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lind E. Krauss, Under Blue Cup 토대로 돌아오라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기 마련이다. 전후 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매체의 물리적 본질로 돌아가는 것만이 당대의 미학적 책무라며 추상 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뉴욕 화파를 치켜세웠다. 마초적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린버그의 페르소나들은 르네상스 이후 줄곧 또 하나의 창문 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캔버스의 낡은 쓰임을 일신했다. 이제 캔버스는 그 평면 너머에서... Continue Reading →
한병철 유니버스: 「피로사회(2010)」, 「투명사회(2012)」, 「아름다움의 구원(2015)」
Mudigkeitsgesellschaft; Transparenzgesellschaft; Die Errettung des Schönen 진단서 말고 연장통을 주세요. 딱히 대단한 원칙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이 홈페이지에서 책을 정리할 때 대체로 하나의 글로 한 권의 책을 다뤘다. 이번에는 세 개의 책을 한 번에 엮어 정리해 본다. 일단 이 책들이 모두 소책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얇고, 하나의 대주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 대주제를 한병철 유니버스라고 규정해... Continue Reading →
이영욱 외 편저,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
내 서고에 애지중지 아끼는 두 권의 선집이 있다. 하나는 도널드 프레지오시(Donald Preziosi)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이고, 다른 하나는 로버트 S. 넬슨(Robert S. Nelson)과 리처드 시프(Richard Shiff)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이다. 둘 다 미진사에서 번역한 작품이다. 미술사와 비평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개념, 이론, 사례들을 망라한 선집이라 한창 학구열이 불탔을 시기에 시야를 넓히는 데... Continue Reading →
김경섭의 「미친놈 예술가 사기꾼」
작품으로 말할 방법은 분명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예술을 완전히 뒤집는다!”라는 도발적인 캠페인 문구를 달고 있는데, 내 경우 사실 딱히 뒤집히는 것이 없었다. 저자가 새로 찾아낸 정보란 거의 없고, 그나마 얄팍한 정보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고,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골자도 사실 내 평소 지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예술에 관한 통념이 뒤집힌... Continue Reading →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
진실과 껍데기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진실과 껍데기 사이의 간격이 있다. 인간의 마음속 최종적 심급에서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거지를 좌우하는 진실이라는 국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람에 따라 두터운 껍데기에 꽁꽁 싸여 철저한 보호 대상으로 관리되고 있을 수도 있고, 아주 투명한 막으로만 둘러쳐져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존재감을 언뜻언뜻 내비칠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진실과 껍데기의 간격은 가까울수록 좋다.... Continue Reading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
Georges Didi-Huberman, Peuples exposés, peuples figurants 이미지와 사유는 민중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문법적으로 ‘민중들’이라는 말은 없다. 민중, 대중, 국민 등 집합명사는 이미 집합을 가리키므로 복수형으로 쓸 수 없다. 저자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나 역자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이 책은 묵직하게 끝까지 ‘민중들’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인공으로 지목한 민중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적 거대서사의 주인공이 아닌, 시각문화의... Continue Reading →
핼 포스터의 「소극 다음은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
Hal Foster, What Comes After Farce?: Art and Criticism at a Time of Debacle 백전노장의 충언에 귀를 기울이며, 고백하자면 나는 부끄럽게도 ‘소극’이라는 말도, ‘결괴’라는 말도 처음 들어 봤다. 그러니까 책 제목에서 핵심이 되는 두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른 채 저자의 이름만 보고 이 책을 집어 든 셈이다. 물론 그 선택 자체는 옳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포스터의... Continue Reading →
조너선 크레리의 「지각의 정지: 주의·스펙터클·근대문화」
Jonathan Crary, Suspensions of Perception: Attention, Spectacle, and Modern Culture “19세기 말 이후 제도적 권력에서 중요한 문제는 생산적이면서 관리와 예측이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통합될 수 있으며 적응 가능한 주체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각이 기능하는 것뿐이다.” 17p “주의는 다양한 사회적-기계적 기계들에 부합되는 주체를 생산하는 데 줄곧 필수적 역할을 해왔다.” 137p 억측의 향연, 억측의 맥락 ‘우리 시대의 고전 27’... Continue Reading →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알아야 바꾸지 내가 감히 이 작품에 한 자라도 덧붙일 수나 있을까. 덧붙인다고 한들 뭐라도 달라질까. 전 세계 인문사회학계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자에 관해, 심지어 그 저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에 이제와서 뭐라도... Continue Reading →
강수미의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비평은 싫다고 말할 권리를 갖는가? 조금은 무책임한 제목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오랜 시간 한국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서 여러 인물, 작품, 현상을 두루 살펴보고 해체한 후 이것을 ‘까다로운 대상’이라 명명했다. 최고급 사치품에서부터 시민운동에 가까운 처절한 몸부림까지─, 한계 없는 다원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동시대 미술계를 생각할 때,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무용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