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복의 「처음 읽는 한국고고학」

지식의 고고학, 그리고 진짜 고고학

제목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의도에 충실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고고학책이다. 오랜만에 선사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적 이미지들을 쭉 훑어보자니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오래된 도판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들춰봤던 과목들이 미술, 사회과 부도, 그리고 역사(혹은 국사)였다. 도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교과서들이다. 아날로그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 서서히 디지털에 스며든 세대답게, 내 학창 시절의 시각 문화는 지금처럼 풍요(실은 풍요를 넘어선 광란)롭지는 않았다. 시각 문화의 확고부동한 중심에는 TV가 있었고, 그 곁다리에 신문, 잡지, 광고 전단 따위가 있었다. 이전 세대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이미지가 귀했고, 늘 그것에 굶주렸다. 새로운 이미지를 접하면 허겁지겁 빨아들였다. 교과서 속 정형화된 이미지들조차도 달았다. 3월이 끝나갈 때쯤 되면 이미 1년치 진도의 이미지를 모두 빨아들인 후라 다시금 새 교과서를 받고 싶어졌다(당연하게도 이 말이 빨리 예습하고 싶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부정한 유인원의 허리가 점차 펴져 비로소 현생 인류가 되는 연속적 도상, 움집을 둘러싸고 아기를 둘러메거나 의기양양하게 사냥감을 들고 돌아오는 선사시대의 생활상, 들판에 우뚝 선 고인돌과 잔뜩 금 간 온갖 석기 등 교과서 속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고고학 이미지들은 상상력의 기폭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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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 고고학책 한 권 읽고 고고학이란 무엇입네 하고 읊조린다면 그야말로 코미디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푸코(Michel Foucault)가 그토록 집착했던 ‘지식의 고고학’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은 알겠다. 고고학은 역사학과 달리, 기록되지 않은 시기를 그 본령으로 삼는다. 고고학자는 기록되지 않는 시대의 물리적 증거에 해석의 살을 붙이고, 그 해석의 설득력을 바탕으로 자기 이름을 남긴다. 물론 역사 시대를 다루기도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해서는 역사적 서술에 실체적 증거를 맞물려 해석하므로 역사학과 어느 정도 발을 맞추게 되고, 고고학자만의 독특한 고독, 고뇌, 진퇴양난, 그리고 땀 냄새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다 할 사료가 없이, 수수께끼 같은 물질적 증거만이 고고학자의 눈앞에 덩그러니 노출된 상황에서 이 증거를 과학적 원리나 또 다른 증거와 엮어 일말의 가능성만을 어렴풋이 내비치는 대안적 서사로 풀어낼 때, 고고학은 역사학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푸코는 그의 짧은 지적 작업의 대부분을 대표작 제목이기도 한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자기만의 사상적 장르에 천착했다. 그는 아주 고차원적이고 품격 있는 철학적 논고에서부터 행정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문서들을 거쳐 단말마로 스쳐 지나가 버리곤 하는 가벼운 언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갖 잡다한 텍스트를 수집하고 꼼꼼히 엮어 한 시대에 특정 문화권이 폭넓게 공유하는 인식적 구조를 밝혀내곤 했다. 이때 그의 고고학은 연속적 역사의 흐름이나 포괄적 전체성이 아닌, 분산/파생/불화/분절/복수성에 기반해 앎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을 의미했다.

보편적인 상식의 견지에서, 역사에는 시계열적 연속성과 흐름이 있게 마련이고, 그러한 인과관계 혹은 그 인과관계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물질적 구조를 ‘물 흐르듯’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것이 고고학의 사명이라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푸코가 앎의 불연속성을 규명하는 방법론적 은유로서 고고학을 끌고 온 것은 다소 모순이 아닐까? 이 교양 고고학 입문서를 읽다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사료가 없는 시대의 물질적 증거를 다루는 고고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 자체가 몇 없다. 탄소연대측정 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료의 시대를 추정하는 편년 작업이 주를 이루고, 그밖에 유사한 양식끼리 엮어 특정 문화권의 시공간적 배경을 유추하거나 형태를 분석해가며 당대의 생활상을 기술하는 정도가 고고학자의 과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작업에 있어서 고고학자가 스스로 자기 발견에 대해 확신하는 수준은 일반 대중이 기대하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인디아나 존스」로 대변되는 대중 매체 속 고고학자 이미지가 창출한 강력한 시뮬라크르 탓에 보편적 대중은 고고학자의 발견이 과거 어느 시점에 대한 어느 정도 확실한 실체적 진실이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고고학자는 자기 연구 결과물을 그 정도로 확신하지 않는다. 하나의 편년은 또 다른 편년에 근거하고 있으며, 근거로 쓰인 그 편년도 또 다른 편년에 근거하고 있다. 편년이 과학적 근거에 따라 수학적으로 계산된 것일지라도, 그 과학적 근거에 토대를 제공한 원천적 근거나 전제가 그야말로 철옹성 같은 절대 진리인지는 미지수다. 그저 집단지성에 의해 합의에 이른, 현시점에서 학계가 수용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공식 중 하나일 뿐이다.

큰 틀에서 모든 고고학적 추정은 이처럼 순환 참조에 근거한다. 이는 하나의 가정이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추정의 성이 한순간에 모래성이 되어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고고학의 본질은 억측에 억측을 더한 학문이며, 데리다가 그토록 주의 깊은 독해를 요구한 상호텍스트성의 대표 사례와도 같은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명확한 사료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면서도, 연속성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크기에, 불연속성과 단절에 주목하는 ‘지식의 고고학’에 방법론적 은유로 쓰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막연히 연속적이리라 추정되는 곳에서, 그렇기에 더더욱 세심하게 불연속성에 주목하면서 분절된 시공간적 장들을 드러내고 기술하기. 그 작업을 독려하기에 고고학은 가장 적확한 은유였고, 다른 한편으로 사상계와 고고학계, 양쪽의 각성을 동시에 촉구하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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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정년 퇴임한 이선복 교수는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겸양의 자세를 이 책 전반에 걸쳐 몸소 증명한다. 이 책에는 노교수의 지식이 응집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은 무엇이다.”라는 확신의 문장보다는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다.”, “아직 밝혀진 바는 거의 없다.”, “~~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그 가능성만이 논의될 뿐이다.” 등과 같은 불확실의 문장이 더 많다. 저자는 오랜 연구 끝에 고고학의 본질이 불확실과 추정의 미학임을 통달한 듯하다. 어떤 분야든 간에 어쭙잖게 아는 사람이 더 확신에 차 떠드는 법이다. 허나 불확실하다는 말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불확실한 무언가라도 나만의 주장과 논지는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공론장에 내던져져야 한다. 아무 주장도 없다면 아무 담론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몇몇 단편적인 연구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연구의 자세다. 우선, 편년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시대상 및 생활상의 규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몇 가지 방법론이나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편년의 라벨을 부착하는 작업은 고고학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더 확실한 편년을 주장하며 기존의 정설을 뒤집고 학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싶은 야심은 모든 학자의 가슴 어딘가에 도사리는 확실한 원동력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독자들이 고고학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 주는 것이다. 이 땅을 거쳐 간 누군가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자고, 죽고, 의례를 치러 왔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하나의 증거를 보더라도 그것을 각자 자기만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저자성과 서사적 미학에 닿고 싶은 것이다. 구체적 생활상에 대한 통찰이 없다면 기계적 계측의 반복에 그칠 수밖에 없고, 고고학과 대중의 접점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견뎌 현재까지 남아 있을 흔적은 고이 간직된 무언가이고, 그것은 주로 권력자들의 산물이므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거의 없다. 저자는 화려한 문명의 흔적을 논할 때도 늘 당대 보통사람들의 움집을 이야기한다. 신석기나 청동기 정도만 상징할 법한 움집이 조선 시대까지도 살아남은 보통사람들의 주거 형태였다는 강조는 기술과 제도의 혁신 가운데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사회의 말단은 큰 틀에서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편견에 편승하고 그것을 부추기는 연구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 고고학계는 무언가 훌륭해 보이는 사료들은 대부분 외세, 구체적으로는 북쪽 어딘가를 거쳐 전달받았다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러 지역에 분포한 사료들의 형식적 유사성은 선으로 연결된 전파의 도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선 긋기는 이 땅에서 뭔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나 역방향으로의 전파 가능성을 원천 부정하는 측면이 있다. 또 우리가 현재 그어 놓은 자의적 경계에 함몰되어 과거를 역으로 재구성하려는 경향도 문제다. 이 땅에 우리의 선조가 일정한 민족적 실체를 가지고 과거 오래된 어느 시점부터 모종의 동질성을 공유하며 살았으리라는 생각은 오늘날 공공연한 민족국가 신화를 부당하게 과거에 투사한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모종의 정신이나 가치를 미화하면서 자신의 뿌리로 전유하고, 나아가 현재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또 그들은 자기 역사적 뿌리를 계속 뒤로, 거기서 다시금 뒤로 끌어당겨 미지의 시원적 지점까지 옮겨다 놓으려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역사를 신화적 지점까지 끌어당겨 재구성하려는 ‘권력-학술 복합체’가 득실거리는데, 우리까지 그런 경향에 편승하며 품격을 스스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앞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사상적 지평이 단절의 알레고리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하자. 유사한 좌표를 공유했다고 하더라도 시대를 초월한 연속성이 존재할 이유는 없으며, 그런 연속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늘 의심스럽다. 지금은 단절을 긍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품격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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