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도의 변주 동시대 미술을 폭넓게 아우르는 국제 행사 유형의 전시는 아주 큰 개념적 우산을 쓸 수밖에 없다. 동시대 지구촌 전역에서 발화되는 목소리를 담을 만한 큰 그릇이 필요다. 이번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호남권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인 ‘판소리’를 열쇳말 삼아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소리’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배치했다. 전시는 크게 세 장으로 구성되었다.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에서는 현대... Continue Reading →
데이비드 C. 린드버그의 「서양과학의 기원들」
: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David Charles Lindberg, The Beginning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 Context, 600 BC to AD 1450 “역사가의 본업은 과거를 이해하는 일이지, 과거에 등급을 매기는 일은 아니다(571p).” 그 시대의 눈으로, 나는 중세 미술을 이야기할 때 대성당에 걸린 제단화로 시작하곤 한다.... Continue Reading →
최경아 개인전, 「이야기가 그린 초상」 展 (오분의일, 광명)
: 2024 오분의일공모선정작가 투명한 사람들의 투명한 이야기들 KTX 광명역을 나서면 맞은편에 AK플라자가 보이고, 그 주변에 어반브릭스라는 상가가 둘러쳐져 있다. 외관만 봐서는 역세권 주상복합아파트 상권의 먹자골목을 끼고 있는 그 건물 4층에 갤러리가 있으리라고는 좀처럼 짐작되지 않았다. 거기 광명 기반의 예술프로젝트 그룹인 ‘예술협동조합 이루’가 운영하는 문화예술 공간이 있다. 현재 최경아 작가의 「이야기가 그린 초상」 展을 포함해 두... Continue Reading →
장-마리 셰퍼의 「미학에 고하는 작별」
Adieu à l'esthétique 신비를 걷어낸 자리에서, 특정한 대상에서 미를 느끼는 메커니즘은 우리 뇌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사회문화적 과정을 통해 어떤 대상이 아름답거나 추하다는 관념을 학습하고, 그런 공통의 관념을 부지불식간에 내재화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적 대상에 대한 주의와 반응은 뇌의 지시를 따른다. 그런데 누군가의 뇌에서 아름다움과 추의 정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외부자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고,... Continue Reading →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샤오루가 쏘아올린 17발의 탄환 1989년 2월 5일, 중국국립미술관 앞 광장은 그간 중국 전역에서 활동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보려는 관람객의 물결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중국/아방가르드 展(China/Avant-Garde Exhibition)》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전위적 예술가 186명과 그들의 작품 300여 점이 유례없는 규모로 모였다. 개혁개방 이후 정치적 자유를 향한 관심과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있었고, 관람객들은 새로운 전위적 예술이... Continue Reading →
백름의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그간 미술사에서 간과되었던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의 작품활동과 생활상을 추적한 연구서다. 재일조선인 3세인 연구자가 자기 박사학위 논문에 살을 붙여가며 대중서로 펴냈다. 연구자들이란 자기 정체성이 투영된 연구에 가장 몰입하는 법이다. 학술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거의 없고, 자료도 부족하고, 관련자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는 시점에 저자는 반드시 그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이 작업을 완수했다. 이미 일본이나 한국 미술계에 이름이... Continue Reading →
이영욱 외 편저,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
내 서고에 애지중지 아끼는 두 권의 선집이 있다. 하나는 도널드 프레지오시(Donald Preziosi)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이고, 다른 하나는 로버트 S. 넬슨(Robert S. Nelson)과 리처드 시프(Richard Shiff)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이다. 둘 다 미진사에서 번역한 작품이다. 미술사와 비평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개념, 이론, 사례들을 망라한 선집이라 한창 학구열이 불탔을 시기에 시야를 넓히는 데... Continue Reading →
여름 열림 Open Studio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과 오픈스튜디오)
투사와 기념비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짧은 식견에 비춰볼 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의 전반적 시설이나 작품 수준, 행사의 준비도는 꽤 훌륭했다. 단순히 작업공간만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물 구석구석에 여러 전시 공간을 마련해 두었는데, 그 안에 모인 작품들의 결이 은근히 통하는 듯, 어긋나는 듯하여 왜 이 구성으로 모아 두었을지 유추하는 재미가... Continue Reading →
김경섭의 「미친놈 예술가 사기꾼」
작품으로 말할 방법은 분명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예술을 완전히 뒤집는다!”라는 도발적인 캠페인 문구를 달고 있는데, 내 경우 사실 딱히 뒤집히는 것이 없었다. 저자가 새로 찾아낸 정보란 거의 없고, 그나마 얄팍한 정보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고,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골자도 사실 내 평소 지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예술에 관한 통념이 뒤집힌... Continue Reading →
조새미의 「뮤지엄 게이트」
감상적 여행기의 한계 저자가 나름 전공한 연구자이길래 박물관학이나 큐레토리얼에 관한 연구서인 줄 알고 무턱대고 집어 든 내 잘못이다. 연구서가 아닌 여행기다. 저자 본인이 체류했던 미국, 영국, 일본 등지의 뮤지엄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가득한 책이다. 감상적 여행기라는 정체성은 각 챕터의 서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뮤지엄의 대표작 한 점이 저자에게 친군하게 말을 거는 식으로 시작하는데,...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