선을 병풍으로 두른 풍경이 천연 요새나 다름없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 서울이 함락된다면 여기를 1차 저지선으로 구축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씨 가문이 왜 여기를 명당으로 콕 찍어 애지중지했는지 절로 이해가 간다. 전시의 장소성이 작품의... Continue Reading →
비앙카 보스커의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
Bianca Bosker, Get the Picture 우리에게는 더 많은 체험형 특파원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술계는 지나치게 많은 말에 포위되어 있다. 하나의 작품에도 캡션, 설명문, 보도자료, 작가노트, 비평문, 오디오가이드 따위의 온갖 글이 너절하게 들러붙어 있다. 진공 상태에서 작품과 내가 온전히 교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언어는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온다. 미술이 미메시스로부터 이탈하면서부터, 그리고 형태가 아닌 개념을 본령이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Continue Reading →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
François Dosse, Histoire du structuralisme 역자의 죽음: 중도 하차할 용기 지금까지 이 홈페이지에 올린 서평 중 어떤 책을 다 읽지도 않은 채 쓴 글은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중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자랑스럽게 지켰던 셈인데, 이번에는 그 원칙을 포기한다. 총 네 권의 시리즈 중 3권 중반부에서 하차한다(참고: 원서는 2권짜리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변명처럼 들린대도... Continue Reading →
니샤 맥 스위니의 「만들어진 서양: 서양이란 이름에 숨겨진 진짜 역사」
Naoíse Mac Sweeney, THE WEST "역사 이론으로서 서양 문명의 기원은 탐험, 계몽, 제국을 연결하는 데 있다."247p 서양을 부술 연장통 이제는 ‘오래도록 견고한 원칙으로 여겼던 것들이 알고 보니 허상이고 신화에 불과했더라’, 라는 진술조차 진부해졌다. 우리는 그동안 포스트모던의 광풍을 거치며 의심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허울에 대해 의심의 화살을 이미 겨눠봤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국가를 ‘상상된... Continue Reading →
휴 에이킨의 「피카소의 전쟁: 현대미술은 어떻게 미국에 진출했는가」
Picasso’s War: How Modern Art Came to America 제국의 성립 과정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다. 현대미술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 수용되었는가를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대미술이란 프랑스를 중심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발흥했던 전위적 아방가르드들의 예술 세계를 일컫는다. 즉, 인상주의로부터 입체파와 야수파를 거쳐 표현주의와 추상으로 이어지는 모더니즘의 계보다. 이것이 미국 사회에서... Continue Reading →
서장원의 「토텐탄츠와 바도모리: 중세 말 죽음의 춤 원형을 찾아서」
죽음과 동행하는 법 서구 시각 예술에서 해골 도상은 나름의 두터운 문화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가 바니타스(Vanitas) 정물이다. 더없이 안락하고, 아름답고, 풍요롭고, 윤택한 곳에 해골이 난데없이 등장해 떡 하니 자리를 잡는다. 해골과의 불편한 동거는 음산하지만 한편으로 해학적이다.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순간에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는 생의 헛됨을 강조하며 삶을 되돌아보라... Continue Reading →
아서 I. 밀러의 「충돌하는 세계: 과학과 예술의 충돌이 빚어낸 전혀 새로운 현대예술사」
Arthur I. Miller, Colliding Worlds 두 문화를 만나게 하려면 예술과 과학은 본디 한 몸이었다. 근대에 이르러 개별적 학문 분야의 전문성이 심화하면서 두 문화는 제도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했고, 분화된 체계 안에서 각기 기득권적 구조가 견고해지면서 오늘날에는 그것이 한 몸이었다는 사실조차 잊혔다. 과학은 예술이 실용적 가치가 없는 신선놀음이라 생각하고, 예술은 과학을 감성이 메마른 숫자놀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술사의 흐름을... Continue Reading →
김숨의 「떠도는 땅」
지금으로부터 고작 100여 년 전쯤에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을까? 황폐화된 조국에서는 도무지 살아갈 길이 없어서, 혹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강제로 붙들려 극한의 추위가 휘몰아치는 이역만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거기서도 가장 혹독하고 버려진 땅을 불하받아 죽을 둥 살 둥 아득바득 밭을 갈고 가축을 쳤다. 숱한 희생 끝에 그나마 살아갈 만한 땅이 되었다 싶으면...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