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파르므의 수도원」

Marie-Henri Beyle (Stendhal), La Chartreuse de Parme

수도원에 갇힌 가능성

헌책방에서 작은 양장 소설 1, 2부가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저절로 손이 갔다. 「파르므의 수도원」이라길래 비밀스러운 공간을 둘러싼 사랑과 음모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 수도원은 작품 내내 등장하지도 않는다. 수도원은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가 질곡의 세월을 모두 보내고 스스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곳이다. 소설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잠깐 언급되는 장소다. 내가 읽은 신원문화사 판본은 ‘파르므’라고 번역했지만, 최근에는 ‘파르마’라고 읽는 것이 대세인가보다.

스탕달은 왜 이 장소를 작품의 제목으로 내세웠는가? 유서 깊은 귀족 집안 자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군대에 자발적으로 투신했던 객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른 채 이 여자 저 여자 오가며 오직 한순간의 유희만을 추구했던 치기, 수틀리면 주먹부터 날아갔던 혈기, 수용소 철창을 사이에 두고 태어나 처음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눴던 열정, 사랑을 잃고 경건한 설교자가 되어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대주교로서의 삶… 파브리스는 그 모든 질곡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수도원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그 짙은 회한의 심경이 작가가 강조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니었을까. 파브리스는 너무나 천방지축이어서 숱한 사고를 쳤지만, 귀한 출신성분과 탁월한 외모, 거기 더해 미워할 수 없는 순수한 품성의 덕으로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기어코 모두의 존경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 모든 영욕의 세월은 덧없음이라는 주제로 귀착되었다. 스탕달이 그의 나이 55세, 세상을 뜨기 4년 전에 자기 삶을 되돌아보며 내린 결론이 아마 그것일 터이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주인공에 공감하고 몰입하고 동일시하는데, 그 주인공이 속 터지는 짓거리만 반복한다면 작품을 읽는 시간 내내 체증을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이 그러했다. 전쟁의 의미와 실상도 모르는 귀공자가 도대체 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쟁터에 뛰어드는지, 책임질 자신도 없으면서 왜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고 심지어 임자가 있는 여자를 건드려 온갖 갈등의 싹을 퍼뜨리고 다니는지, 자기 하나 지키겠다고 발벗고 나선 부하와 시종들의 안위는 왜 전혀 생각도 안 하는지, 특히 자기 삶 전체를 걸고 못난(하지만 잘생긴) 조카 하나 구제하겠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고모의 속을 왜 늘 뒤집어 놓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탈옥 작전이 성공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다시 파르므로 돌아와 명예를 회복하려던 찰나, 백방으로 노력하던 고모와는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자기가 탈옥했던 성채에 자기 발로 돌아가 투옥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2-318p). 고모와 그의 애인 모스카 백작을 비롯하여 탈옥 작전에 목숨을 걸고 매진했던 무수한 조연 및 엑스트라를 두 번 죽이는 짓이었다. 아기를 빼돌리려고 술수를 쓰다가 결국 아기와 사랑하는 여인을 둘 다 잃게 되는 결론은 두말할 것도 없다(2-421p). 이렇게 철딱서니 없고 이기적인 인간을 왜 우리는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800쪽에 걸쳐 읽어주며 참아줘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극단적으로 치우친 문학의 기능 하나를 본다. 문학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 삶은 우리네 지리멸렬한 일상과는 다소 결이 다른 무언가다. 우리는 삶이 여행이기를 바라지만, 실상 삶의 9할은 밥 먹고, 출근하고, 집에 와서 다시 밥 먹고, 씻고, 자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여행, 일탈, 쾌락, 광란 등 디오니소스적 순간은 대체로 이드의 영역에 묶여 있다. 우리는 소비사회의 동력원인 소비 주체, 혹은 산업사회의 효율적 생산도구로서만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디오니소스적 순간을 그렇게 자주 허락할 수 있을 정도로 관대하지 않다. 일탈에 대한 대리체험과 헛배부름은 문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충족되도록 위임된다(그리고 오늘날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재위임을 받는다). 우리는(아니 19세기 중반 격변기의 부르주아 독자는) 잘생기고 돈 많은 유혹자 옴므파탈의 자유분방한 활극을 통해 전쟁터와 정치판을 가로지르며 반동주의자와 모사꾼을 한껏 조롱하고, 목숨을 걸만한 감질나는 사랑도 맛본다.

작품은 1838년에 쓰였고, 작품 속 시간은 1815년 워털루 전투를 전후로 시작하므로, 거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봐야 한다. 당시는 프랑스혁명이 끝나고 공화제와 왕정이 엎치락뒤치락하던 격변기였다. 역사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전제군주가 지배한 파르므 공국은 1545년에 처음 성립되어 중간에 몇 차례 침략을 당했지만 1859년까지 공국으로서 외형은 유지됐다. 스탕달이 작품을 쓸 때쯤에는 외형적으로 여전히 구시대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언제까지고 막을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대다수가 암암리에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작품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의 문헌을 몰래 읽는 불손한 자들이 등장하며, 그 세력의 부상을 걱정하지만 당장 딱히 조치할 바는 없는 기득권의 불안한 태도도 엿보인다. 절대권력자 대공은 대를 이어 과도한 불안감과 과잉된 자의식을 내비치며 과도기적 시대의 징후를 예증한다. 기회주의자 라시가 온갖 비굴함을 견딘 끝에 백작이 된 이후, 대대로 귀족이 아닌 사람은 궁정 연회에 출입하지 못하게 조치하는데, 이는 계급사회의 끝을 직감한 기득권이 보여 줄 수 있는 최후의 발악에 해당한다(2-386p).

스탕달은 잠재적 독자층인 부르주아나 귀족이 모두 선망할만한 매력적인 인물 하나를 내세워 봉건 귀족의 화려한 전성기와 씁쓸한 몰락을 압축적으로 투사해 놓았다. 사상적 지향성과 실제로 선택한 삶 사이에서 간극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젊은 혈기와 반항심으로 황제에 거스르기도 했고, 새로운 시대에 호기심을 품고 불온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귀족적 고귀함과 경제적 뒷배경을 내세워 위기를 극복했다. 온갖 악행을 합법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귀족이라는 자의식은 일상의 평온한 행복을 앗아가 버리는 족쇄였으면서도(1-289p), 위기의 순간에는 자신에게 보장된 특권적 기회가 당연히 스스로 누려 마땅한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1-362p). 그에게 자유주의적 기질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그는 세습적 특권의 조건 아래 성장했고, 그 조건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필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두할 수 없었다. 모든 영예를 버린 순간에도 최소한의 연금은 남겨놓았으며, 은둔한 곳도 수도원이므로 날림으로 얻은 종교 지도자로서 정체성도 끝까지 놓치지 않은 셈이다.

객기와 열정으로 흥하고 망했던 파브리스는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맞았던 스탕달이 그려낼 수 있는 혁명적 가능성의 한계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 가능성은 어떤 공간인지조차 묘사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수도원이라는 최후의 영토에 갇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침전했고, 거기서 다른 시대, 다른 주인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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