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lind E. Krauss, Under Blue Cup 토대로 돌아오라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기 마련이다. 전후 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매체의 물리적 본질로 돌아가는 것만이 당대의 미학적 책무라며 추상 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뉴욕 화파를 치켜세웠다. 마초적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린버그의 페르소나들은 르네상스 이후 줄곧 또 하나의 창문 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캔버스의 낡은 쓰임을 일신했다. 이제 캔버스는 그 평면 너머에서... Continue Reading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
Georges Didi-Huberman, Peuples exposés, peuples figurants 이미지와 사유는 민중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문법적으로 ‘민중들’이라는 말은 없다. 민중, 대중, 국민 등 집합명사는 이미 집합을 가리키므로 복수형으로 쓸 수 없다. 저자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나 역자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이 책은 묵직하게 끝까지 ‘민중들’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인공으로 지목한 민중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적 거대서사의 주인공이 아닌, 시각문화의...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