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면 창작실험실 개관전 – “창작실험실: THE TRAKTeR” 展

담백한 첫 걸음 요즘 소멸위기에 직면한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문화예술 토양이 특히나 척박하기 이를 데 없던 충북에 새로운 전시 공간이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다녀왔다. 그간 농기계훈련관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약 4년 동안은 소임을 마친 채 방치되어 있던 충북자치연수원 내 한 건물을 충북문화재단이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을과 전답에 둘러싸인 적막한 지역에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문화예술... Continue Reading →

삼청나잇 (키아프 & 프리즈 연계행사, 23.9.7.)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에 참여하는 삼청동 갤러리들의 특별한 야간 개장 행사에 가봤다. PKM갤러리 구정아 개인전과 DJ파티(LEVITATION Party)가 열리는 PKM갤러리가 가장 핫할 것 같아서 먼저 가봤다. 직원들이 입구에서 팔찌를 채워준다. 키아프/프리즈 VIP 티켓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해 우리는 못 들어갔다. 아쉬웠다. 다른 곳을 다 둘러보고 밤늦게 다시 돌아와 그 앞을 지나가는데, 비트는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Continue Reading →

박지나 개인전, 「동쪽에서 뜨는 달」 展 (디스위켄드룸)

196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은 개념주의 기치 아래 탈매체화를 향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눈에 드러난 한낱 외형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붓칠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 작가는 시대착오적인 장식가로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개념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작가들에게 진짜로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의 그 개념이 외형을 모두 포기할 만큼... Continue Reading →

최태훈 개인전, 「필드 field」 展 (갤러리 P21)

이면과 단면 경리단길의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사이에 P21이라고 적힌 흰 깃발이 나부낀다. 갤러리 P21은 P1과 P2라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두 공간을 아우른다. 코딱지만한 P1에는 친절한 관리자가 상주하고 있고, 무인으로 상시 운영되는 P2는 전시공간 자체가 P1보다 조금 더 크다. 예술과 무관한 전이지대로서 와인바 하나를 사이에 끼고 분리된 두 공간은 ‘따로 또 같이’라는 운영 전략을 취하고... Continue Reading →

오자키 테츠야의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이런 비슷한 제목의 책이 전에도 있었다. 테리 스미스(Terry Smith)의 「컨템포러리 아트란 무엇인가」. 꽤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표지 디자인도 은근히 비슷하다. 노린 것 같다. 제목도 사실상 같다. ‘현대미술’이나 ‘컨템포러리 아트’나 일반적인 용례상 같은 시기와 대상을 가리킨다. 다른 점이 있다면, 테리 스미스는 좀 더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편이고, 오자키 테츠야는 현장 중심의 접근에 가깝다. 그런데 현장 중심의... Continue Reading →

최민경, 「매끄럽지 않은」 展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촉각적인 관점에서 그 여정은 매끄러움이 거침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살결은 향긋하고 촉촉하고 보드랍다. 반면 노인의 살결은 비릿하고 뻣뻣하고 거칠다. 이처럼 거친 속성은 시간의 흐름을 대변하고, 결국에는 죽음과 맞닿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영생은 필연적 갈망이다. 거칠고 주름진 것에서 벗어나 매끄럽고 촉촉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은 그야말로... Continue Reading →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展

1층 로비의 물품 보관함이 꽉 찼을 정도로 붐볐다. 황금 같은 주말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젊은이가 미술관을 찾았을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 갈만한 선택지가 별로 없어서였을까? 날씨만을 이유로 꼽기에는 궁색하다. 작품을 보는 것 외에도 강추위 속에서 선택할만한 즐거움은 얼마든지 있다. 진정 볼만한 것들이 있었다. 그저 미술에 대해 아는 척하고 싶은 몇몇, 혹은 인스타에 올릴만한 소재를... Continue Reading →

권미원의 「장소 특정적 미술: ONE PLACE AFTER ANOTHER」

Miwon Kwon(2002), One Place after Another “장소에 묶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교환, 이동, 소통의 공간적 장애가 줄어들고 있는 세계에서 덜 중요하기보다는 더 중요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하비(254p) 작품이 의미를 갖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작품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는 방식이다. 작품은 하나의 독립된 완성체로서 모든 의미를 그 안에 내포한다. 한마디로 자족적이다. 스스로 살아 숨... Continue Reading →

[에세이] 기호와 호흡: 이채은의 2022년 회화

다양성이 시대적 화두가 된 세상에서, 그것을 거스르려는 조그마한 움직임일지라도 조리돌림을 각오해야 한다. ‘민주주의=절대선’이라는 제국주의적으로 강요된 등식에 다양성이 무비판적으로 침습되면서 단순한 의견이나 취향의 표명마저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스럽게 비평의 영토까지 침범한다.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비평은 편파적이고 열의에 차고 정치적이어야 한다.”[1]는 것이 기존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에 좋은 이유가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다. 고로 무슨... Continue Reading →

[에세이] 혼돈에서 사후생으로: 양은영의 2022년 회화

예술가는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작품의 형태로 투사한다. 그 작품은 미술계, 혹은 그 울타리 밖 더 넓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 놓여 소통의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 소통이 성공할지, 혹은 실패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많은 예술가가 그 성공의 여부에 관심이 없다는 듯 짐짓 초연한 표정으로 작업실을 지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의 가능성이 완전히... Continue Reading →

워드프레스닷컴에서 웹사이트 또는 블로그 만들기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