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워드프레스 앱(정확히는 Jetpack 앱)에서 알림이 하나 떴다. ‘자의식 쩌는’ 이 홈페이지가 10만 뷰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조회 수다. 2016년 8월 12일에 첫 글을 게시했으니 2,822일 만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처럼 트래픽이 왕성한 매체였다면, 하다못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네이버 블로그였다면 훨씬 빠르게 달성했을 수도 있는 수치다. 좀처럼 검색 알고리즘의 성은을 입기 어려운 가입형 워드프레스 환경에서 7년 9개월을 버텨 얻은 결과다.
비교 대상이 없으므로 좋은 성적인지, 나쁜 성적인지 모른다. 조회 수를 가지고 성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얄팍한 생각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뭔가 생각할 거리를 얻어 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매일 같이 천 명이 찾아온들 빈손으로 썰물처럼 휩쓸려 나간다면 무슨 소용인가. 상술했듯 이 홈페이지는 알고리즘의 성은도 없고, 신매체 특유의 활달함도 없다. 거기다가 내가 쓰는 글의 주제나 화법도 대중 친화적인 무언가와는 거리가 멀다. 남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풀어냈다고 자부한다. 그 과정은 독백에 가까웠지만, 내가 감지할 수 없는 그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분명 가 닿으리라 믿으며 그렇게 어두운 무대를 지켰다. 오롯이 내 시간과 돈과 정신력을 쏟아가며 7년 9개월을 묵묵히 버틴 끝에 이렇게 작은 이정표에나마 도달했다. (질은 모르겠으나) 양적으로는 이 정도면 만족한다.
9할은 독백이었지만, 틈틈이 되돌아온 1할의 좋았던 반응들이 그 지난한 시간을 잊게 해주었다. 내가 쓴 글에 관심을 보이고 댓글을 달아 주거나 연락해 준 이들은 모두 생생히 기억한다(유니콘처럼 희소한 존재들이니 그럴 수밖에!). 어떤 글이 인상 깊었다며 정식으로 자기 매체에 원고를 투고해보라고 기회를 준 이도 있었다. 인생의 크고 아름다운 창 하나가 열렸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내가 리뷰한 전시나 작품에 대해 해당 작가에게 글을 보내준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작가들로부터 받았던 감사의 피드백은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쓴 서평을 읽고, 그 책을 자기도 읽고 싶은데 도저히 구할 수가 없다며, 내 책을 빌려달라고 연락했던 이도 있었다. 서로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우리는 택배를 통해 그 작은 책을 빌려주고, 또 돌려받았는데, 그가 나중에 답례로 보내줬던 기프티콘은 꽤 오랫동안 옅은 미소를 짓게 했다.
무엇보다 이 홈페이지가 내 인생에서 점유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스스로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언제 어디서든 당당히 표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내가 보고, 읽고, 느낀 모든 것에 관해 순전히 내 의지에 따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적어 내려갈 공간이 생김으로 인해 이전보다 뭔가 하나라도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두서없는 사고의 흐름이 훨씬 간명하게 정식화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역시 글을 씀으로 인하여 가장 득을 보는 이는 글을 쓰는 이, 즉 본인이다. 적어도 내가 정식으로 책을 펴내기 전까지,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지해주는 이 공간의 중요성이 퇴색될 일은 아마 결코 없을 것이다.
당신은 관심 없겠지만 나로서는 흥미 있는 몇 가지 사실:
홈페이지 첫 화면을 제외하고,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글은 다음과 같다.
미술사/사상사의 칼날 같은 명언들 ———– 14,584회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예술과 문화(Art and Culture: Critical Essays)」 ———– 2,957회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 2,761회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 동시대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 1,707회
테리 스미스의 「컨템포러리 아트란 무엇인가」 ———– 1,616회
명언록이야 워낙 인용된 인물과 글 수 자체가 많으니 검색에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머지는 어려운 책들에 대한 서평인데, 책의 자세한 내용을 쉽게 풀어 쓴 설명이 필요한 독자들이나 레포트 등을 써야 하는 대학생들이 주로 참고하는 모양이다. (이렇듯 미술에 관한 어려운 책을 아마추어 관점에서 쉽게 풀어 쓴 책이 필요하다고 내가 누차 강조했지만, 그 어떤 출판사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방학이 되면 트래픽이 감소하는 것으로 볼 때 대학생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형식으로 내 글을 참고하거나 인용하든 상관은 없지만, 나의 오독이 누군가의 배움의 길에 훼방을 놓지 않기만을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테리 스미스의 책에 대한 서평은 구글에 책 제목만 쳐도 내 글이 최상단에 노출될 정도로 거대 플랫폼의 인정(?)을 받고 있다.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고 자평해 본다….
최근 365일로 한정하면, 아래 게시물도 높은 조회 수를 보인다. 역시 약간 어려운 책의 서평을 많이들 찾는다.
미술 전시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썼지만, 그런 글이 조회수 상단에 들어가는 일은 별로 없다.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첫해인 2016년에 글 하나당 단어 수는 평균 476개였는데, 2020년에 916개가 되더니, 2024년 현재는 1,322개에 달한다. 반면, 글 수는 2018년에 97개였는데, 2023년에 28개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글 수는 감소하고, 글 하나당 길이는 증가하는 양상이다. 스스로도 글 하나하나에 들이는 공력이 지나치게 높아졌음을 인식하고 있다. 누구도 읽지 않을 것 같은 글을 여섯 시간 동안 쓰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회의스럽기까지 하다. 긴 글 공포증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정답은 없지만 난 그저 (내가 정한) 이 홈페이지의 캐치프레이즈를 따를 뿐이다. “그냥 이대로 흘려 버릴 순 없으니,”
끝으로, 그동안 방문해주신, 또 앞으로 방문해주실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별일 없는 한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찾아 주시든 말든, 반응이 있든 없든 저는 묵묵히 걸어갈 겁니다. 다만, 그 행보가 여러분들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묵묵히 걸어감’은 그 자체로 공동체 내의 존재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바로 여러분 같은 소중한 존재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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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조회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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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히 와서 글 읽고 갑니다. 잘 읽었다는 작은 흔적이나마 남기고 가려 댓글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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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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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레스 리더에 추천글로 떠서 와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ㅎㅎ
워드프레스 번역팀 활동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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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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