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

Jean-Baptiste Andrea, Veiller sur elle ◐ 스포일러 다량 함유 ◑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거나, 더 가치 있게 죽거나 미술사에서 회자되는 전설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처럼 위대한 조각가들의 창작이란 돌을 깎아내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형상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조각가는 바로 그 형상을 발견해 끄집어낼 뿐이다. 이러한 진술은 위대한 조각가의 전기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일종의 전설이자 신화다. 여기서... Continue Reading →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村上春樹 Haruki Murakami, 1Q84 당신은 이런 사랑을 믿습니까? 이 소설에는 초자연적 능력을 갖추고 태곳적부터 인류에 적잖은 영향을 미쳐온 리틀 피플이라는 군집도 나오고, 그들이 만드는 공기번데기와 복제인간도 등장하며,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이 물리법칙을 비웃듯 지구 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두둥실 떠 있는 장면도 담겨 있지만, 작품의 판타지적 측면은 그런 자잘한 설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 Continue Reading →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

진실과 껍데기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진실과 껍데기 사이의 간격이 있다. 인간의 마음속 최종적 심급에서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거지를 좌우하는 진실이라는 국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람에 따라 두터운 껍데기에 꽁꽁 싸여 철저한 보호 대상으로 관리되고 있을 수도 있고, 아주 투명한 막으로만 둘러쳐져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존재감을 언뜻언뜻 내비칠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진실과 껍데기의 간격은 가까울수록 좋다.... Continue Reading →

스탕달의 「파르므의 수도원」

Marie-Henri Beyle (Stendhal), La Chartreuse de Parme 수도원에 갇힌 가능성 헌책방에서 작은 양장 소설 1, 2부가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저절로 손이 갔다. 「파르므의 수도원」이라길래 비밀스러운 공간을 둘러싼 사랑과 음모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 수도원은 작품 내내 등장하지도 않는다. 수도원은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가 질곡의 세월을 모두 보내고 스스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곳이다.... Continue Reading →

「롤리타」로 돌아보는 나, 그리고 “우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Vladimir Nabokov(1955), Lolita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 450p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500p) 1. 들어가며 어떤 텍스트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명사가 생성되었다면, 그 텍스트는... Continue Reading →

제임스 엘로이의 「아메리칸 타블로이드」

James Ellroy, AMERICAN TABLOID 영화 「LA컨피덴셜(1997)」은 킴 베이싱어(Kim Basinger)가 육감적으로 전면에 등장한 포스터 이미지로 소년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지난해 여름에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IPTV의 하이퍼링크를 유랑하다가 그 포스터를 우연히 만나 반가운 마음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감, 배신과 반목과 화해가 뒤엉킨 갈등 구조, 담담하고 묵직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원작자에 대해 찾아보다가 이 소설에... Continue Reading →

손원평 소설집, 「타인의 집」

미화된 이야기가 없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 망각과 미화 손원평의 첫 번째 소설집에는 온통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뿐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은 나의 아픔을 이해해 주지 못하거나(「4월의 눈」), 애초부터 평생 나를 무시만 해온 인간이거나(「zip」), 아예 상상을 뛰어넘는 괴물이다(「괴물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더라도 타인을 향한 순수한 선의는 천추의 한으로 돌아오고(「상자 속의 남자」), 세대와 민족 간 혐오는 극에 달해 일대... Continue Reading →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유미주의자의 승리 살면서 한때나마 예술가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약 사회적 조건이나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무엇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면, 대다수는 락앤롤 스타가 될 것이고, 그들을 위해 음반을 사주기만 하는 사람은 소수에 그칠 것이다. 정말 고리타분해 보이는 아무개라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한 조각쯤은 마음속에 품고 산다. 재능이 남들에 못미처서, 먹고 살아야... Continue Reading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Emily Brontë, Wuthering Heights 집요함과 복수에 관하여, 여러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꼭 읽어야 할 고전’의 위상을 부여받고 있는 이 작품에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되는 것일까? 사실 이 작품에서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왕 거두었다면, 그 후에 어떻게 보살펴야... Continue Reading →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The Testaments)」

Margaret Atwood, The Testaments: The Sequel to the Handmaid’s Tale 좋은 문학 작품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백 개의 질문을 남긴다. 이 기준에 입각하면 「시녀 이야기」는 더없이 탁월한 작품이었다. 「시녀 이야기」는 인류가 궁지에 몰린 순간에 어떻게 악마적 본능이 분출될 수 있는지, 극단주의적인 종교적 맹신이 교활한 권력과 결탁할 때 어떠한 비극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원래...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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