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고에 애지중지 아끼는 두 권의 선집이 있다. 하나는 도널드 프레지오시(Donald Preziosi)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이고, 다른 하나는 로버트 S. 넬슨(Robert S. Nelson)과 리처드 시프(Richard Shiff)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이다. 둘 다 미진사에서 번역한 작품이다. 미술사와 비평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개념, 이론, 사례들을 망라한 선집이라 한창 학구열이 불탔을 시기에 시야를 넓히는 데... Continue Reading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
Georges Didi-Huberman, Peuples exposés, peuples figurants 이미지와 사유는 민중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문법적으로 ‘민중들’이라는 말은 없다. 민중, 대중, 국민 등 집합명사는 이미 집합을 가리키므로 복수형으로 쓸 수 없다. 저자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나 역자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이 책은 묵직하게 끝까지 ‘민중들’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인공으로 지목한 민중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적 거대서사의 주인공이 아닌, 시각문화의... Continue Reading →
핼 포스터의 「소극 다음은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
Hal Foster, What Comes After Farce?: Art and Criticism at a Time of Debacle 백전노장의 충언에 귀를 기울이며, 고백하자면 나는 부끄럽게도 ‘소극’이라는 말도, ‘결괴’라는 말도 처음 들어 봤다. 그러니까 책 제목에서 핵심이 되는 두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른 채 저자의 이름만 보고 이 책을 집어 든 셈이다. 물론 그 선택 자체는 옳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포스터의... Continue Reading →
조너선 크레리의 「지각의 정지: 주의·스펙터클·근대문화」
Jonathan Crary, Suspensions of Perception: Attention, Spectacle, and Modern Culture “19세기 말 이후 제도적 권력에서 중요한 문제는 생산적이면서 관리와 예측이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통합될 수 있으며 적응 가능한 주체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각이 기능하는 것뿐이다.” 17p “주의는 다양한 사회적-기계적 기계들에 부합되는 주체를 생산하는 데 줄곧 필수적 역할을 해왔다.” 137p 억측의 향연, 억측의 맥락 ‘우리 시대의 고전 27’... Continue Reading →
강수미의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비평은 싫다고 말할 권리를 갖는가? 조금은 무책임한 제목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오랜 시간 한국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서 여러 인물, 작품, 현상을 두루 살펴보고 해체한 후 이것을 ‘까다로운 대상’이라 명명했다. 최고급 사치품에서부터 시민운동에 가까운 처절한 몸부림까지─, 한계 없는 다원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동시대 미술계를 생각할 때,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무용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Continue Reading →
캐서린 스푸너의 「다크컬처」
Catherine Spooner, Contemporary Gothic 오늘날의 유령은 어디에? 헌책방의 진정한 의미는 책값의 절약 같은 단편적인 효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의외성의 미학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쿰쿰한 서고가 천장까지 닿아 있고, 누리끼리한 책들은 책장에서 미어져 나와 복도까지 장악한다. 사람의 공간에 책을 둔 것이 아니라 책의 공간에 사람이 제멋대로 침입해 굽이굽이 유랑하는 맛이다. 책들은 못내 겨우 사람 하나 비집고... Continue Reading →
손택, 키이우, 이태원 : 타인의 고통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Susan Sontag(2003),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무더위 속에서 이 책을 읽고 이제야 글로 정리한다. 진작 썼어야 하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낙엽이 쌓인다. 먹고 살기 위한 글에 쫓기다 보면 사적으로 쓰는 글도 일처럼 느껴진다. 미뤄뒀던 글감이 어떤... Continue Reading →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
Roland Barthes, Mythologies (1957) "언어의 이름으로 한 사람에게서 그의 언어를 훔치는 것, 바로 이런 행위를 통해 모든 합법적인 살인이 시작된다." 70p "신화의 기능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키는 것이다." 282p 신화에 거하거나, 벗어나시오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장은 바르트(Roland Barthes)가 현대의 신화들을 구체적 실례로 살펴보고 그 내막을 샅샅이 분석한 내용이다. 1950년대 현재,... Continue Reading →
성일권의 「비판 인문학 100년사」
동거인께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정기 구독하고 있는데, 요즘엔 통 읽지를 않으신다. 어느 날 구독자 사은품으로 이 책이 배송되었다. 재미는 없어 보였지만, 나라도 이걸 읽어서 정기 구독료를 조금이나마 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책을 폈다. 이 책에는 두 줄의 부제가 달려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실존주의, 인류세까지 / 프로이트에서 푸코, 카스텔까지” 여기서 첫 줄은 사상을, 둘째 줄은 사람을... Continue Reading →
이영준의 「페가서스 10000마일」
한 번 더 갔다 오세요. ‘기계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앞장서서 개척하고 있는 이영준의 본격적인 기계비평서로서, 「기계비평」에 이은 두 번째 시도다. 이번에는 기계 전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육중한 컨테이너선에만 집중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평론을 전개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5년에 걸쳐 끈질기게 컨테이너선 승선을 요청했고, 어렵사리 승낙을 얻어 상하이에서부터 사우샘프턴까지 10,000마일의 여정을 완주했다. 그가 탑승한 ‘CMA CGM...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