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예술과 문화(Art and Culture: Critical Essays)」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비평가 한 사람이 미술의 흐름에 미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마지막 사람이다. 그의 비평은 잠시나마 역사의 축을 옮겼고 공간을 재배치했다. 자신이 믿고 옹호하는 경향에 대하여 치밀하게 근거를 마련한 결과, 역사의 흐름 속에 기어이 자리를 잡게 했다.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기에 그의 이름을 빼고 20세기 미술론을 기록하는... Continue Reading →

브리짓 퀸의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미술사가 놓친 위대한 여성 예술가 15인」

우리가 읽는 서양미술사는 대체로 남성 후원자와 남성 화가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남성 미술사가가 요약한 결과물이다. 여기서 여성의 이름은 아주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브리짓 퀸(Bridget Quinn)의 '여성 예술가론'은 H. W. 잰슨(Janson)의 기념비적 「서양미술사(History of Art)」에서 단 16명의 여성만 등장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대한 충격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잰슨에서 언급된 16명 중 2명을 포함한 15명의 여성 예술가들을 다룬다. 이러한 선정은... Continue Reading →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끝내주는 책이다. 너무 황홀한 나머지 표지를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이렇게 과격한 칭찬을 해야 하는 이유는 표지의 디자인 수준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경영 분야의 서적 중에서 이렇게 싸구려 스티커 무늬를 여기저기 찍어 놓은 표지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이런 책을 지하철에서 펼치면 얼굴이 후끈 달아 오르는 것 같다. 실력은 없는데 오로지 성공에만 눈 먼 흙수저가... Continue Reading →

마쓰다 유키마사의 「눈의 황홀: 보이는 것의 매혹, 그 탄생과 변주」

시각성에 대한 근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언제부터 속도에 대한 묘사가 생겨났을까? 직선, 나선, 쌍, 연속과 같은 개념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의구심을 갖기 힘든 이러한 개념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고책방에서 만난 이 책이 그러한 호기심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소재도 좋고, 포괄하는 범위도 넓고, 자료도 빵빵한 책인데 더럽게 재미 없다는 것이... Continue Reading →

올해의 작가상 2018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17 展>을 보고 통인시장에 들러 먹었던 고로케의 기름맛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덧 2018년의 작가를 뽑고 있다. 미술계의 연례행사로 '한 해'라는 작위적인 시간 단위를 새삼 상기한다. 어찌보면 1년의 시간을 전시로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동차세 납입이나 건보료 인상 따위로 지각하는 것 보다야 훨씬 낭만적이다.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의 터너 상(Turner Prize)에서 영감을 받은... Continue Reading →

2018 우양 소장품: 예술가의 증언 展 (우양미술관)

우양미술관 1층에서는 낙서展이, 2층에서는 소장품展이 열리고 있다. 이 작은 미술관에서 왜 굳이 공간을 쪼개어 두 개의 전시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관람객 입장에서는 한 번에 두 가지 사유를 끄집어 낼 수 있으니 좋은 점이 있다. 아무리 작은 전시라고 하더라도 기획할 때 드는 육체적/정신적 소요는 대규모 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문을 쓰고, 브로셔를 만들고, 동선을... Continue Reading →

그래피티: 거리미술의 역습 展 (우양미술관)

늘 강조하지만, 전시의 성과는 작가의 이름값이나 작품 수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과 그것의 배치가 우리에게 어떤 사유의 확장을 가져오는지, 우리 삶에 어떤 화두를 던져주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주 힐튼호텔에 자리한 우양미술관의 <그래피티: 거리미술의 역습 展>은 작가의 이름값도, 작품 수도 청담 K현대미술관의 낙서展에 훨씬 못 미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전시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알타임 죠(Artime... Continue Reading →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그때의 나, 지금의 나 출장을 떠나며 10년 만에 다시 하루키를 꺼내들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럴만한 시기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20대의 나는 세상과 사람을 너무 몰랐다. 작품 서두(12p)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생각들이 빙빙 돌아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그런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한 사유의 정도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나 이외의 모든 타자는 마치... Continue Reading →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Conclave): 신의 선택을 받은 자」

거룩한 성의를 걸친 종교계의 흑막을 열어 젖히는 이야기는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로마 가톨릭은 지난 2000년 간 박해의 상징으로, 시대의 율법으로, 구습의 망령으로, 혹은 평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적절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찬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에, 그 내막에 대한 궁금증도 더불어 커져간다. 종교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신비를 동반하며 그 생명을 유지하기...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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