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말할 방법은 분명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예술을 완전히 뒤집는다!”라는 도발적인 캠페인 문구를 달고 있는데, 내 경우 사실 딱히 뒤집히는 것이 없었다. 저자가 새로 찾아낸 정보란 거의 없고, 그나마 얄팍한 정보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고,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골자도 사실 내 평소 지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예술에 관한 통념이 뒤집힌... Continue Reading →
조새미의 「뮤지엄 게이트」
감상적 여행기의 한계 저자가 나름 전공한 연구자이길래 박물관학이나 큐레토리얼에 관한 연구서인 줄 알고 무턱대고 집어 든 내 잘못이다. 연구서가 아닌 여행기다. 저자 본인이 체류했던 미국, 영국, 일본 등지의 뮤지엄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가득한 책이다. 감상적 여행기라는 정체성은 각 챕터의 서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뮤지엄의 대표작 한 점이 저자에게 친군하게 말을 거는 식으로 시작하는데,... Continue Reading →
이선복의 「처음 읽는 한국고고학」
지식의 고고학, 그리고 진짜 고고학 제목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의도에 충실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고고학책이다. 오랜만에 선사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적 이미지들을 쭉 훑어보자니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오래된 도판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들춰봤던 과목들이 미술, 사회과 부도, 그리고 역사(혹은 국사)였다. 도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교과서들이다. 아날로그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 서서히 디지털에... Continue Reading →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
진실과 껍데기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진실과 껍데기 사이의 간격이 있다. 인간의 마음속 최종적 심급에서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거지를 좌우하는 진실이라는 국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람에 따라 두터운 껍데기에 꽁꽁 싸여 철저한 보호 대상으로 관리되고 있을 수도 있고, 아주 투명한 막으로만 둘러쳐져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존재감을 언뜻언뜻 내비칠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진실과 껍데기의 간격은 가까울수록 좋다.... Continue Reading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
Georges Didi-Huberman, Peuples exposés, peuples figurants 이미지와 사유는 민중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문법적으로 ‘민중들’이라는 말은 없다. 민중, 대중, 국민 등 집합명사는 이미 집합을 가리키므로 복수형으로 쓸 수 없다. 저자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나 역자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이 책은 묵직하게 끝까지 ‘민중들’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인공으로 지목한 민중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적 거대서사의 주인공이 아닌, 시각문화의... Continue Reading →
핼 포스터의 「소극 다음은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
Hal Foster, What Comes After Farce?: Art and Criticism at a Time of Debacle 백전노장의 충언에 귀를 기울이며, 고백하자면 나는 부끄럽게도 ‘소극’이라는 말도, ‘결괴’라는 말도 처음 들어 봤다. 그러니까 책 제목에서 핵심이 되는 두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른 채 저자의 이름만 보고 이 책을 집어 든 셈이다. 물론 그 선택 자체는 옳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포스터의... Continue Reading →
잭 하트넬의 「중세 시대의 몸: 몸을 통해 탐색한 중세의 삶과 죽음, 예술」
Jack Hartnell, Medieval Bodies 여느 동물처럼 인간도 몸에 의존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사유한다. 한때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너무 커서 그와 대비되는 측면인 물리적 실체로서 육체의 중요성은 간과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유물론자든 관념론자든 모두가 안다. 우리의 이성이나 심지어 영성까지도 몸의 일부라는 것을. 몸 바깥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듯, 우리 몸에 대한 인식도... Continue Reading →
조너선 크레리의 「지각의 정지: 주의·스펙터클·근대문화」
Jonathan Crary, Suspensions of Perception: Attention, Spectacle, and Modern Culture “19세기 말 이후 제도적 권력에서 중요한 문제는 생산적이면서 관리와 예측이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통합될 수 있으며 적응 가능한 주체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각이 기능하는 것뿐이다.” 17p “주의는 다양한 사회적-기계적 기계들에 부합되는 주체를 생산하는 데 줄곧 필수적 역할을 해왔다.” 137p 억측의 향연, 억측의 맥락 ‘우리 시대의 고전 27’... Continue Reading →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알아야 바꾸지 내가 감히 이 작품에 한 자라도 덧붙일 수나 있을까. 덧붙인다고 한들 뭐라도 달라질까. 전 세계 인문사회학계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자에 관해, 심지어 그 저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에 이제와서 뭐라도... Continue Reading →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Frans De Waal(1982), 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 동물원은 야생과 다르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과학적 지식은 끊임없이 진보한다. 캄캄했던 어둠은 언젠가 걷힌다. 어떤 대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와 많은 것을 알고 난 후 그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동물이 감정을 느끼는지, 복잡한...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