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제너의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나는 어려서부터 잡학박사를 꿈꿨다. 아는 척하기를 워낙 즐겼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 말이 ‘아는 척하고 싶은 욕망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로 들렸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아는 척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는 척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인터넷과 아카이브의 시대에 유용한 정보는 도처에 산재하고, 내가 내뱉은 말을... Continue Reading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어떤 책이 고전으로 숭상을 받기 시작하면 오히려 피하고 싶어진다.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코스모스(Cosmos)도 대중 과학서로서 고전 중의 고전인지라 역시나 피하고 싶었지만, 여러 저자들의 손가락이 계속 이 한 지점을 향하고 있는 바람에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세계 6억명의 시청자가 감동했던 동명의 전설적인 다큐멘터리와 동시에 기획된 서적이다. 매체가 매체이니... Continue Reading →

연극 레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미술의 수도로 떠오른 미국에 두 개의 신성(新星)이 있었다. 한 사람은 피카소를 넘어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아 갔다. 그는 미술사상 최초로 캔버스를 수평으로 눕혔고, 안료가 흩뿌려지는 과정 자체를 회화의 구성요소로 편입시켰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치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의 정서를 움직이는... Continue Reading →

워드프레스닷컴에 보낸 피드백

오늘 워드프레스에 접속해 보니 사용자 설문조사를 요청하는 팝업이 떴다. 낮은 점수를 주었더니 구체적인 이유를 알려달란다. 자세하게 서술해서 보내줬다. 물론 꼼꼼히 읽어 보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은 이 플랫폼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조금이라도 눈여겨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혹시라도 내가 보낸 피드백이 하위 담당자 선에서 묻힐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 다시 적어 놓는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는 모니터링을... Continue Reading →

‘고종의아침’에 건내는 작별인사

예술의전당 맞은편 우측 골목에 숨겨진 '고종의아침'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7~8,000원대의 에스프레소 음료에서부터 2만 5천원짜리 게이샤 커피까지 구비한 핸드드립 전문점이었다. 예술의전당을 배후지로 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와 같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꾸밈 없는 소박한 인테리어와 명료한 조도가 커피에만 집중하는 장인의 공간 다운 기품이 느껴지던 곳이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은 요즘 카페들과는 달리 좌석으로 메뉴판을... Continue Reading →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 서울 (Musical The Lion King,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라이온 킹이 13년만에 다시 우리나라를 찾았다. 일본 극단 시키가 선보였던 첫번째 라이온 킹은 여러 모로 잡음이 많았다.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 극장 개관작이 일본 극단에 의한 브로드웨이 라이센스 뮤지컬이라는 점이 비판의 요지였다. 개관작의 전통에 따라 지금까지도 샤롯데씨어터에서는 창작 뮤지컬이 공연되었던 적이 없다. 덧붙여, 최고가 티켓이 10만원 이하로 책정되었던 것도 시장교란이라는 측면에서 암암리에 국내 뮤지컬 업계에... Continue Reading →

게오르크 W. 베르트람의 「철학이 본 예술」

예술은 아름답지만 엄청난 수고를 요한다. 칼 발렌틴 예술이 대체 무엇이관대 이토록 많은 언설을 낳는가? 역사적으로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나의 정의가 세워지면 이내 그 정의를 무력화시키는 전복이 이루어졌다. 한때는 종교였던 것이 2000년쯤 지나자 예술로 포장됐다. 누군가에게는 숭고한 예술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저열한 공예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신의 예술관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예술 작품들이... Continue Reading →

김유정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 展 (역삼 소피스 갤러리)

우리가 식물의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존 거대 밀림의 장관을 볼 때가 아니다. 오히려 콘크리트 벽이나 보도블럭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의 춤사위를 볼 때 그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갸냘프기 짝이 없는 민들레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릴 확률, 그리고 허공을 유영하다가 그 작은 틈새로 들어갈 확률, 적절한 압력이 작용해 뿌리를 박을 확률, 최적의 영양소와 일조량을 만나서 발아할... Continue Reading →

황정수의 「일제강점기 조선미술교류사: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화가들을 추적한 기록물이다. 엄정한 의미의 미술사는 아니다. 특정 시대의 미술을 통시적으로 아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과 인연을 맺은 일본인 화가를 공시적으로 다루되, 화파나 경향을 토대로 계보학을 수립하려 애쓰지 않고 분절적인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나열해 놓았다. 45장으로 촘촘하게 분절되어 쓰인 이야기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는 소논문 내지 에세이다. 가장 중요한... Continue Reading →

WordPress.com.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