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 미디어의 종말이 가까웠지만, 공영방송 KBS의 위상과 ‘전국노래자랑’의 브랜드 가치는 건재하다. 전국노래자랑의 시계는 최첨단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애써 거스르며 여전히 일요일 정오를 지배하고 있다. 이 왕좌가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모른다. 최근 회차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불안불안하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유튜브로 ‘맞춤형’ 트로트 영상을 보는 시대다. 이 프로그램이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나도 한 번쯤은 탑승해 보고 싶었다.
동네 노래자랑이야 몇 번 나가봤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역시 차원이 다른 프로그램이다. 이 작은 시골에서도 사전접수가 290번대였고, 현장접수 포함하니 315번 정도까지 순번이 이어졌다. 나는 50번대, 다행히 대기시간의 압박은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었다. 인생에서 종종 누리게 되는 ‘가나다’ 순의 소소한 혜택이다. 이 땅의 무고한 하, 허, 황 씨들에게 위로를. 다른 지역에서는 500번대까지 진행됐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300번대 정도면 경쟁률도 준수하고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우선 선곡은 나훈아의 ‘아담과 이브처럼’. 20여 년 전 어느 드라마 삽입곡이었고, 대학교 때부터 트로트 레퍼토리가 필요할 때 종종 불렀던 노래다. 선곡 기준은 전국노래자랑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중적 트로트일 것, 내가 과거에 종종 불러봤고 객석의 반응 면에서 검증됐을 것, 남들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적 있지만 구체적인 제목까지는 모를 것, 그래서 오직 나만이 선곡할 수 있는 곡일 것. 이 정도다. 상당히 까다로운 필터링을 거쳐 이 곡이 최우선 후보로 낙점됐다. 역시나 나만이 이 곡을 선곡했다.
예전부터 음악인들로부터 내 목소리에 뽕끼가 있으니 앞으로 노래 실력을 키우려면 그 뽕끼부터 좀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종종 들었다. 심지어 성가대에서도. 지금은 그 뽕끼가 많이 억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원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소환할 수는 있다. 지금이야말로 그래야 할 때다. 왜냐하면, 그 무대가 다름 아닌 전국노래자랑이니까. 이 노래라면 애써 억제했던 나의 뽕끼를 충분히 꺼내 볼만했다.
선곡은 총 세 곡을 써내게 되어있는데, 2번은 조용필의 ‘태양의 눈’, 3번은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를 써서 냈다. 3번은 아예 불러볼 생각도 없이 그냥 자리만 채우려고 써낸 것이고, 2번은 1번과 함께 나름 꽤 연습을 해봤다. 전국노래자랑 선곡으로서는 신선하기도 하고 내 목소리와도 맞았지만, 결국 예심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다. 원곡의 구조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독창하기에는 사운드가 많이 비어 보인다. 그리고 프로그램 특성상 적당하게 잘라서 앞부분만 불러야 하는데, 기승전결의 구조가 복잡해서 자를 구간이 마땅치 않았다.
예심에 참가해서 다른 참가자들의 경연을 보니 의아스러운 것이 참 많다.
첫째, 왜 의상에 신경을 안 쓸까. 바쁜 생업 가운데 특별히 평일 오후 시간을 통으로 할애해 예심에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무리 예심이라고 하더라도 심사위원들에게 각인될 만한 인상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본선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설 거예요’, 라는 예측치 내지 기댓값을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본선까지 의식하고 제대로 의상을 챙겨 입고 온 참가자는 10%뿐인 듯했다. 나머지 90%는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왔다. 눈에 띄지 않는 평상복 차림이라면 노래라도 특별해야 할 텐데, 노래도 평범하다면 어떻게 ‘수고하셨습니다.’를 피할 수 있겠는가? (예심에서 심사위원은 불합격 판정 결과를 즉석에서 ‘수고하셨습니다.’로 통보한다.)
둘째, 왜 몇 개의 똑같은 곡이 이토록 중복적으로 선곡될까. ‘보릿고개’, ‘한잔해’, ‘잘가라’, ‘따르릉’, ‘진또배기’ 등등…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300명 예심을 오며 가며 뜨문뜨문 보는데 이런 몇 개의 인기 레퍼토리가 계속 중복된다. 나도 지겨운데 심사위원은 얼마나 신물 날까. 곡이 중복되면 아무리 실력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중복된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 붙게 된다. 충분히 대중성 있는 선곡은 필수이지만, 저 정도 메가 히트송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셋째, 타지역 참가자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오창, 일산, 괴산 등 여러 지역의 참가자들이 이번 예심이 참가했다. 심사위원들은 타지역 참가자들을 꼭 한 번씩 재차 확인했다. 지역의 한계를 초월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이들은 대체로 준비성도 좋았고 실력도 준수했다. 1차 합격자도 더러 나왔다. 하지만 2차까지 가니 타지역 참가자들은 결국 다 떨어졌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행사이니만큼, 어지간한 괴수급 참가자가 아니면 타지역 참가자는 다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심사위원도 사전 안내에서나 최종 심사평에서나 누차 지역민 중심으로 선발한다고 강조했다. 타지역 참가자 중에는 가수 지망생이 많은 듯하다. 어떻게든 일말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타지역 본선을 뚫고 전파를 탄다는 경로는 가수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거의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시나리오인 듯하다.
무반주 1차 심사에서 50팀 정도를 고르고, 이후 2차 반주기 심사에서 최종 15팀을 확정했다. 나는 1차를 붙고 2차에서 여지없이 고배를 마셨다. 1차 붙을 때는 분위기가 좋았다. 내 앞에서 합격자가 별로 안 나왔다. 내가 56번째로 나가서 1차 합격자 순번으로 8번을 받았다. 후렴까지 가지도 않고 앞부분만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PD는 ‘실제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느끼하게 하셔야 해요.’라며 애정 어린 조언까지 건넸다. 승산이 있다고 느꼈다. 물론 내 뒤로 합격자가 점점 불어나는 것을 보며 불안하긴 했지만.
1차에 붙고 나면 2차 원서를 다시 준다. 거기에 선곡은 물론 방송을 탈만한 장기나 사연을 더 구체적으로 적어 내야 한다. 방송국 놈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쌈빡한 사연이나 특출난 장기가 기재되어야 승산이 있다. 괴수급 가왕이 아닌 이상 노래만으로는 안된다. 그거야 물론 예심에 오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내 앞에 백지가 놓이니 솔직히 좀 안일해 졌다. 있는 장기, 없는 장기까지 긁어모아 어떻게든 붙어 볼까,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더 컸다. 그래서 무난하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써서 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2차 반주기 심사에서 노래를 마치니 내게 아무것도 묻지를 않는 것이다. 인터뷰 없이 노래만 부르고 돌아섰다. 노래 자체는 괜찮았다. 하지만 본선 진출에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밤늦도록 최종 심사결과 발표를 기다리면서 일말의 기대감도 스멀스멀 교차했지만, 역시나 여지없었다. 팀워크와 준비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노래 실력이 압도적인, 웃음 포인트가 명확한, 휴머니즘이 묻어나는 참가자들이 본선 진출의 영예를 안았다.
전국 방송을 못 탄 것은 애석하게 됐지만, 내 의지가 딱 거기까지였다. 진짜 의지가 있었다면 눈물의 똥꼬쇼라도 왜 못했겠는가. 무대에 섰을 때와 달리 갑작스럽게 궁색해져 버린 색동 자켓을 걸쳐 입고 도망치듯 군민회관을 빠져나오는데, 불타오르는 열의를 보이지 못한 나 자신이 어느새 확연히 중후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예전과 달리, 나는 왜 더 망가지지 못했나? 왜 체면치레의 외피를 버리지 못했나? 잃을 것이 많아져서? 노래만으로 겨루고 싶다는 알량한 자부심이었나? 모든 질문은 중년의 문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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