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샤오루가 쏘아올린 17발의 탄환

1989년 2월 5일, 중국국립미술관 앞 광장은 그간 중국 전역에서 활동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보려는 관람객의 물결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중국/아방가르드 展(China/Avant-Garde Exhibition)》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전위적 예술가 186명과 그들의 작품 300여 점이 유례없는 규모로 모였다. 개혁개방 이후 정치적 자유를 향한 관심과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있었고, 관람객들은 새로운 전위적 예술이 이러한 분위기에 어떻게 부응하면서 정치사회적 담론을 촉발할지 기대와 의문 속에 전시장을 찾았다.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에 전시는 너무 일찍 끝나 버렸다. 예기치 않게 전시를 끝내버린 것은 단 두 발의 총성이었다.

사건은 샤오루(Xiao Lu, 肖鲁)가 출품한 <대화>라는 설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두 개의 공중전화 부스에 통화 중인 남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인물의 이미지는 프린트되어 있고, 정작 투명하게 보여야 할 부스 실내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부스 안에 있어야 할 전화기는 두 부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읽을 수 없는 표정, 마주 보지 않는 인물,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전화기, 그리고 통화 불가 상태로 늘어뜨려진 수화기― 이 모든 정황은 현대사회의 소통 불가능성을 총체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읽혔고, 아울러 그 소통 불가능성의 중심에 젠더 문제가 얽혀있었다. 작품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아니 명료했었다. 작가가 전시장에 들어와 자기 작품에 총알 두 방을 갈기기 전까지.

개막 후 두 시간 만에 수많은 인파에 발맞춰 전시장에 들어선 샤오루는 거침없이 자기 작품 앞에 섰다. 그리고 동료 예술가인 탄쥔(谭军)으로부터 반자동 권총을 건네받았다. 이윽고 두 발의 총성이 들렸다. 총알은 작품의 뒷배경이었던 거울을 박살 냈고,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전시는 이 해프닝으로 즉각 중단되었고, 샤오루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작품 <대화>는 그 자체로 온건한 사회 비판적 시각을 담은 오브제였지만, 작가가 쏜 두 발의 총알로 인해 파괴되면서 훨씬 다층적인 의미들을 품게 되었다. 단순히 완성된 오브제가 아닌, 일종의 퍼포먼스와 결합된 다층적 오브제가 된 것이다. 아니 애초에 오브제는 그저 퍼포먼스를 뒷받침하는 플랫폼에 불과했다. 물리적 공간을 차지한 공중전화 부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위 있는 예술의 성전에서, 그것도 무수한 관람객이 몰린 오프닝 당일에, 작가 스스로 자기 작품을 향해 총알을 갈겼다는 사실이다. 이 총성에는 전통적 가치에 매몰된 이 사회에서 온건한 비판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강력한 충격요법이 필요함을, 권력에 눈치 보지 않는 표현과 실천이 시급함을 웅변하는 일갈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4개월 후에 천안문 사태가 발발했고, 샤오루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이 사태의 예견자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아방가르드 展》은 작은 천안문 광장이 되었다.

https://www.tate-images.com/preview.asp?image=T15540

2003년 10월 19일, 베이징 외곽의 어느 사격장에 샤오루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15장의 사진이 액자에 표구되어서 들려 있었다. 사진에는 카메라 정면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는 샤오루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같은 모습이지만 명도는 섬세하게 통제되어 있다. 아주 선명하고 진한 것에서부터 거의 백지처럼 보일 정도로 흐린 것까지. 순서대로 벽에 액자를 건 예술가는 15년 전 그날처럼 총을 꺼내 들었고, 이어서 15발의 총성이 들렸다.

긴 시간을 거슬러 이렇게 작품은 완성되었다. 애초에 그렇게 긴 시간의 축을 포함한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그 총성과 함께 특정한 차원에서 이 이야기는 맺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대화> 사건 이후, 자의반타의반 타국을 오가며 작업과 생활을 이어가야 했던 작가는 한동안 관람객들을 등져야 했었고, 극심한 슬럼프와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15발의 총성은 지난한 시간에 대한 후회의 일발이요,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박차고 오르는 출발선상에서의 일발이요, 지금 여기 어떻게든 스스로 현존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몸부림으로서의 일발이었다.

이 총성의 일부를 2025년 3월 초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展에 2003년에 제작된 <15번의 총성…1989년부터 2003년까지>의 일부분이 걸렸다. 나른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 권태에 빠진 누군가라면, 그 앞에 한동안 멈춰 샤오루의 강렬한 눈빛 세례를 받고 생생한 탄환의 흔적을 느끼면서 정신을 번뜩 차려보는 것도 좋겠다.

이 외에도 살아 있는 주제에 감히 죽은 자들에게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설파하는 아라야 라스잠리안숙(Araya Rasdjarmrearnsook)의 <수업(2005)>, 모든 창조의 원천인 모성성을 강렬한 괴물성과 아브젝시옹과 그로테스크에 결합해 보여주는 아그네스 아렐라노(Agnes Arellano)의 <풍요의 사체(1987)>, 생활인으로서 예술가의 지리멸렬한 작업 조건을 극사실주의적(다른 의미에서)으로 다룬 정정엽의 <나의 작업실 변천사(2018)>, 규격화된 모더니즘 가구와 집기에 결코 규격화될 수 없는 신체를 억지로 욱여넣는 조이스 호(Joyce Ho)의 <베라 × 일기(2023)> 등이 주목할만했다.

아시아 각국 동시대 여성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각이 펼쳐졌다. 여성 예술가들은 그들이 선택하는 매체만큼이나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혹자는 여성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하지만, 혹자는 그것을 무기 삼아 투사가 되어 세상과 맞서 싸우기도 한다. 또 혹자는 그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슴이 울리는 대로 작품으로 승화시켜 나갔을 뿐이고, 우리는 그것을 한데 모아보는 외부자로서 각자 기대하는 바를 볼 뿐이다.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여성’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개념이다. 그 복잡성이 중첩되었으니, 여기 모인 작품들에 대해서 일정한 경향성을 추출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전시는 좋았으나, 티켓이 비쌌다. 5,000원이었다. 모든 전시에 대한 통합권이 아닌, 이 전시만의 티켓 가격이었다. 여전히 다른 문화생활에 비하면 저렴하지만, 2~3천 원짜리 통합권 하나 끊고 서너 개 전시를 하루 종일 보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당연히 통합권이겠거니 하고서 매표소에 섰다가 두 전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길래 약간 고민했다. 하나는 5천 원, 다른 하나는 2천 원… 물론 주제 때문에도 이 전시를 선택했겠지만, 가격을 알게 된 그 순간에는 갑자기 단가 차이가 만들어 내는 위계 구조가 나를 짓눌렀다. 비싼 전시가 더 좋은 전시 아닐까? 국립 기관이라고 무조건 적자구조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공공성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예술 정책의 말단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부여잡는 최후의 저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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