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열림 Open Studio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과 오픈스튜디오)

투사와 기념비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짧은 식견에 비춰볼 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의 전반적 시설이나 작품 수준, 행사의 준비도는 꽤 훌륭했다. 단순히 작업공간만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물 구석구석에 여러 전시 공간을 마련해 두었는데, 그 안에 모인 작품들의 결이 은근히 통하는 듯, 어긋나는 듯하여 왜 이 구성으로 모아 두었을지 유추하는 재미가 있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 느낌으로 디자인한 브로셔도 귀여웠고, 전시실마다 비치한 작품 목록도 친절했다.

미술계에서 과기대 조형예술학과는 역사도 짧고, 브랜드도 확립되지 못해 아직 그렇게까지 호의적인 세평을 듣고 있지는 못하지만, 쾌적한 시설과 주변 여건, 저렴한 등록금, 최근의 입시 경쟁률 등을 고려할 때 장래는 유망하다고 본다. 역사와 전통만 믿고 학생들은 나 몰라라 방치하는 그런 학교보다는 잃을 게 없어 의욕적으로 덤비는 신생 학교와 학과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오픈 스튜디오가 주는 재미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관음증적 즐거움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나 작품의 이면, 그 제작 과정을 궁금해한다. 오픈 스튜디오는 작품이 기획되고 형성된 물리적 공간을 드러냄으로써 과정상의 신비를 한 꺼풀 벗긴다. 하지만 이마저도 윤색된 공개임을 염두해야 한다. 진짜 제작 환경은 더 열악하고 더럽고 어수선하다. 아무리 결벽증적인 예술가들만 모아 놓는다고 하더라도 반도체 공장 같은 스튜디오란 있을 수 없다. 제작 과정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오픈 스튜디오는 일차적으로 공개이지만, 이차적인 재미는 공개되지 않은 부분들, 급하게 치워버린 흔적들, 말끔하게 소거된 예술가의 인간적인 치부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추리하는 과정에 있다.

작품들에서는 내용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일관된 결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마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이것저것 마음대로 시도해 보도록 독려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조형예술과라는 다학제적이고 다매체적인 학과명 자체가 은연중에 그런 학풍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동양화과, 서양화과, 조소과, 판화과 등 매체 중심의 학과명을 고수하는 곳은 대체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협소한 경로의 교수법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임을 누구나 알지만, 이런저런 기득권들의 이해관계와 행정적 절차가 복잡하게 얽혀 학과 구조의 전면적 재개편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체명을 내세우는 각 학과도 나름대로는 세부적인 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매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발상과 시도를 촉진하기 위해 애쓰지만, 실상 너무 또렷하게 명시된 간판을 마냥 무효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작가의 이력서가 학력에 뿌리를 두어 구성되고, 지원기관이나 관객들도 그 학력에 기초해 작품의 첫인상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고등교육기관의 전공명은 그리 쉽게 넘겨버릴 변수가 아니다.

두 작가를 눈여겨봤다. 대다수 동료 작가가 자기 꿈, 환상, 망상, 욕망, SNS와 씨름할 때 경제엽 작가는 홀로 이 세상과 싸우고 있다. 그는 무관심한 군중과, 무자비한 부동산 개발업자들과, 무감각한 정부 권력기관 및 언론과 홀로 맞선다. 섬세하게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반작용으로 되돌아올 시대적 변화상과 음지에서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작가는 그의 즉물적 인상이 휘발될까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 매우 빠른 속도로 촘촘한 구성의 대형 걸개 회화를 뚝딱뚝딱 해치워 나간다. 이 작업 속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를 어떻게든 회화적으로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자발적이고도 강박적인 사명감으로 탄력을 받는다.

나는 작가가 문득 자기 작품을 되돌아보며, ‘지금 나만 이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일까? 이게 맞나?’라는 질문을 던질 시기가 조만간 찾아오리라고 본다. 여기 그 질문에 대한 무책임한 답변을 기록해 둔다면, 그 길이 맞는다.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라면, 당신이 가는 게 좋겠군요.

또 다른 작가는 작품 하나로 기억에 남았다. 박진솔 작가의 <택배사지 오층탑>이 그것이다. 택배 상자 여럿을 단색으로 채색해 쌓아 둔 조형물인데, 상자 겉에 기재된 송장, 안내문, 브랜드 로고 등 온갖 정보와 이미지가 PLA 소재로 튀어나와 보이게끔 고안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회용품에 영속성과 기념비성을 부가해 의미화를 시도하는 작품이야 많지만, 그러한 의도 안에서도 독특한 시각성을 확보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전략이 문제가 된다. 박진솔 작가는 종교적 기념물의 외형을 원용하면서 평면을 입체로 치환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사유는 아직 얕고, 왜 오층이 아니면서 오층이라고 주장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자본-기술-서비스 복합체의 편리성에 중독되어 버린 우리가 쉽사리 한번 쓰고 버리는 무언가를 왜 조형물로 기념해야 하는지, 왜 그것을 사유해야 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덧붙여야 하는지 (캠페인스럽지 않게) 미적으로 암시하는 것은 숙제로 남았다.

더욱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된다면, 미적으로 더욱 가치 있으면서도 우리 생태계 전반에 한층 의미심장한 함의를 던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작가 스스로 증명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인류가 남긴, 그리고 앞으로 남길 기념비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류학적, 미학적 고찰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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