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하다는 프리즈 서울에 가봤다. 온갖 작품들의 홍수를 헤엄칠 수 있어서 좋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입장료 8만 원은 좀 심했다. 입장권도 팔고, 작품도 팔고, 커피와 도넛도 판다. 작품도 많이 팔렸겠지만, 안 팔리더라도 크게 밑질 것 같지는 않다.
원래 아트페어를 찾아서 가는 편은 아니다. 작품들이 맥락 없이 우주를 떠다니는 느낌이라 산만하고 피곤하다. 맥락이 없으니 요점과 맹점을 짚어내는 재미도 없다. 그 좋다는 프리즈에 가봐도 그 생각은 역시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백화점을 둘러 볼 때는 구매의사가 전혀 없어도 ‘그래도 혹시나 정 마음에 들면 하나 정도는 살 수도 있겠지.’라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품기 마련이다. 그 가능성이 발걸음에 동력을 부여하고, 이 공간에 내가 존재함을 합리화하며, 앞으로 나가게 한다. 하지만 프리즈에 걸린 작품들은 어차피 내가 살 여력과 가능성이 0%이니 나는 장소의 목적성에서 완전히 밀려난 존재가 되어버리는 셈이었다. 잠재 고객군에서 이탈한 채 작품과 사람 사이에서 계속 떠밀려 다니기만 하니 작품에서 의미 있는 감상을 끌어내기 어려운 구조다.
작품 구경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역시나 평균 이상의 개성과 매력으로 무장하고 프리즈를 찾았다. 언제 다시 꺼내 볼지 모르는 사진을 연신 찍어대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시대 미술 최첨단의 현장에 나도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아마도 8만 원은 이 지점에서 가장 강력한 마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천 원 내고 보는 전시가 구성은 훨씬 뛰어나겠지만, 진정으로 관여도가 높은 관객의 비율은 프리즈가 더 높을 것이다. 비싼 돈을 냈으니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애초에 여기 올 일도 없거니와 일단 오고 나면 뽕을 뽑아야 하니 열의를 다해 둘러보게 된다. 그 열정이 또 다른 누군가의 열정과 뒤섞이며 시너지를 일으키고, 광활한 전시장 전체가 미술 숭배자들의 벅찬 순례로 넘실거리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억지로 끌려온 짐꾼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봐서 반가웠다. 정물을 가장한 거장의 조형미 연구는 끝없는 변주를 낳아 여기까지 이어졌고, 군데군데 네다섯 점은 온 듯했다.

체감상 가장 많이 출품한 작가는 양혜규,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艾未未) 같다. 이들은 여러 갤러리에서 메인급으로 소개되었다. 특히 아니쉬 카푸어의 둥글고 매끈한 오브제는 여기저기서 왜곡된 상으로 관객의 형상을 반사했는데, 그 앞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계속 북적거렸다.
나는 오사카의 마르코(Marco) 갤러리가 소개한 요시무라 타이치(Taichi Yoshimura, 葭村太一)의 작품을 유심히 봤다. 부스 전체가 요시무라의 작품으로 채워졌는데, 그 근처만 가도 짙은 나무 향이 느껴졌다. 마감을 덜 해 정과 끌 자국이 투박하게 남은 조각인데, B급 만화 캐릭터 또는 일본 특유의 요괴 같은 형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국적 불명의 글씨가 적혀 있기도 하다. 조형미가 있어 작품 하나에 다가가 팔짱을 끼고 지긋이 바라보노라니 친절한 부스 직원이 다가와 설명해준다. 작가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래피티, 광고판, 불법스티커 등 놓치기 쉬운 도심 속 B급 형상들을 수집해 그것을 깎아 항구화하는 형식의 작업을 진행한단다. 그러고 보니 개체의 자유분방한 윤곽은 그래피티의 언어와 똑 닮았다. 건네받은 브로셔에는 작품 이미지와 QR코드가 연계되어 있는데, 그 코드를 찍으면 구글맵과 스트리트뷰로 이동한다. 이미지의 원천이 실제 놓여 있는 특정 장소의 좌표와 사진을 보여준다. 장소의 실존적 감각과 작품의 비정형적 형태를 병치해 놓았다.


B급 개체들은 도시에서 축출되어야 하는 이미지로 간주되기 쉽고, 실제 대부분 국가에서 경중은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래피티 같은 활동은 법적 처벌 대상이다. 일본처럼 공공장소에 대한 강박성이 두드러진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이미지들은 도시문화에서 소외된 자들, 혹은 아방가르드적 소외됨이라는 윤색된 정체성을 전유하고 싶은 자들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유용한 시각적 증거물이지만, 체계적으로 보존 및 연구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간혹 주류 미술계에서 그래피티를 일종의 방법론으로 채택하거나, 언더그라운드 창작자가 주류 갤러리로 진출하는 드문 사례도 있기는 하나, 그런 경우 법망을 초조하게 빗겨 가거나 유린하던 특유의 긴장감은 금세 휘발되어 버리곤 한다. 화이트큐브에 걸린 그래피티는 뒷골목의 지린내로부터 해방되겠지만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드리핑과 외형적 차이점이 미미해지면서 순식간에 변절자의 오명을 뒤집어쓴다.
요시무라는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언젠가 사라져버릴 B급 개체들을 정성 들여 나무에 새겨 항구화했다. 그러면서도 성긴 마감처리로 남겨 두면서 미완성의 동역학적 여운은 살렸다. 거리의 예술에는 원래 완성이 없는 법이다. 도심의 한 귀퉁이 평면에 빠르게 달라붙었다가 이내 풍화작용에 내맡겨진 그 개체를 사방에서 돌려 볼 수 있는 입체로 재해석했다는 것 자체가 기록자로서 조각가의 작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여담이지만, 부스 직원이 유독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와 설명해주고, 자료도 세 장이나 갖다 줬다. 아마도 내가 파티 참석용 자켓을 정갈하게 착용하고 간 점이 주효했으리라. 아무래도 관람객의 주류를 형성하는 캐주얼한 차림의 20대 여성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중후하고 괜히 ‘있어 보이는’ 내가 좀 더 잠재 고객에 가깝다고 느꼈겠지… 그가 실제 내 구매력을 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지면으로나마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된 점 심심한 사과를… 그런데 다른 부스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아트페어에서 친절한 환대와 설명을 원한다면 최대한 차려입고 가시길. 반대로 주목받지 않고 쓱 둘러만 보고 싶다면 추레하게 입고가는 편이 낫겠다.
인상 깊었던 또 다른 곳은 고문서와 고지도 부스였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중세 채색 필사본이 쇼케이스와 책장 여기저기 한가득 꽂혀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바티칸 지하에 숨겨진 교황의 개인용 비밀 도서관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프리즈 측에서는 이 공간을 포함해 미술사적 거장들의 작품을 집중해 놓은 구간을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라고 부르고 있었다. 줄 서서 들어가는 피카소(Pablo Picasso) 부스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정말 마스터스 칭호가 아깝지 않은 컬렉션이었다. 이 중 몇 개나 팔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싣고 온 것일까? 진짜 팔리기는 할까? 이렇게 연약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인류 문화유산급 고서가 국경을 넘나들어도 되는 걸까? 이 부스의 기획 타당성과 최종 결괏값이 심히 궁금하다.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스는 다름 아닌 노티드 도넛이다. 노티드가 원래 이렇게 일시적 행사장에 팝업으로 들어가기도 하나? 나는 처음 봤는데, 프리즈 측에서 F&B의 ‘급’도 상당히 신경 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급’에 비례하여 좌석 수도 좀 신경 써주면 안 되나. 맛난 크림 도넛은 쓰레기통 옆에 서서 먹어야 했다. 그날 앉아 계셨던 행운아분들에게 본의 아니게 따끔한 눈빛을 쏘게 되어 죄송합니다. 다리가 너무 아팠거든요. 우리의 잘못이 아니죠. 구조적 문제니까요.























No Day But Today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