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 시간이 별로 없으면 전시 속 전시만 보세요. 두 개의 팔과 다리와 눈과 콧구멍과 젖꼭지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이항(二項)에 너무도 익숙한 탓에 그 밖의 가능성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한다. 하지만 젖꼭지와 달리 인간이 구축한 문화적 구조에는 경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경계는 누군가에게 삶의 무대가 된다. 경계나 변두리에 내몰린 삶의 무대를 복원하기 위한 대대적인 투쟁이 20세기 전반에... Continue Reading →
그레이슨 페리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Grayson Perry, Playing to the Gallery: Helping Contemporary Art in Its Struggle to Be Understood 대중이 ‘예술가’라는 존재를 상기하는 이미지는 우수에 찬 낭만주의적 천재와 구제불능의 괴짜 사이를 오간다. 저자는 후자에 가깝지만, 예술계의 견지에서 절대 비주류는 아니다. 오히려 터너상 수상자라는 가장 명예로운 위치에 앉아 있다. 아리송한 동시대 예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일 목적으로 기획된 이 소책자는... Continue Reading →
이우환과 그 친구들 II – 빌 비올라, 조우 展 (부산시립미술관)
Bill Viola, ENCOUNTER 처음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에서 영상 보기를 워낙 싫어하는 탓에, 동반자에게는 찢어져서 서로 다른 전시를 보고 만나면 안 되냐고 몽니를 부렸으나, 이내 잠자코 따라갔다. 전시는 초기작과 근작으로 나뉘어 ‘이우환 공간’과 본관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우리는 최근작이 중심인 본관에서 출발하였다. <아니마_Anima(2000)>, <인사_The Greeting(1995)>, <관찰_Observance(2002)> 등 세 작품으로 구성된 공간이 출발점이었는데, 우리가 앞으로 이 전시에서 마주하게... Continue Reading →
폴 오닐의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팅의 문화, 문화의 큐레이팅」
Paul O’Neil, The Culture of Curating and the Curating of Culture(s)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의 한도를 다시 주목하고 확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누가 보는지,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새로운 종류의 상대주의적/수사적 메타 서사 생산을 통해 무엇이 정당화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65p 미술관사, 전시사 분야는 일부 대학 교재를 제외하고는 번역 출판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편인데,... Continue Reading →
휘트니미술관의 「20세기 미국 미술: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Lisa Phillips et al.(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The American Century: Art and Culture, 1950-2000 휘트니미술관 테라스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인증샷을 찍고, 1층 레스토랑 "Untitled" 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호퍼(Edward Hopper) 기념품을 잔뜩 샀던 것이 불과 10개월 전인데, 마치 10년은 지난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모두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이... Continue Reading →
허버트 리드의 「현대회화의 역사」
Herbert Read, A Concise History of Modern Painting (초1959, 개1968, 개1974, 번1990) 꼴 같지 않게 미학, 비평, 예술철학 같은 묵직한 책들만 읽어대다가 오랜만에 미술사 책을 펼쳤더니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다가 벗어던진 기분이다(물론 실제로 모래주머니를 차고 뛴 적이 있을 리 만무하고 비유 상 그렇다는 것). 하나의 미술 양식이 새로운 경향을 만나서 변해가는 과정,... Continue Reading →
이브 미쇼의 「예술의 위기: 유토피아, 민주주의와 코미디」
Yves Michaud, La Crise de l'art contemporain (1997) "소위 말하는 현대 예술의 위기는 예술에 대해 생각하는 바의 위기이고, 그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는 바의 위기이다."229p 예술이 아닌, 우리의 위기 이야기는 1990년대 초반 프랑스 현대 미술을 둘러싼 좌우 논쟁으로 시작한다. 현대 미술의 비판자들은 그것이 무분별하며, 공감을 얻지 못하고, 퇴폐적이며, 염세적이라고 까내린다. 옹호자들은 그 비판자들이 여전히 구습에 얽매여... Continue Reading →
올해의 작가상 2019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코끝이 매콤한 가을이 오면 올해는 ‘올해의 작가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올해도 서울관을 찾았다. 올해의 작가상이 어떤 의미인지는 2018년에 이미 주저리주저리 다 썼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올해의 ‘올해의 작가상’은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는데, 첫째로, 이 전시가 막이 오르기 직전에 ‘작년의 작가상’ 유력 후보 중 하나가 자살했다. 나는 2018년의 리뷰에서 그들이 내 취향과는 달리... Continue Reading →
바바라 크루거_BARBARA KRUGER: FOREVER 展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상업주의의 성전에서 만난 상업주의의 투사 화장이란 먹고 사는 문제와 전혀 상관없이 순수하게 차이화의 기호로만 존재하는 활동이다. 화장은 본질의 차이가 아닌 기호의 차이만을 만들어 낸다. 마스카라를 그리는 행위 자체는 출근해서 일하고 성과를 내고 월급을 받고 식료품을 구매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마스카라를 그린 자와 그리지 않은 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리지 않은 자는 문명화된 행동을 거부하는... Continue Reading →
다큐멘터리-영화 호크니(Hockney, 2014) (KU시네마테크)
진실을 향한 분투 호크니(David Hockney)는 사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초현실주의 등 회화에서 두드러졌던 모든 형식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무려냈다. 그의 일생 자체가 사양미술사에서 시각성의 문제에 관한 모든 연구주제들의 집대성이었다. 호크니가 평생에 걸쳐 투신했던 문제는 인간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평면 회화 속에 가장 정확하게(=진실에 가깝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단일 시점의 원근법으로 세계를 지각하지 않는다. 유동적인 초점의 파편들이...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