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lind E. Krauss, Under Blue Cup 토대로 돌아오라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기 마련이다. 전후 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매체의 물리적 본질로 돌아가는 것만이 당대의 미학적 책무라며 추상 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뉴욕 화파를 치켜세웠다. 마초적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린버그의 페르소나들은 르네상스 이후 줄곧 또 하나의 창문 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캔버스의 낡은 쓰임을 일신했다. 이제 캔버스는 그 평면 너머에서... Continue Reading →
마틴 켐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와 함께한 50년」
Living with Leonardo: Fifty Years of Sanity and Insanity in the Art World and Beyond 진실의 수호자 이 책은 르네상스의 아이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어떤 화가인지,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논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기적으로 따라가지도 않는다. 저자는 주인공의 주변부를 맴도는 단순한 평자가 아니다. 저자는 이 회고록에서 중심에 선다. 생물학 전공 출신의 미술사학자... Continue Reading →
핼 포스터의 「소극 다음은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
Hal Foster, What Comes After Farce?: Art and Criticism at a Time of Debacle 백전노장의 충언에 귀를 기울이며, 고백하자면 나는 부끄럽게도 ‘소극’이라는 말도, ‘결괴’라는 말도 처음 들어 봤다. 그러니까 책 제목에서 핵심이 되는 두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른 채 저자의 이름만 보고 이 책을 집어 든 셈이다. 물론 그 선택 자체는 옳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포스터의...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