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면 창작실험실 개관전 – “창작실험실: THE TRAKTeR” 展

담백한 첫 걸음

요즘 소멸위기에 직면한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문화예술 토양이 특히나 척박하기 이를 데 없던 충북에 새로운 전시 공간이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다녀왔다. 그간 농기계훈련관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약 4년 동안은 소임을 마친 채 방치되어 있던 충북자치연수원 내 한 건물을 충북문화재단이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을과 전답에 둘러싸인 적막한 지역에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문화예술 공간 하나가 불쑥 생겨난 모양새가 됐다. 충북문화재단은 이 공간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도민의 문화향유 공간” 확충을 추구하면서, 나아가 청주 구도심 지역의 재생까지도 기대할 것이다.

좋게 말해 주목받지 못했던, 나쁘게 말해 소외되어 낙후된 어떤 지역에 문화예술 공간을 침투시켜 쇄신을 꾀하려는 시도들은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문화예술 행정가들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입에 닳도록 거론하며 잘 만든 문화예술 플랫폼 하나가 지역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실상 그 정도의 압도적 스펙터클을 갖추지 못한 대개의 시도는 용두사미가 되어 소리소문없이 관심에서 멀어지게 마련이고, 일부 예외적인 성공사례들은 성수동, 연남동, 문래동 등에서 익히 봤던 젠트리피케이션의 공식을 따라 대형 베이커리 카페와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최종 승리로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비정형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스펙터클을 뿜어대는 초대형 미술관을 건설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으므로, 문화예술 행정가들의 차선책은 용도를 마친 구시대의 산업 인프라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배경에는 구시대의 물리적 공간이 동시대의 미감과 융합해 생경한 미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부수적으로는 경제성과 지속가능성까지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계산에 따라 카세트테이프 공장(팔복예술공장), 청주연초제조창(문화제조창), 석유비축기지(문화비축기지), 와이어공장(F1963) 등 지역을 막론하고 구시대의 산업 인프라를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가덕면 창작실험실이 이러한 성공적 사례들의 뒤를 이으려면 그 정체성의 향방을 가늠할 첫 전시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전시 기획을 충북문화재단이 직접 담당하지 않고 월간미술에 맡겼다고 하는데, 일단 그 선택은 옳았다. 재단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료 통제가 강하고 정치적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는 지자체 산하기관의 본질적 정체성에는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재단이 직접 기획했다면 첫 전시라는 막중한 의미가 주는 중압감에 눌려 고리타분한 지자체 홍보성 전시로 변질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시의 전반적 기획은 담백했고, 작가의 구성과 작품의 질 면에서도 홍보성 전시로 치부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재단이 월간미술에 전시 기획의 자율성을 얼마만큼이나 열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미적 담론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첫 전시로서 의미는 충분하다.

여섯 명의 청년 작가가 출품했고, 이 중 세 명이 충북 출신 작가였다. 작품 전반에 걸쳐 지역성은 전혀 읽을 수 없고, 그저 동시대를 바라보는 청년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과 표현이 중심을 이뤘다. 전시 제목은 농기계훈련관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던 트랙터(traktor)에 인칭 접미사(-er)만 붙인 것이다. 농기계에서 예술가로, 공간의 용도 변경에만 오롯이 주목한 제목처럼, 전시도 특정한 주제를 내세우지 않고 각 예술가가 공간을 재해석한 방식의 다채로움을 있는 그대로 펼쳐 놓았다.

김윤섭(b.1983)은 미술사적 고전에서부터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동시대 미술 아이콘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원천에서 길어 온 시각적 개체들을 한 화면에 뒤죽박죽 섞어 놓은 회화를 선보였다. 요즘 이런 회화가 많이 보인다. 과거 회화는 어떤 대상을 그 시대의 눈으로 재현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증명했고, 이후 아예 재현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었다. 그리고 이제 이미지 과잉의 시대를 통과하며, 회화는 재현의 여부를 떠나, 우리 뇌를 부유하는 이미지들의 홍수라는 현상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하이퍼링크의 플로우를 타고 쉼 없이 시지각의 망을 투과하는 이미지들의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포착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김윤섭은 그 유동하는 흐름에 중세 제단화의 형식으로 영원성을 덧입혀 아이러니한 반향을 일으키고자 한다. 천장의 전등을 끄고, 창문의 암막도 굳게 닫아 잠그고, 어둠 속 한 줄기 빛에 뒤죽박죽 이미지들의 난장을 펼쳐 보임으로써 화면의 역동성과 공간의 무드가 창출하는 부조리를 증폭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이미지를 식별할 조명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촬영용 조명을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세워두었다. 아무래도 관객의 동선을 가로막는지라 세련된 방식이라고는 볼 수 없다. 더 세련된 대안이 있었을 법하나, 오래된 산업 시설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장소성이 이러한 투박함에 면죄부를 주는 측면은 분명히 어느 정도 있다고 봐야 한다.

이창운(b.1986)은 가장 넓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테인레스 레일 구조물을 설치했다. 스펙터클 면에서는 이 전시의 주인공 대접이다.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동력이 가동되면 체인이 천천히 돌아가며 쇠공을 위로 끌어 올려 레일 상단에 툭 던져 놓는다. 공은 무작위로 좌우에 배정되고, 이후 중력을 타고 돌거나 꺾이면서 천천히 하강해 원위치로 되돌아온다. 설명에 따르면 공이 첫 단계에서 무작위로 좌우로 배정되어야 하나, 내가 그 공간에서 계속 관찰하기로는 우측 레일로만 이동했다. 첫 관문에서 어딘가 균형이 깨진 모양이다. 아니면 무작위라는 공식적 설명 자체가 그 설명의 진실성 여부를 판가름하고 싶은 불온한 관객과의 한바탕 진실게임을 부추기려는 의도된 트릭일 수도 있다. 만약 그런 트릭이라면 좌와 우에 각각 배정된 공의 실제 통곗값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측하지 못한 나의 패배이고, 이 게임에서 작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란 아무도 없다. 표면보다 이면에 더 많은 진실을 감추는 동시대 미술에서, 우리가 갖는 비평적 권한이란 이토록 깃털같이 가볍다. 작가는 양계장에서 레일과 움직임을 결합하는 영감을 얻어 현대인의 은유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은유에 따르면,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정해진 궤적을 따르게 되고, 두 갈래 길에서 어디에 놓이든 본질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경로를 따라 무기력하게 흘러간다. 이 흐름을 바꿀 방법은 하나다. 어느 미친 관람객이 이 무기력함에 분노를 느껴 레일을 부숴 쇠공을 탈출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비로소 바닥에 떨어지게 된 쇠공이 또르르 구르다 멈춰선 그 순간 과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지는 의문이지만.

고정원(b.1986)은 농기계훈련관 시절의 현판과 안전제일 표지에 형형색색의 조명을 달아 낯선 감각을 유도했다. 원본의 기호를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덧입힐 수 있는 구성이었다. 다른 작가들보다는 장소성에 주목한 편이다. 그가 전시한 공간에는 공구 선반이나 현황표도 그대로 남아 재해석된 오브제의 세련미와 대조를 이루었다.

임승균(b.1984)도 장소성을 활용했다. 독립적인 하나의 공간에 철제 구조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브제를 느슨하게 배치했다. 창문에 필름지를 덧대 자연광이 원색으로 뒤섞여 들어오며 구조물과 어우러지는 감각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한데 내가 갔던 시간의 채광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황학삼(b.1984)은 수직의 철기둥에 위태롭게 매달린 머리 없는 인간 형상을 묘사했다. 그 존재들이 기어코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정점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들이 매달린 철제 구조물은 철근 콘트리트 공사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 2층 콘크리트 타설을 마친 후, 그것이 굳기까지 임시로 상부 하중을 받쳐줘야 할 때 사용한다. 노가다 용어로는 ‘사포드’ 혹은 ‘쎄포트’라고 한다. 당연히 support에서 파생된 용어다. 건설 현장에서야 그 이름대로 든든한 지지체 역할을 하겠지만 이곳 전시장에서는 그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 가냘프기 짝이 없어 보이고, 툭 치면 넘어갈 듯 위태롭기까지 하다. 물론 한두 개 세워서는 현장에서도 쓸모없을 것이다. 충분한 수량을 밀집해서 세워 줘야 지지체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꿈틀거리며 버티는 인생이라도 같이 용쓰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러한 공존의 감각이 단 한 칸이나마 올라갈 힘을 주기도 한다. 설령 내가 못 올라가더라도, 나 대신 미끄러지는 누군가를 보면서 얄궂은 안도감을 느꼈다면, 그 저열한 쾌감마저도 공존의 이점이 아닐까.

김준서(b.1982)는 고립된 방에 암막을 치고 26개의 19인치 모니터를 3열 횡대로 층층이 세웠다. 각 화면에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래봤자 어차피 토종 한국인일 법한 26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리번거리며 어색해하는 침묵의 시간을 거쳐, 이윽고 합창이 시작됐다. 특별한 가사는 없는, 가톨릭 성가의 부자연스러운 사이버네틱스 믹스 버전 같은 합창이 흘러나오는 동안, 어둠 속에서 얼굴만 두둥실 든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맡은 성부를 책임지고자 나름 용을 쓴다. 작가는 합창 음원뿐만 아니라, 26명의 합창단원 얼굴도 지인의 사진과 작가 자신의 표정 변화를 재조합해 직접 만들어냈다. 예전에 제대로 된 멀티미디어 컨텐츠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원이 달라붙어야 했지만, 이제는 재주와 시간과 열정만 있으면 작가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 만에 별의별 걸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다. 26명의 얼굴은 얼핏 보면 나이와 성별이 모두 다르지만, 한 사람의 표정 변화로 재구성해 낸 이미지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면 분명 어딘가 닮았다. 어색한 기다림과 침묵의 시간을 거쳐, 함께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해내고 나면, 나와 전혀 관계없던 내 옆의 누군가도 이제는 다시 잘라낼 수 없는 굵은 인연의 끝에 엮인 듯한 기분이 든다. 그 공통분모는 한눈에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으나, 일단 드러나고 나면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도심 속 야생동물처럼 애써 찾는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가덕면 창작실험실 개관전 ‘THE TRAKTeR’ 展은 공적 문화예술 지원기관이 야심을 내려놓고 외부 전문가에게 기획을 위임할 때, 그다음 행보를 기대할만한 담백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화예술 황무지에 개관한 이 공간에서의 첫 전시와 앞으로 펼쳐질 시도들이 양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일단 얄팍한 계산은 접어두고, 이번 첫 시도처럼 뭔가를 주입하려 애쓰기보다는 동시대 미술의 최신 흐름과 다양성에 주목하면서 미감을 확장시킨다는 대원칙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면, 문화제조창에 이은 또 하나의 지역사회 미술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근 지역을 미술과 문화 중심으로 블록화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적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나, 현재 백지상태에 가까운 여건을 살펴보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쉬운 대안을 하나 제시한다면, 창작실험실 인근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이 몇 곳 있는데, 이들 업체와 연계한 이벤트나 홍보 전략을 개발해 교외 드라이브 코스로 연계 방문할 수 있는 동선을 짜보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 전시 온라인 브로셔: https://m.site.naver.com/1gRf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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